한시적으로 캐나다에서 살면서 연휴나 공강, 방학이면 짧던 길던 여행을 떠나고 있다. 그런데 여행은 비용이 많이 든다. 우리는 자주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일상 생활에서의 지출을 최소화 하고 있다. 월세를 줄이려고 좁은 집으로 이사했다. 외식도 하지 않고 커피도 사먹지 않는다. 쇼핑도 거의 하지 않는다. 먹고 마시는 것을 직접 만들며 생활비를 아껴 비행기표를 끊을 때 또 중요한게 있다. 공항에 갈 때 택시를 타지 않아도 되는 시간 중 가장 저렴한 비행기표를 고를 것. 그리고, 저가 항공은 기내용 수하물부터 추가 비용을 1개 당 적게는 4만원, 많게는 10만원까지 내야하는데 왕복이면 8만원~20만원까지 추가될 수 있으니 짐을 최소화 할 것.
캐나다에서 오로라를 보러 갈 때나 동부로 단풍 여행을 갈 때 우리는 부치는 큰 캐리어의 비용을 아껴 기내용 배낭만을 각각 챙겼다. 지난 가을 오타와 여행 땐 기내 수하물을 따로 추가할 수 없기에 큰 캐리어 1개를 가져갔다. 그런데 이번에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겨울 밴프 여행은 처음으로 떠나는 즉흥적인 여행인 만큼 훌훌 가볍게 다니고 싶어서 기내용 수하물을 1개만 추가했다. 캐나다를 떠올리면 주로 생각나는, 키카 큰 크리스마스 나무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고 너른 호수가 얼어있는, 모닥불을 피우고 따뜻한 옷을 입고 있는 그런 겨울 동화 나라로의 4박 5일 여행을 어른 두명이서 가는데 기내용 배낭 한 개라니! 추위 대비를 해야해서 옷이 두꺼울텐데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짐 줄이기 달인 언저리가 되었으니 해볼 만 했다. 한달 미국 로드트립 때도 각각 기내용 배낭 하나씩의 짐만을 꾸렸으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비용을 아껴야 하지 않나.
며칠 후 기내용 배낭 1개를 꺼내어 놓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남편이 내가 먼저 챙기면 자기 것은 남는 자리에 넣겠다고 했다. 4박 5일로 꽤 긴 여행이지만 옷을 최소화해서 입고 가는 옷 제외하고 딱 한 쌍의 추가 외출복인 기모 바지 1개, 폭닥폭닥한 기모 맨투맨 1개, 잠옷으로 입을 바지 1개, 특별히 부드러운 기모 맨투맨 1개를 넣었다. 아니? 그것밖에 안 옮겼는데 가방이 다 찼다. 잠옷 1쌍, 외출복 1쌍밖에 안 넣은 것이라 줄일 것도 없는데. 그렇다면 줄일 것은 '기모' 빼기다.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기모 바지 1개를 빼고 외출복으로 얆은 캠핑 바지를 넣었다. 부피가 3분의 1로 줄었다. 잠옷으로 입기 좋아하는 기모 맨투맨 1개를 빼고 티셔츠 1장을 넣었다. 부피가 4분의 1로 줄었다. 겨울 마을로 가는 것이니 따뜻하게 매일 입을 수 있도록 히트텍 4장, 레깅스 3장을 넣었다. 이런 옷들은 아주 얇아 부피가 얼마 안되면서도 체온을 제대로 가둬두어 두꺼운 니트를 입는 것보다 더 따뜻하다. 양말과 속옷을 5장씩 넣고 나서도 가방에 여유가 있었다. 문득 10여년 전 유럽 여행을 갔을 때 기차에서 캐리어를 위에 올려야 하는데 들어올릴 수가 없어 고생했던 기억이 났다. 그 커다란 캐리어엔 뭐가 들어있었던 걸까? 기내용 배낭의 반만 써도 충분한데.
내 짐 싸기를 끝낸 후 남편이 자신의 옷을 옮겼다. 남편은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 학교 생활을 해서 매 달 짐을 쌌다고 했다. 기숙사 방도 자주 바뀌었고 한 달 마다 고딩들을 집에 보내놓고 기숙사 대청소를 하는 학교의 특성 상 간결하게 짐을 챙기지 않으면 너무 귀찮았다며 순식간에 짐을 챙겼다. 신기하게도 남편은 항상 빠르게 짐을 싸는데도 여벌 옷이나 양말이 충분해서 내 것이 부족할 때 빌려줄 정도이다. 단벌 신사도 아닌데 신통방통 하다.
옷을 다 챙긴 후엔 실내용 슬리퍼 두 켤레, 내내 눈 예보가 있어 입을 우비, 1L 지퍼백에 담은 액체류 (폼클렌징, 로션, 선크림, 치약, 인공눈물)를 챙겨 넣었다. 미용을 줄였기에 로션 하나, 선크림 하나면 끝이라 짐이 적다.
각자의 작은 가방에는 각자 필요한 것을 담았다. 나는 모자와 장갑, 립밤, 그림 그릴 종이와 볼펜, 여권과 지갑, 전자책과 휴대폰 충전기를 넣었다. 남편은 모자와 장갑, 전자책과 아이패드, 닌텐도 게임기, 충전기와 텀블러를 담았다. 필요한 것 뿐만 아니라 편안함을 올려 줄 물건, 즐길 물건까지 챙겼는데도 짐이 이것뿐이라니. 줄인 것은 옷과 화장품 뿐인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은 아주 큰 것이었나보다.
이렇게 짐을 다 챙기고나니 왜인지 흐뭇했다. 우리 둘이 함께 10년을 지냈다. 1~2년에 한번씩 여행을 다녔는데 캐나다에 1년 반 사는 동안 평생 간 것보다 많은 여행을 하면서 점점 여행의 부담과 불편은 줄이고 홀가분하게 순간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옷가지를 줄이면 가지고 다닐 때의 무게도 줄지만, 옷들을 정리하는 시간도 줄고 사진을 찍는 시간이 줄어든다. 대신 우리가 얻은 것은 고요하게 눈에 담긴 아름다움, 그림을 그리며 마음에 오래 새긴 풍경이다. 짐을 줄여 비용을 아끼고, 한 번의 여행을 더 떠난다.
이렇게 떠난 즉흥 여행. 동화 같은 겨울 마을에서 우리는 눈송이처럼 가볍고 포근한 마음이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기쁜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