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신 우일신

by 별빛단상

부모와 자식은 천륜으로 이어진 관계로 사랑과 의무를 다하는 도덕적 기준으로 부모는 자식을 돌보고

사랑하며 자식은 부모에 공경을 다하여야 한다는 도리로, 법에서 조차 천륜에 의한 은닉죄 같은, 인정에

이끌린 범죄행위에서도 일정범위 관용한다.

지금은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여자가 따라야할 어려서는 부모를, 결혼을 하여서는 남편을, 노후에는

자녀를 따른다는, 삼종지덕 같은 것은, 시대적 유물로 사라진지 오래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 부모의 입장은, 자녀들이 삶에 힘이 들면 무조건적으로 부모에게 기대고

의지가 되었음 한다. 자녀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고 부모가 기력이 떨어지면

위치의 변화가 온다.


치메에 걸린 부모는 의식을 기대할 수 없다. 망각의 터널에 빠져들어 일상까지 망가져 가는 모습은

서글프고 안타깝다.

도움에 나서 잠시 자리를 비운 아내의 빈 공간에, 여러 가지 생각에 빠져들고 상념에 젖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사람의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닌 것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일부는 백년을 살 것

같은 노욕에 가까운 욕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고, 또 한편에는 “나는 연명치료 포기 각서를 작성 하였네”

하는 사람, 혹은 “자녀들에게 가지고 있는 재산을 교통정리를 하였네” 하는 말로 노후를 정리 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워라벨에서 노년노후의 행복한 삶을 원하는 의식의 전환되는 과정에

워런 버핏의 말처럼 “잠잘 때에도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죽을 때 까지 일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


발생하지 않은 일에 미리 고민할 생각은 없다. 긴 시간의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지만 다만 준비를 할

따름이다.

잊고 있었던 질곡이 뾰죽뾰죽 튀어나와 여기저기를 예리하게 베일지라도

타인과 비교하지 아니하고 작은 성취감도 스스로 위안하고 즐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 같다.

늘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려는 (日日新又日新)마음을 유지하는, 지치지 않는 활력은

충만하다.


비가 그치고 저녁산책길에 막걸리 한잔에 젖다.

나는 음주를 즐기기 보다는 분위기를 즐기는 편이다.

때로는 음율과 풍경이 있는 운치를, 더러는 사람냄새가 나는 왁짜지껄한 장터의 분위기가 좋다.

술과 어울리는 술 외적인 여러 이야기도 재미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홀수를 좋아한다.

그래서 옛 선인들이 술을 마실 때에도 1.3.5.7.9등 홀수에 붙여 강(講論)하며

마셨다.

죽어서 받는 제주(祭酒)에 술잔을 세 번을 올린다.

그래서 살아서 삼배(三盃), 죽어서도 삼배(三盃) 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도 그것이 부족하여 첨잔(添盞)을 한다.


기억력이 좋았던 시절 장인어른에게 들은 술과 숫자 이야기 한마디.


첫 번째, 한잔은 술이 아니다 "不"

세 번째, 술이 아직은 조금 부족하다 "少"

다섯 번째, 적당하다 혹은 알맞다 의 "宜"

일곱 잔쯤 되면, 술이 넘치고 과하다 "過"

이쯤이면 취하지 않을까! 아홉 잔은 취하다 "醉"


술이 여기서 끝나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다음은 인사불성의 고주망태가 되어 뻗어 버리는 "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