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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 Feb 11. 2022

이별 후 물건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고찰

문 앞에 네 짐 가져가

이별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관계가 완전히 끝난 후에도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있는 상대의 흔적들일 것이다. 관계의 종말에 대해 양측에서 합의된 순간, 자동으로 상대와 관계된 물건들도 알아서 사라지거나 교환되면 얼마나 많은 심적/동적 에너지를 아낄 수 있을까. 하지만 이과생들의 노력이 한참 부족하기 때문에(분발해주세요) 우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처리해야만 한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별 후에 정리해야 될 물건들의 종류를 나누어 보자. 물론 기준은 경제적 가치이다. 이별한 마당에 절절한 추억이 다 무슨 소용인가.


1-1. 경제적 가치가 없는 물건

: 주고받은 편지, 러브장, 함께 찍은 사진 등이 해당된다. 기념일에 함께 보았던 공연 티켓이나 번갈아가며 낙서를 끄적거린 냅킨 등 존재 가치가 오직 둘만의 추억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 판매가 불가능하다.


1-2. 경제적 가치가 미미한 물건

: 판매가 가능하긴 하지만 중고가 되었을 때 그다지 가치가 높지 않은 물건들이다. 중저가의 의류 및 패션잡화, 책, 무드등, 인형 등의 잡다한 생활용품 등이 여기 해당된다.


1-3. 경제적 가치가 높은 무건

: 중요한 기념일 등에 큰 마음먹고 주고받은 선물들이 해당된다. 중고로 팔더라도 최소 몇십만 원 정도의 가격이 책정된다. 고가의 의류, 커플링 등 액세서리, 가방 등 패션잡화, 스마트폰, 노트북, 스마트 워치 등이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 물건들을 처리하는 방식을 분류해 보자.


2-1 버리기

: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헤어진 이후 상대와 관련된 모든 물건들을 커다란 봉투에 담아 한번에 내다 버리는 장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에구구, 저거 저렇게 하면 안 가져 갈 텐데.. 분리수거 좀 하지'. 어쨌거나 가장 요란을 떨며 극적으로 스스로에게 이별을 선고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1-1 정도야 버리거나 태우거나 삭제하는 등 어느 정도 친환경적인 처리가 가능한데 1-2부터는 일시적인 충동에 따르는 부산물 치고는 자원 낭비가 과한 것 같아서 반발심이 든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서 다들 이별 후에 멀쩡한 물건을 갖다 버리는 건 자제해주었으면. 적어도 분리수거라도 잘하든가. 이별 후유증보단 공동체의 생존이 앞서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원래 1-1 성질의 사물들을 아주 계획적으로 정리하고 보관하는 유형이었다. 내 노트북 어느 깊숙한 저장고에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와 같은 이름을 가진 폴더들이 숨죽여 줄 서 있었다. 그 안에 차곡차곡 그들과의 모든 디지털화된 추억들을 저장해 놓고, 아주 가~끔 우연히 마주쳤을 때 은밀하게 꺼내보며 그 시절의 추억을, 정확히는 그 시절 풋풋한 내 모습과 내가 했던 사랑의 기억을 곱씹었다. 결코 그들이 그립거나 애틋해서 저장해 놓은 건 아니었단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 만나던 이에게 과거의 흔적을 들킨 적이 있었고, 내 추억을 보관하는 건 내 자유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래 굳이 지난 인연 붙들고 있어 봐야 뭐하나 하는 생각에 그때부턴 이별 직후 모든 1-1들을 없애버렸다. 흐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러지 말걸 싶다. 지나간 이는 그립지 않지만, 역시 지나간 시절의 나는 영영 기억하고 싶다.


2-2 중고 거래하기

: 매너 온도 60.5도의 당근마켓 헤비 유저로서 매우 추천하고 싶은 방식. 1-3은 물론이거니와 1-2 수준의 물건도 몇 천 원, 몇만 원에 쉽게 처리할 수 있다. 보기 싫은 물건은 치워버리고, 재테크도 하고, 탄소 배출량도 줄이니 얼마나 좋아? 다만 매번 거래 약속을 잡고 동네 안팎을 들락날락하는 것이 제법 귀찮기는 하다. 처치 곤란한 커다란 곰인형이라거나, 취향이 달라져 더 이상 입지 않는 옷, 신발 같은 것을 부지런히 처리했던 기억이 있다. 금반지의 경우에도 꽤 괜찮은 재테크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어쩐지 커플링만큼은 매정하게 외면하기 어려워 그냥 어딘가 깊숙이 넣어놓는 편이다. 감성적인 이유 때문이라기보단, 그 반지들이 그리 묵직하지 않기에 미미한 금값보다는 아직 추억의 값이 더 크게 느껴져서가 아닐까 싶다.


