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더 이상한 우리들

백년 동안의 고독 x 빅피쉬

by 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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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내의 피는 큰 강물을 만들어 멀리 있는 남편에게까지 가 닿았고, 불타는 듯 뜨거운 정열로 인해 한 처녀의 몸이 불길로 변해서 마구간을 태워버렸다 한다면, 과연 당신은 그 말을 순순히 믿을 수 있을까? 현실에서는 누가 들어도 코웃음 치며 거짓 혹은 허풍으로 치부해버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그럴듯하게 펼쳐지는 환상적인 세계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탄생시킨 세계 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술적 혹은 환상적, 심지어 경이적 사실주의라고까지 불리는 이 서사 방식은 상당히 거창하게 들려오지만 실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던 호랑이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상식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앞뒤도 맞지 않고 터무니없지만, 화자가 천연덕스럽게 나름의 개연성과 논리성을 펼치며 그럴듯하게 펼쳐내는 이야기. 말이 안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 뻔뻔함과 태연함에 속아 저도 모르게 ‘아, 그런가? 진짜인가?’하고 믿어버리게 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마술이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즐거운 태도로 마술쇼를 관람하고,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영화를 보면서 내심 어딘가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지는 않을까 기대를 슬쩍해 보는 것처럼, 대부분의 마술적 사실주의는 그야말로 말 그대로 ‘말이 안 될 만큼’ 유쾌하고 환상적이며, 심지어는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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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무는 화가, 롭 곤살베스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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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사실주의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앞서 언급하였던 마술적 사실주의의 아버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장편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 일 것이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콜롬비아의 한 가문의 기나긴 연대기를 담은 소설로 사랑, 문화, 정치, 역사 등 모든 정서와 장르를 담아낸 콜롬비아의 정수와도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몇 대에 걸쳐 전개되는 한 집안의 거대한 서사시이니만큼 그 분량도 만만치 않거니와 쉴 새 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인물들, 한국 독자들에게는 영 익숙하지 않은 어렵고 긴 중남미식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들을 일일이 기억하며 읽어 내려가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가 막히게 재미있고 쉴 새 없이 흥미진진하다. 죽은 자와 산 자가 대화를 나누고, 하늘에서 꽃송이들이 떨어지는 세계의 이야기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마르케스를 필두로 하여 주로 중남미 문학에서 마술적 사실주의의 매력을 흠뻑 느껴볼 수 있는데,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도 그 향기를 잔뜩 뿜어내는 있는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팀 버튼의 ‘빅피쉬’이다. 늘 허풍 가득한 이야기를 경험담이라며 들려주는 아버지, 그리고 늘 거짓말만 하는 아버지가 싫어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기자로 자란 아들. 그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영화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그가 풀어내는 과거 이야기를 찬찬히 그려낸다.

gallery-1458665452-mcdbifi-ec024-h.jpg 영화 <빅피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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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빅피쉬> 스틸컷


동화나 꿈만 같은 모험담이지만 아들의 아내는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시아버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 영화에서 가장 똑똑하고 논리적인 사람은 아들이지만, 동시에 가장 불행해 보이는 사람 역시 아들이다. 그러고 보면 행복한 인생을 사는데 더 중요한 것은 수학공식이나 맞춤법보다는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옛날이야기, 혹은 엄마 무릎에 앉아 넘겨보았던 동화책일지도 모르겠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귀여운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조그마한 여유를 잊지 않게 해줄 테니 말이다.


참, 빅피쉬도 사실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미국 작가 다니엘 월레스의 데뷔작으로 국내에 <큰 물고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지만, 기왕이면 책보다는 영화로 접할 것을 추천한다. 천재 괴짜 감독으로 불리는 팀 버튼의 상상력과 괴팍함이 이 작품이 가진 ‘마술적 사실주의적 요소’를 극대화시켜낸 듯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