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의 유찰을 뚫고 쟁취한 생존의 비행
2002년의 여름,
대한민국은 거대한 붉은 심장이었다.
거리마다 펄럭이던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문구는,
구조조정의 단두대 앞에 서 있던 우리 세대에게 던져진
마지막 구원줄과 같았다.
그러나 축제의 함성이 비껴간 나의 사무실은
차디찬 정막만이 흐르는 있었다. 그곳 역시 또 하나의 전장이었다.
당시 나는 신규 사업 개발이라는 중책을 맡고
경쟁사와 피 말리는 입찰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서울과 지방, 그리고 해외를 오가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엔지니어의 정밀함과 사업가의 결단력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며
나는 점점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스무 번이 넘는 유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끝없이 지연되었고,
사업은 이미 경쟁사의 수중으로 넘어갔다는 비관론이 지배적이었다.
이 사업을 놓치면
회사는 다시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게 될 것이 분명했다.
동료들의 생존권이 우리 손끝에 달렸다는 압박감 속에서
밤마다 입안은 모래를 씹은 듯 까끌거렸다.
해외에 있던 사장님과 긴급 국제회의를 열고,
협력업체와 밤샘 협상을 이어간 끝에
마침내 마지막 결단을 내렸다.
벼랑 끝에서 던진 승부수였다.
입찰실 문이 열리고,
두 손을 번쩍 들며 걸어 나오던 본부장과 팀장의 얼굴.
그 장면은 지금도 또렷하다.
“우리가 먹었어! 당장 공지하고 사업 착수해!”
그 한마디가 정적을 깨는 순간,
나는 환희보다 먼저 안도감에 휩싸였다.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떨리는 손으로 사내 게시판에 수주 소식을 올리던 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동료들이
한숨을 내려놓고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을 지켜낼
하나의 활주로를 확보한 일이었다.
그 전쟁터를 빠져나오듯 떠난 곳이
말레이시아 타만네가라의 원시림이었다.
보상이라기보다,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씻어내기 위한 회귀였다.
좁다란 바나나보트를 타고 3시간,
강을 거슬러 올라간 끝에 도착한 정글은
전기가 끊긴 완전한 어둠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문명이라는 외피를 벗어던질 수 있었다.
가장 선명한 기억은 동굴 트래킹이었다.
몸을 낮춰 기어 들어간 그곳에는
수천 마리의 박쥐가 울부짖고 있었고,
벽 한쪽에는 거대한 흰 구렁이가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심장이 멎을 듯한 공포 속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무섭지 않니?”
아이들은 조용히 대답했다.
“소리만 안 지르면 괜찮대요."
"여긴 우리 집이 아니라, 저들의 집이니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전율을 느꼈다.
스무 번의 유찰을 견디게 했던 것은
거창한 행운이 아니라,
오랫동안 몸에 새겨온 원칙과 준비였다는 사실을.
정글에서 위험한 것은
구렁이보다도
원칙을 무시하는 순간의 방심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성공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보여주고 싶었다.
덤불을 헤치며 묵묵히 걷는 아빠의 뒷모습,
조용히 버티는 태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
그리고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마음을.
우리는 종종 극적인 순간을 운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 순간을 통과하게 만드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 준비와 반복된 원칙일지도 모른다.
정글의 밤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리고 그 밤은 생각보다 길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만이 안다.
새벽의 공기가 얼마나 고요한지,
첫 비행이 얼마나 조용히 시작되는지를.
어느 날 문득,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밝아오는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이미 날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제 나는 인생이라는 전시장에 걸린
나의 오래된 그림들을 바라본다.
수없이 지우고 다시 그리던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는 그 흔적들마저
그림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의 두드림(Do Dream)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분명히 알게 되었다.
정글의 밤을 건너본 사람만이
새벽 비행의 고요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