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 하지 않던 것을 은퇴 후 생활에 변화를 주기 위해, 시도된 그 중 하나가
새벽산책이었다.
가을철에 들어선 지금은 해가 뜨지 않지만, 새벽미명을 즐기는 재미도 있고
운동 후 상쾌함이 하루 시작의 활력소로 충분하다
무슨 일이던 시작하는 일의 적응은 어렵다.
마치 알에서 깨어나는 줄탁동기(啐啄同機) 같은 깨달음이 있어야한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 탓에 새벽 산책길 풍경이 바뀌어, 현저하게 줄어든 사람들이 날씨를 실감케 한다.
운동을 선언하고 100일 지난 오늘까지
비가 억수로 쏟아 붓던 날, 실내자전거타기로 대체한 날을 제외하고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내 의지가 변질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음이었으니까!
산책길에서 제일먼저 대면하는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으로도 불리며 단풍이
아름다워 관상수로 사용하기도 하고, 열매는 백성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도 하는 식용으로 쓰이고,
이파리는 습기의 제거에 활용되고 벼룩 빈대 같은 곤충의 퇴치용으로도 쓰이는 등 다용도로
활용되기도 하여, 한때는 도시 시목(市木)의 가로수로써 사랑을 받았으나, 이제는 냄새 같은 부작용 때문에 암수를 구분하여 제거 하거나 아예 지정을 변경하는 계륵 같은 존재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그 독특한 냄새만 제거한다면 아직도 훌륭한 낙엽교목이다.
며칠 전, 지자체에서 굴삭기에 부착된, 일명 뿌레카로 탈탈거리며 은행을 털어 가버렸다.
나무 밑을 지날 때 마다 까치발을 하고 지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은행털이로 도로가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산책길의 진입을 위해 은행나무 허들을 통과하여, 다리 밑 지점에 이르면
반짝이는 윤슬을 즐기는 일단의 무리가 자리하고 있다.
깜깜한 시야에 누가 내다버린 것인지 원래부터 버려져있던 것을 모아 놓았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무심하게 앉아있는 형형색색의 빈 의자들은
누구의 자리인가!
구간 공사로 산책길 일부가 막혔다.
사람들은 원래부터 자신만의 일정 루틴을 지키며 뛰거나, 일정한 코스로 걷는다.
어쩔 수 없이 우회하는 길에서, 매일 마주치던 사람들이 돌려서 마주친다.
마치 여름철 개미들의 행렬을 떠올리다.
먹이사냥에 나선 긴 행렬에 그 많은 개미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꼬리를 물고
삐뚤빼뚤 하지만 정하여진 목적지를 향해 입에 무언가를 하나씩 물고 일개미들은
집을 찾는다. 사람의 심술로 잠깐 행렬의 가운데를 끊어 버리고, 방해를 하여도 금방 복원하여
다시 긴 행렬이 꼬리를 이어간다.
운동을 마무리 하는 지점쯤에 가감 없는 들려오는 오디오 소리는 공해다.
여당이 어쩌고, 야당이 어쩌고,
잠시 스치며 지나가는 소음에도 심란하다.
매일 난장판 같은 정치뉴스가 조금 밝아 졌으면 좋겠다.
사람 사는 곳에 어떠한 조직사회에서도, 보이지 않는 카르텔이 형성되어있다.
동물의 세계에서 존재되는 영역표시 같은 것이 사람에게서도 보인다.
기득권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시작되었다는 것만으로 묵인하거나 인정되어서는 아니 된다.
물길을 막아 놓아도 복원되는 위대한 자연의 힘은, 껍질이 깨어져야 하는 산고 끝에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듯 세상을 밝게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