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하녀와 한국 하녀의
어떤 공통점

어느 하녀의 일기 x 하녀

by 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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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을 도와주는 여자 하인을 이르는 단어인 '하녀'.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최하위층 계급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이 작품 속 중요한 피사체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유는 그들이 지닌 순종성에서 오는 에로티시즘 외에도 '한 집안의 내막을 가장 속속들이 꿰고 있는 유일한 외부인'이라는 독특한 특성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이러한 하녀의 모습을 잘 담아낸 책과 영화를 다뤄볼까 한다.




먼저 19세기 말 프랑스의 대표적 비평가인 옥타브 미르보의 [어느 하녀의 일기]는 프랑스에서는 무려 세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고전 작품이다. 장 르누아르, 루이스 부뉴엘 그리고 브누와 쟉꼬까지 내로라할 거장 감독들의 손에 의해 거듭 재탄생되었으니 원작 소설이 가진 깊이와 매력을 가늠할 만하다. 파리의 전성기인 벨 에포크 시대를 배경으로 옥타브 미르보는 당시 프랑스 부르주아의 위선과 허례허식을 가장 순수하고 솔직한 하녀의 눈을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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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느 하녀의 일기> 캐릭터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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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용모를 지닌 하녀 셀레스틴은 프로방스의 어느 저택에 들어가게 된다. 조그마한 마을에서 그녀의 도도한 태도와 뛰어난 패션 감각은 순식간에 화제가 되고, 곧 모든 남자들의 욕망과 여인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기 시작한다. 불우한 어린 시절 끝에 오직 자신을 욕정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에 익숙해져 있는 셀레스틴은 자신의 신세를 혐오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그저 무던히 받아들인다. 거짓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자신도 그 일부가 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때와 상황에 따라 사람들을 이용하기도 하고 기만하기도 하며 기존 우리에게 익숙했던 ‘을’이 아닌 ‘갑’으로서의 색다른 하녀 캐릭터를 탄생시킨다. 1900년 작품임에도 불구, 국내에서는 2015년 레아 세이두가 주인공으로 분한 <어느 하녀의 일기>가 개봉하며 처음으로 원작 소설이 함께 출간되어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섹슈얼한 하녀 이미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셀레스틴’을 드디어 책으로도 만나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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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녀>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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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대표하는 하녀가 ‘셀레스틴’이라면 한국을 대표하는 하녀는 단연 ‘은이’ 일 것이다. 1960년 김기영 감독의 <하녀>, 그리고 1971년 <화녀>에 이어 임상수 감독에 의해 재탄생된 2010년 <하녀>. 상류층 대저택에 들어가게 된 주인공 ‘은이’가 매력적인 주인집 남자의 꼬임에 넘어가 위험한 관계에 휘말리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느 하녀의 일기] 속 셀레스틴 역시 주인님의 은밀한 유혹을 받지만 은이와 달리 단 한순간도 그에게 진심을 내주지 않고 도리어 남자를 가지고 놀았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때문에 셀레스틴보다 더 순진하고 해맑았던 은이는 깊은 상처를 입어 독기 품은 악녀로 변하고, 처절한 복수를 꿈꾸기 시작한다. 그런 은이의 모습을 소름 끼치게 소화해낸 배우 전도연은 이 작품으로 <밀양>에 이어 또 한 번 칸 국제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기도 했다.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하녀’라는 캐릭터는 언제나 매혹적으로 다가오는데, 이는 그녀들이 가장 깊숙이 은밀하게 감추어진 인간의 어두운 모습을 이끌어내기 때문이 아닐까. 집안 모든 구석구석 더러운 오물을 쓸고 닦는 그녀의 손길은 자신의 어둡고 혐오스러운 모습마저 드러내 보여도 될 것만 같은 못된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그녀들을 한 인간, 한 집안뿐 아니라 사회의 가장 어두운 모습을 오롯이 비추어 내는 거울로 재탄생 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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