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하는 기차여행은 처음 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야간운전은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면 삼가 하는 편인데, 고속도로 교통사고 이후 장거리 운전에 대해 더욱 커진 조심스러움에 막내가 기차 여행을 권하였다.
해봄직한 시도라는 생각에 첫 번째로 꼽은 여행지로 경주를 선택하였고, 10월 중에 그것을 실행하고 싶었다.
열차여행에 대하여 인터넷에서 수소문하여 KTX와 경주시티투어를 연결하여
당일계획으로 일정과 업체를 선택, 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고, 열차 발매 소식을 기다리니 서울역 7:50분 출발, 광명역에서는 8시19분 탑승하여
경주역 9:50도착예정 이라는 안내 메시지를 보내왔다.
경주시티투어에는 동해안투어,세계유산투어,신라역사투어,양동마을투어, 그리고 경주야경투어라는 다양한
방식의 여행이 있어 선택하여 즐길 수 있다.
내가 선택한 세계유산투어는 경주역에서 10:30분 출발하여 태종무열왕릉-대릉원-분황사-석굴암-불국사를 관광하는 코스로, 중간에 자유중식 시간을 포함하여 18:30 경주역에 도착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치게
되어있다.
아침을 계란과 커피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열차에 탑승,
천천히 차창에 비치는 경치를 충분히 즐기고 싶었으나, KTX의 빠른 속도를 실감나게 할뿐, 경치를 오롯이
즐기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경주역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비쳐 잠깐 날씨를 걱정하였으나, 시티투어버스에 탑승하고 부터는 빗방울은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탑승이 끝나고 예약된 인원을 확인한 문화해설사의 설명으로 경주투어가 시작되다.
첫 번째 여행지는 태종무열왕릉
무열왕 김춘추 그리고 김유신장군에 얽힌 설화를, 문화해설사가 투어버스 안에서
초 중고등학생의 역사 공부하듯 맞춤형 사전설명이 재미를 배가 하다.
다음에 이어지는 방문지인 대능원까지의 고분군은,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로 쓰이고 있었을 만큼, 오래전
내가 경주를 처음 방문하였을 때에는 역사의 인식이 없었으나
지금은 정제되고 정갈하게 성역화한 모습이, 우리나라의 시민의식 만큼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
수년 전 추석연휴를 맞아 방문한 경주는 인파에 매몰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는 곳 마다 넘쳐 나는 인파속에 차도 사람도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어,
결국 당시 포항제철에 근무하여 정년을 맞아 포항에서 현지화 되어버린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술을 한잔하며 회포를 푸는 것으로 대신하던 기억에
휴일 곳곳에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교통체증 때문에 머뭇거리는 버스를
문화해설사가 혼잣말로 “오늘 일요일인데도 왜 이렇게 막히지“하는 걱정소리를 들을 때 마다, 그때의 기억이 소환되며 ‘오늘도 투어일정을 망치는 것 아니야‘하는 마음에 몇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리다.
다행히 조금씩의 교통체증으로 정체현상이 있었으나 큰 흐름의 교통은
방해받지 않았다. 아내가 어린 손자들을 위해 분황사를 방문한길에 안압지에서 출토된 모형으로
“구령주 주사위”와 등을 긁으면 두꺼비 울음소리를 내는 “두꺼비 목탁”을 구입하였다.
오후일정은 석굴암과 불국사
경주를 대표하는 세계유산중하나로 석굴암은 일제강점기에 무너진 것을 시멘트로 보수하여 결로가 생겨
70년대 중간에 습기제거 시설을 한 후 시멘트로 2차 보수하여 유리벽으로 보호 조치, 현재에 이르는
내가 경주를 방문하면 관람하고 싶은 첫 번째 관심대상이었다.
워낙 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지만, 정작 오래전 방문했던 기억속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석굴암을 방문한 것이 유리문이 생기기전 석굴암을 자유롭게 드나들던 시절이었으니까,
유리벽으로 밀봉된 실내에 습기로 이끼가 생겨, 결로 방지를 위해 수로를 별도로 만들고 습기제거를
위해 숯을 묻으니 습기가 제거 되었다는 소문과, 이마에 제작당시 동해의 일출과 보석이 정면으로
반사되어 빛나던 것을 일본인이 가지고 가서 비어있던 것을 새로 만들어 놓았다는 둥
구전으로만 무성할 뿐 역사적 근거는 없다고 한다.
예전 불국사역에서 토함산 석굴암까지 편도 10Km길은 새벽에 올랐던 군데군데 예전의 기억이 묻어난다.
지금은 석굴암 일주문에서 석굴암까지 500m 정도의 거리만 걸으면 되나,
고도 탓인지 도로가 젖어있어 습한 기온이 그대로 전달되어온다.
다 감싸고 있어 “볼거리가 없다”는 나의 투덜거림과는 달리 처음 찾는 젊은
투어객은 “볼거리가 많던데요.”하고 호기심어린 반색함이 ‘견해의 차이’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머쓱한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하였으나, 석굴암의 장엄함을 어찌 논외로 할 수 있겠는가!
석굴암의 장엄함은 경주역에서 화면으로 볼 수 있어 그것으로 위안하다.
예전의 모습과 대비되는 그림은 불국사에서도 계속되었다. 원래는 2,000채 이상
되는 장대한 가람이었던 것이 임진왜란때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조선후기 재건하고
중건하였고, 일제강점기에도 보수 수리하는 수난을 겪었고, 70년대 일부 복원공사를 하였다.
우리의 수학여행사진에는 청운교 백운교를 중심으로 전 학년의 기념사진을 찍는 무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던 시절부터, 몇 번의 담장과 축대 작업이 가미되며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 메김 된 것은, 어쩌면 대단한 성과로도 다행으로도 여겨진다는
생각이 든다는 생각에 미칠 즈음
“빨리 빨리 경내를 벗어나세요!”하는 경내를 정리정돈 하던 보살님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이어지는 설명은 ‘2025 APEC 정상회의’를 위한 리허설을 준비하는 과정에
폭발물이 설치되었다는 제보가 들어와서 위험하니 빨리 대피하라는 외침인 것이다.
“이 상황에 장난하는 제보라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처사로 보이나, ‘만에 하나!’ 일단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서 관계자들의
조치는 정당하고 바르게 보이나, 몰상식한 어느 광인의 처사는 혀를 차고 남을 일이었다.
집에 도착하고서도 뉴스에 오르지 않은 걸 보면, 역시 허위 제보나 장난전화가 확실하였던듯하다.
거의 일정을 마친 생황이긴 하였으나 ‘유종의 미’를 매끄럽게 치르지 못한,
화룡의 점정이 아쉬운 오점으로 기록될 여행이 되고 말았으나, 전체적으로는 별점 다섯을 드리는
처음으로 경험한 유쾌한 기차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