2-3 상대에게 돌려주기

: 개인적으로 가장 잔인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방법. 상대가슴에 대못 박기에  좋다. 아니,  정말로  방식에 대해  말이 아주 많아. 이별 직후에 나와 관련된 모든 물건들을 쇼핑백에 담아서 조용히 우리집  앞에 가져다 놓은 아주 야무지고 괘씸한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현관문을 열었는데 보이는 낯선 쇼핑백,  뭐지...? 그리고  안을 뒤적여봤을  따라오는 거대한 충격. 내가 써준 편지부터 고가의 선물까지, 1-1부터 1-2, 1-3 전부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이다. 나는  방식의 무책임함과 비겁함을 질타하고 싶은데,  어떤 이별을 할지언정 우리가 선물을 주고받을 정도로 사랑했던  순간의 진심까지 증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초딩들도 힘차게 따라 부르는  진실을, 너는  모르니? 추억은 그냥 그대로  남겨 놓으면 안될까. 이터널선샤인이라도 찍고 싶은 거니. 그렇게까지 만남 전체를 통째로 부정해야만 했냐구. 전에도 있었다. 내가 보낸 수백 통의 편지들을 군부대 근처 어느 카페의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 아니, 수취인 불명이 아닌데  보낸 이에게 돌려주는 거야? 우편국의 시스템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수취인인 네가 직접 찢어 버리든 태워 버리든, 알아서 해야 하는 거라고. 결국 보낸 이도 받는 이도  편지들을 거두어 가지 않았다. 지독한 사랑싸움의 부산물로 남겨진 편지들을 처리해야만 했던 어느 카페의 사장님,  자리를 빌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땐 제가  어렸어요.


 방식은 사실 반대로 적용될  더욱 지독하고 치사해진다. 다행히 아직 "내가  물건들, 돌려줘" 시전 당한 적은 없지만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그땐 좋아서 주더니, 이제 와서 돌려달라고? 배신감은 그렇다 치고 너무 비효율적이라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아니 내가 남자 패딩을 가져서 뭐하니, 네가 여자 목걸이를 가져서 뭐하니. 그냥 우리 제발 각자 필요한  계속해서 쓰면  될까???


2-4 잘 쓰기

: 물건에는 죄가 없다. 누가 줬든 간에, 그 물건의 소유권은 나에게 있다. 누가 주었는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애먼 사물에 감정을 부여하는 것은 여러모로 낭비일 뿐. 사실 나는 이 방법을 가장 선호하며 또 충실히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데, 오늘 충동적으로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서른이 넘어 연애 근속 년수가 얼추 10년을 넘어가니(횟수는 세지 않겠다) 나를 둘러싼 물건들 중 출처가 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그러니까 제법 비둘기 떼 같은 무수한 '구'분들인 항목이 너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쓰는 노트북, 내가 입는 청바지와 치마와 잠옷과 외투, 내가 앉는 의자의 방석, 내가 신는 운동화, 내가 하는 귀걸이와 목걸이와 팔찌, 내 부엌의 물통과 믹서기, 내 차의 핸들 커버와 휴대폰 거치대, 기타 등등... 내 물건들의 60~70%는 그들로부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그중에는 매일 같이 쓰는 물건들도 많고 쓸 때마다 그들을 떠올리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거기에는 이미 아무런 감정이 들어가지 있지 않다. 아, 이 물건이 'made in china'였지, 를 떠올리는 수준의 감흥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문득 죄책감이 드는 순간이 있다. 가령 본인 만날 때 입으라고 사 준 고운 옷을 새 썸남을 만나러 가며 입는다든가 하는 때. 그치만 뭐 반대로 내가 준 신발을 신고 새 여친과 데이트를 가는 그를 생각해봐도 '녀석 잘해봐라' 따위의 생각이 드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거겠지.




이별 후 물건들을 정리하기 가장 적당한 시기는 언제일까? 현재의 내가 정착한 방식은 1-1은 즉시 눈에 안 보이게 처리하고, 1-2와 1-3은 이별과 관계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잘 쓴다, 정도일 것이다. 여러 번의 이별을 겪으며 결국 남는 건 물건뿐이며, 그것들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습득한 덕에 어느 순간부터는 선물을 받을 때 꼭 필요한 물건들을 고르는 습관이 생겼다. 연애도 하고, 살림살이도 장만하면 좋지 뭐. 너는 나를 배신했지만 네가 준 노트북은 5년 넘게 내 곁을 지켰단다. 심지어 난 그걸 중고로 팔아서 40만원 가량의 수익도 낼 거야. 지지부진한 관계와 치열한 감정싸움 끝에 그런 보상이라도 남으면 우리 관계가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의미 없었던 것 같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시작부터도 끝을 생각하게 된다. 이 사람과의 관계 끝에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무엇을 남겨야 손해라고, 시간 낭비였다고 생각하지 않게 될까. 자꾸만 계산기를 두드린다. 사랑의 무한함은 이별의 가능성 앞에 너무나 쉽게 사그라지고.


어느 순간 나는 애인의 이름을 휴대폰에 이름 석자로 밋밋하게 저장해 두고, SNS에 절대 그들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관계가 위태롭다 싶을 때는 일찌감치 연락처를 지워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어두운 방에서 홀로 흐느끼며 처연하게 '내사랑♥️' 따위의 이름을 폰에서 삭제하고, 카톡방을 나가고, 인스타에서 관련된 게시물을 골라 지우고 싶지는 않으니까. 몇 번을 해도 이별은 항상 지독하게 아프고 번잡하다.


얼마나 더 많은 1-1, 1-2, 1-3을 주고 받고 얼마나 더 많이 2-1~2-4의 과정을 번복해야 우리는 이 끝없는 이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만남부터 헤어짐이 관측되지 않고, 함부로 이 사람이 내 마지막이라 말할 수 있는 이를 막연하고 씩씩하게 기다려 보기로 한다. 또 끝이 와도 괜찮다. 이별은 항상 사랑을 이기지만, 사랑은 언제나 이별을 감수할 만큼 아득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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