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雪峰)과 복하(福河)
이상 증명할 것이 없을 때, 나는 쓰기 시작했다.
설봉과 복하에서 시작된 나의 인생 항로
이 글은 고향의 자연과 가족의 사랑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던 한 소년이,
차가운 쇳덩이를 뜨거운 날개로 바꾸는 항공 산업의 치열한 현장에서
어떻게 자신의 꿈을 현실로 빚어갔는지를 담은 이야기다.
돌이켜보면 소년의 항로는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소년은 거친 현장에서도 '사람'이라는 온기를 놓지 않으려 애썼고,
흔들리는 선택의 순간마다 신앙과 책임이라는 나침반을 보며 묵묵히 길을 찾아왔다.
기술과 사업, 조직과 가정, 그리고
성취와 내려놓음의 시간들은
마치 정교한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소년만의 인생 서사를 이루었다.
뿌리에서 사명에 이르는
여섯 개의 계절을 지나오며,
소년은 이제 나 자신과 세상에게 말한다.
"인생은 단순히 목적지에 착륙하여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세 번째 스무 살의 하늘 위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항로를 꿈꾸며 나아가는 '멈추지 않는 비행'을 하고 있다."라고.
이 기록은
그 비행의 궤적을 더듬어 보는 일이며,
동시에 다가올 '네 번째 스무 살을 향한 나의 새로운 이륙 선언'이기도 하다.
산은 서쪽에서 묵묵히 등을 내어주고
강은 동쪽에서 쉼 없이 발목을 간지럽혔지.
고추장 한 숟갈에 익어가던 여름의 맛과
비료 푸대 위로 스치던 겨울의 바람이
내 종아리에 단단한 근육을 키우고
내 가슴에 지지 않는 노을을 심었네.
굽이치던 물길은 어느새 내 피가 되고
우뚝 선 봉우리는 내 삶의 뼈가 되었으니
떠나온 지 오래되어도 눈 감으면 선한 풍경
나는 오늘 그 산길을 다시 오르고
그 물길에 다시 발을 담그네.
내 인생의 밑그림이 그려진 곳
나를 만든 처음
설봉과 복하
나는 더 이상 증명할 것이 없다고 느낀 순간, 비로소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생각의 씨앗은 몇 해 전 여름,
고향 설봉산 계곡에서 이미 내 안에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내가 예순,
이른바 ‘세 번째 스무 살’을 맞던 해였다.
동갑내기 사촌 누이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찾은 설봉산 계곡에는
일가친척 마흔 명 남짓이 모여 북적이는 잔치를 열고 있었다.
장마 끝의 계곡물은 유난히 힘찬 소리를 내며 바위를 두드렸고,
그 물길 곁에서 우리는 한껏 웃고 있었다.
그 소란한 행복의 한복판에서 문득 오래전 아버지의 환갑잔치가 떠올랐다.
잔치 마당이 비좁을 만큼 손님들로 붐비던 그날,
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을까.
자식들은 이미 제 몫의 가정을 이루었고
손주들은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풍경 속에서 어쩌면 당신이 지나온
고단하고도 찬란했던 세월을 묵묵히 헤아리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설봉산 계곡에 서서 나는 한동안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그 산등성이를 제집처럼 오르내리던 내가 어느새 환갑이라는 고갯마루에 서 있었다.
계곡물은 멈추지 않고 저 아래로 흘러가는데,
나는 문득 발걸음을 멈춘 사람처럼 그 자리에 붙박여 있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이 질문이 나의 기록이자 새로운 비행의 시작이었다.
그 때 아이들은 저마다의 출발선에 서 있었다.
한 아이는 항공 연구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또 한 아이는 법조인의 문턱에서 마지막 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뒷모습들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지나온 시간은 단절된 과거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힘차게 박차고 나갈 든든한 출발점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문장을 고르기 시작한 것은 몸담았던 일터에서 은퇴를 결심한 뒤였다.
화려했던 직함이 조용히 내려앉은 자리에,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윤곽이 또렷해졌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첫 번째 월요일 아침,
창가에 서서 나는 다시 설봉산의 물소리를 떠올렸다.
흐르는 물은 과거를 붙들지 않지만,
지나온 자리에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이 글들은 바로 그 흔적을 하나하나 더듬어 보기 위한 기록이다.
나는 이제 ‘네 번째 스무 살’을 준비하고 있다.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숨 가쁘게 날갯짓하던 삶이 아니라,
이제는 어디로 돌아와 품 넓게 머물 것인지를 묻는 삶이고자 한다.
한라산 정상에서 아이들이 "자랑스런 아버지 사랑해요"가 적힌 ‘왕 리본’을 목에 걸고 밝게 웃어 주던 날,
나는 세상이 주었던 직함 대신 ‘아버지’라는 가장 숭고한 이름으로 다시 불렸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인생은 얼마나 높이 솟구쳤는가보다,
결국 어디로 돌아와 따뜻하게 머무는가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설봉산의 계곡물처럼 나는 다시 흐르려 한다.
지나온 시간을 딛고, 다가올 새로운 항로를 향해.
그래서 오늘,
나는 이 멈추지 않는 비행의 기록을 시작한다.
2026년 새봄, 네 번째 스무 살의 문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