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설봉과 복하를 열다

활주로 끝에서 다시 이륙 허가를 기다리며

by Tiger Hahn
사회로 나온 지 어느덧 20년,
나는 다시 한번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군대에서 사람을 배우고 사회로 돌아온 뒤로도
시간은 내게 자주 뒤를 돌아보게 했다.


항공기 제작 현장에서 오래 일했다.
불혹을 지나고, 항공인 21년 차 중견 간부라는 호칭이
내 몸에 조금씩 맞아 들어가던 무렵이었다.
겉으로는 제 자리를 찾아가는 듯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오래 마르지 않는 갈증이 남아 있었다.


흩어진 고향 인연들이었다.
한때는 내 곁에 있었으나
세월 속에서 저마다의 물길로 흘러가 버린 이름들.
나는 그 끊어진 관계의 회로를
언젠가 다시 이어 보고 싶었다.


2008년 봄,
나는 가상공간에 작은 문 하나를 열었다.


모니터 안에 세운 터전이었으나
내 마음은 늘 이천의 흙냄새를 향해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서른세 해,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삶의 강을 따라 멀리 떠내려갔지만
우리 안의 원풍경만은
여전히 설봉산 능선과 복하천 물결 곁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카페 이름을
‘설봉과 복하’라 지었다.


태어나 자란 땅의 이름이자
우리 삶이 처음으로 발을 디뎠던 기억의 지형도 같은 이름.


카페 대문에는 이렇게 적었다.


“반갑다 친구야.
커피 향이 아름답게 피어오를 우리들의 열린 카페를 연다.”
반갑다! 친구야. 보고 싶다! 친구야.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환영의 말이라기보다
오래 끊긴 다리를 다시 놓겠다는
서툴고도 무모한 선언에 가까웠다.


기계의 결함을 찾아내듯
우리 사이에 생긴 서른세 해의 공백을
복구해 보겠다는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우리 반 친구들 몇이 드나드는
작은 사랑방에 불과했다.


그러나 고향의 기억은 바람보다 빨랐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불러오고,
한 사람이 남긴 안부가 또 다른 사람의 문을 두드리면서,
카페는 어느새 전교 동창들이 모여드는 광장이 되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세월은 멀어지게도 하지만,
어떤 이름들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사람을 다시 잇는 일은
수십만 개의 항공 부품을 맞추는 일보다 더 까다로웠다.
각자 다른 고도와 풍속 속을 지나온
백여 명의 삶이 한 자리에 모이면
예상하지 못한 흔들림도 생겨났다.
때로는 카페지기라는 자리가
훈장보다 족쇄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한 줄의 댓글이 다리가 되었고
짧은 안부가 교두보가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시 서로의 삶 속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하교 길 저만치서 마주 오는 이성 친구를 보면
괜히 얼굴이 달아올라
뒷골목으로 숨어들던 소년과 소녀들이 있었다.


세월은 그들의 머리 위에
조용히 서리를 내려놓았다.
이제 우리는 카페 게시판에서
자식 이야기와 병원 이야기,
기쁜 날과 버거운 날의 무게를 나눈다.
그리고 그 만남은 끝내 화면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설봉산 자락을 함께 걸으며 땀을 흘리고,
모교 운동장에서 가족들과 가을 운동회를 열고,
사진 속에서만 남아 있던 얼굴들을
햇빛 아래 다시 마주 보았다.
우리는 그제야 서로의 굽은 등을 알아보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설복운동회.jpg 고향 친구들과의 재회는 나의 비행의 상승기류였다.

세월은 다시 흘러
그 위에 열여덟 해를 더 칠해 놓았다.


SNS가 일상의 소통을 빠르게 대체한 뒤로
카페의 쓰임은 예전 같지 않다.
그러나 ‘설봉과 복하’는 이미
단순한 온라인 공간을 넘어선 지 오래다.
우리가 지천명을 지나
이순의 고개를 넘는 동안,
그곳에는 동창들의 삶이
나이테처럼 겹겹이 쌓였다.


누군가의 자녀 결혼 소식에
제 일처럼 기뻐하고,
누군가의 상실 앞에서는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는 곳.


그곳은 기록이 되었고,
잠시 숨을 고르는 대합실이 되었고,
내게는 가장 든든한 정서의 격납고가 되었다.


총성은 없지만
항공 사업개발의 현장은 늘 긴장으로 팽팽했다.
보이지 않는 압박이 바람처럼 밀려와
마음의 엔진에 과부하를 걸어 놓는 날이면,
나는 종종 그곳에 잠시 앉아 있곤 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날카롭게 끓던 마음이 조금씩 식었다.
과열되던 생각은 고요를 되찾았고,
나는 다시 하늘 쪽을 바라볼 힘을 얻었다.


완전한 기계가 없듯
완전한 인생도 없다는 것.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이 단단할수록
사람은 더 멀리, 더 높이 날 수 있다는 것.
나는 그 소란하고도 따뜻한 공간에서
늦게나마 그 단순한 이치를 배웠다.


설봉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복하천은 쉼 없이 흐른다.
그러니 우리의 이야기 또한
어디선가 계속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스무 살의 열정으로 삶의 마디를 끊어 살다 보니
어느덧 세 번의 스무 살을 지나왔다.
이제 네 번째 스무 살을 앞둔 자리에서,
나는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이륙을 상상한다.


고향 친구들과 나눈 시간은
내 비행의 활주로였다.
서로의 안부를 묻던 문장들은
추락하지 않게 받쳐 주는 상승기류였다.


함께 웃고, 함께 걸어온 길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도 겁먹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늘 같은 자리에 있고,
우정 또한 그렇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한 번 이어진 것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서툰 조종사인지 모른다.
그러나 설봉과 복하의 친구들이 지켜보는 이 활주로 위에 서면
한 번쯤은 다시,
두려움보다 먼저 조종간을 잡아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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