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서부 로드트립을 캠핑여행으로 준비하는 마음

by 조각

잠자리가 바뀌면 잘 수 없어서 친정집에 가서도 잠을 설치고 오는 나, 대학생 때 엠티에 가면 거의 밤을 꼴딱 새던 나, 타인과 함께 잠을 자는게 걱정되서 신혼집 매트리스를 이스턴킹 사이즈(가로 세로 2m 2m)로 마련했던 예민한 나는, 지난 여름 밴쿠버에서 캠퍼가 되었다. 곰이 온다는 밴쿠버에서 첫 캠핑을 준비하는 마음은 브런치에 남겼고 캠핑 장비를 사면서 '이런 사서 고생하는 것을 왜 하는 것일까. 뭔가가 좋으니까 사람들이 캠핑에 열광하는 거겠지. 캠핑장 예약하는것조차 힘들만큼 사람들이 다 캠핑을 하니까. 일단 캠핑천국인 캐나다라고 하니까 시도는 해보자'고 생각했던 복잡했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내가 여름방학 미서부 로드트립을 계획 하면서 캠핑 여행으로 만들고싶어 마음이 들뜨는게 생경하다. 왜 이렇게 설레고 기쁜 것일까? 캠핑을 하면 노동량이 엄청나게 많고, 잘 씻지도 못하고, 춥고 불편한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다. 그런 불편함들을 감수할 만큼 자연 속에서 하루를 자고 일어나는게 새롭고 즐겁기 때문이다.


미서부 로드트립은 LA나 라스베가스같은 도시도 가지만, 경이로운 대자연을 보여주는 국립공원들을 주로 간다. 미서부 위쪽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그랜드서클이라 불리는 그랜드캐년, 엔텔로프캐년 등 붉은 갈색으로 거대하게 펼쳐지는 공원, 본 적도 없는 여러 풍광들을 보여주는 옐로스톤 등이다. 이런 공원들은 크기가 너무 커서 입구도 서쪽 남쪽 북쪽 등 여러개이고 입구에서부터 주요 포인트까지 차로 1시간 이상 달려야한다. 공원 안에 있는 숙소(통나무집 같은)에서 자면 멋진 자연을 감상할 시간이 늘어날테지만 1박에 50만원 정도라 비쌀 뿐만 아니라 숙소 자체가 너무 적어서 예약하는것 자체가 어렵다. 그러면 공원 밖에 있는 숙소를 이용해야하는데 국립공원 입구에서 30분 이상 떨어져있기 때문에 숙소와 구경할 곳을 오가는데 최소 왕복 2시간에서 3시간이 걸린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이 넓은 미국 땅을 여행하는데 잘 곳을 오가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공원 안에 있는 캠핑장에서 잔다면? 이동을 위한 2~3시간을 아낄 수가 있다. 캠핑장 예약 비용도 1박에 3만원~5만원 수준이라 숙박비도 많이 아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마음이 들뜨는건 시간과 비용 때문이 아니다. 일출 시간 전에 주섬 주섬 일어나 씻지도 않은채로 걸어 나와 붉게 타오르는 산봉우리나 바위를 바라보는 것, 캠핑장 텐트 사이를 걸어다니는 사슴을 보는 것, 불빛 없는 자연 속에서 고요한 밤이 찾아오면 빛나는 별이 무수히 박힌 하늘을 바라보고 별똥별을 헤아리는 것, 아껴진 시간만큼 네다섯시간씩 트레일을 걷는 것. 휴양지로, 도시로 여행하면서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기대감에 마음이 부푼다.


지난 여름 5번 정도 밴쿠버에서 캠핑을 해봐서 이미 안다.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지를. 한국의 캠핑장은 샤워실도 깨끗하고 설거지 개수대가 있는 곳이 많지만 캐나다나 미국의 캠핑장은 그런 곳이 훨씬 적다. 일단 샤워실이 없고, 화장실이 수세식이면 감사한 일이다. 푸세식 화장실이 훨씬 많다. 샤워실이 있는 캠핑장에 가면 씻는 것이 이렇게나 좋은 것이었다니 생각하면서 씻게 된다. 특히 텐트를 치고 트레일을 걷고, 음식을 먹고 치우며 땀이 많이 나서 꼭 씻어야할 것만 같은데 씻지 못하기도 한다. 밖에서 자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추위이다. 여름이라 하더라도 깊은 산 속에 있는 캠핑장의 밤은 10도 아래로 내려간다. 여러개의 옷을 입고 물을 끓여 보온 물주머니에 담아 품에 안고 침낭 속에 들어가서 잔다. 전기가 안되는 곳이 많아 가스로 물을 끓여야하고, 핸드폰 충전같은것도 할 수 없다. 아니 사실 핸드폰이 안터진다. 새벽에 화장실이 가고싶어서 깨도 불빛 하나 없는 캠핑장의 밤은 상상 이상으로 깜깜해서 한치 앞도 안보인다. 그래서 헤드 랜턴이 필수 장비인데, 캠프 사이트 위치에 따라 걸어서 몇분은 가야 화장실이 있다. 그런데 캠핑장이 있는 산 속에 곰이 산다. 동물 울음소리도 들린다. 무섭다. 그래서 나는 맥주나 와인을 무척 좋아하는데 캠핑할 때는 술을 안마신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기가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힘들고 불편한데도 신기하게도 캠핑만 가면 꿀잠을 잔다. 따뜻하고 푹신한 이불속에서 자면서도 친정집에서도 친구네서도 잘 못자는 내가. 밥먹으면 당장 설거지를 하고 핸드폰이나 문손잡이에 주기적으로 손소독제를 뿌리고, 캐나다의 카페트 바닥이 더러운 것 같아서 자주 페브리즈를 뿌리고 이불을 터는 내가 대충 키친타올로 먹은 식기를 닦고 다음에 또 쓴다. 머리를 질끈 묶고 집에 가서 씻을 생각을 한다. 원래부터 무던했던 사람이 아니라 나는 여전히 예민하다. 위생에, 잠자리에, 온도 변화에 예민한 내가 캠핑을 할 땐 다른 인격이 된다.


캠핑할 때만 나타나는 무던한 내가 좋다. 다른 나를 발견한 덕분에 평생에 한번 할까 말까인 미서부 로드트립을 준비하면서 캠핑 여행을 꿈꿀 수 있으니까. 작년에 투덜거리면서도 캠핑을 시작해보지 않았더라면 시도할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몇년 전 친구가 백패킹 자전거 여행으로 스페인 두달 여행을 할 때도, 쟤는 원래부터 무던하고 어디서든 잘 자고 잘 먹고 체력도 좋고 긍정적이니까 그런 여행도 할 수 있구나 동경만 했다. 나랑은 아예 다른 세상의 일인 줄로만 알았다. 지금의 나는, 자전거 백패킹 여행은 아니지만, 내내 캠핑만 하며 여행하는 것도 아니고 캠핑과 숙소를 퐁당 퐁당으로 잡고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를 조금씩 조금씩 넓혀 가면서 다른 삶이라 생각했던 것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도 꽉찬 캠핑장 예약을 보며 자꾸만 새로고침을 한다.




P.S. 작년 처음으로 캠핑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runch.co.kr/@21d3b3e7688247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