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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 Sep 13. 2023

임보 강아지를 알아가는 중입니다

박가온 임보일기#2 알아가는 날들

임시보호 3일 차, 가온이에 대해 알게 된 것들. 

가온이는 실내보다 실외배변을 선호한다.

가온이는 산책을 무진장 잘한다.

가온이는 분리불안도 없고 짖음도 없다.

활기는 넘치는데 식욕은 별로 없다.

털 빠짐도 거의 없는 것 같다.

말귀도 잘 알아듣고 애교쟁이다.

우리 가온이, 천재인가?



 

처음 왔을 때 거실에 한 번, 베란다에 한 번씩 배변을 하더니 그 이후로는 영 소식이 없는 가온.. 혹시나 해서 산책을 나갔더니 기다렸다는 듯 오줌 홍수를 방출한다. 이 녀석... 안에서 싸기 싫었구나, 베란다에 잔뜩 깔아 둔 패드는 어떡하구. 기특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 실외배변에 대한 정보들을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나쁜 건 아니라고 한다. 다만 종종 집사가 바빠 나가지 못할 때, 마냥 참다가 관련 질환이 생길 수도 있다니 걱정이 될 뿐. 게다가 가온이는 언젠가 입양을 가야 하는데 혹여 실외배변 100%가 마이너스로 작용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과 동시에 하루 한 두 번 산책도 어렵다면 가온이를 책임질 자격이 없지! 싶은 복합적인 이 심정.


어떻게 이렇게 예뻐?


아직 상처가 크게 남아 있어 다음 날 바로 병원에 방문했다. 다행히 잘 낫고 있어 약을 먹거나 바를 필요는 없다고. 상처가 깊진 않지만 면적이 넓어서 심각해 보이는 거라고 하셨다. 가온이를 본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는 "너, 오토바이 타다가 굴렀니?"였다. 온몸 여기저기에 산발적으로 생긴 상처가, 사람으로 치면 꼭 오토바이 사고가 났을 때와 흡사하다고. 교통수단에 묶여 질질 끌려가거나 하는 방식의 학대를 받았던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혹시 반려자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나서 둘 다 크게 다친 건 아닐까, 정신없는 사고 현장에서 절뚝거리며 멀리 벗어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가온이의 첫 주인이 그를 학대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작은 기대감을 싹튀운다. 사람을 너무나 좋아하는 가온이니까, 몸의 상처는 크더라도 마음의 상처는 작지 않을까, 조그마한 머리통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던 기억들로만 가득하지 않을까, 그렇게 멋대로 상상해 본다. 



어쩌다 다쳤는지 영영 알 수 있는 길은 없겠지만 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고 보호소에 들어오고, 구조되어 센터로 이동하고, 다시 임보처로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 가온이는 처음 발견되었을 때 통증 때문에 다리를 굽힐 수가 없어 잠도 서서 잤다고 한다. 처음 본 공고 사진에서처럼, 상처 입은 다리로 밤새 우뚝 서 있는 가온이를 생각하면 울컥한다. 지금도 앉는 건 꺼려해서 서거나 엎드리기만 하는데.. 이 작은 생명체는 어쩜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씩씩하고 쾌활할까. 언제나 나약한 건 인간이다.




산책은 조금 적응이 된 후에 할까 싶었는데, 동물병원에 갈 때 잠시 리드줄을 하고 걷는 모습을 보니 더 미룰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집 근처 산책로로 데리고 나섰다. 집 바로 옆에는 우거진 나무와 물고기가 사는 천이 조성된 산책로가 있는데, 강아지와 함께 걷기 최적화된 이 장소에 반해서 집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출발과 함께 임시보호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드디어, 함께 그 길을 걸어줄 강아지가 생겼다. 


10~20년 전만 해도, 강아지와 함께 발맞추어 걷는 산책이 당연한 것인 줄 몰랐다. 우리 집 강아지는 밖만 나가면 목이 조일 정도로 줄을 팽팽히 당기며 앞서나가기 바빴으니까. 그때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키우는 것이 최선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함께 더 행복하기 위해 적당한 훈련이 필수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알려준 적도 없는데 사람 발걸음에 맞춰 함께 걷는 가온이의 산책 실력이 그저 감탄스럽다. 다른 사람이나 강아지에게 큰 관심도 두지 않고, 종종 길을 벗어날 때 툭, 하고 리드줄로 신호를 주면 귀신 같이 본 궤도로 돌아온다. 딱 하나 미성숙한(?) 모습이 있었다면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가기 싫다고 버틴 것...!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금 설득하니 집 안까지 잘 따라와 준다. 


산책 천재 강쥐


강아지 훈련에 대해 공부 중인데, 보상으로 간식을 필수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가온이는 먹는 것에 전혀 흥미가 없어 보인다. 미리 사둔 여러 종류의 간식을 줘도 반응이 없고, 사료도 먹는 듯 마는 듯하고. 그래서 더 다양한 종류의 간식을 사서 줘봤는데, 웃프게도 가온이가 가장 반응하는 간식은 가장 싸구려 제품이었다. 반려견을 자식처럼 키우는 집사들은 절대 주지 않을, 알록달록 마치 고무 같은 그런 저렴이 간식. 길고양이들의 경우에도 대용량 싸구려 사료에 길들여져, 가정집에서 처음 접하는 고급 사료에는 별 흥미를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가온이도 사람 남은 밥, 가장 저렴한 간식을 먹으며 그렇게 자랐던 걸까? 장난감 공도, 뼈다귀도 처음 보는지 일단 뭔가 좋긴 한데, 어찌할 줄 몰라 쳐다보기만 하는 가온이. 하나하나 다 알려줄게, 그 누구보다 멋지고 세련된 강아지가 되게 해 줄게.


가온이와 함께하는 내일이 기대된다. 우리 또, 어떤 새로운 걸 함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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