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준 Nov 30. 2022

가족이라는 것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물음의 시작은 언제부터 진중하고도  가벼웠었나. 나의 우선순위는 “  같은데 그렇다고 “희생이라는 말은 나를 포함한 복수를 우선순위로  그들만 사용할  있는 단어였던가.  진정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전혀 무엇을 위하지 않는 사람인가.



한없이 무지했다. 무지했다는 말도 쓰기 아까울 정도로 난 텅 비어있었다. 정작 채워야 할 공간엔 내 욕심과 얼마 살아오지 않은 세월로 인해 굳어진 가치관만 가득했고, 나름 채워왔다고 생각한 공간 안엔 텅 빈 여백만 한가득 차 있었다. 알고 보니 조금의 낙서도 없던 공간 속엔 무심하게 흘려보낸 시간과 관계와 사랑과 결핍이 모두 한 데 뒤엉켜 여기저기 생채기를 냈더라.



어렸을 적 찰흙으로 무언갈 만들어가듯 내가 조금씩 주물러지며 형태가 잡혀갈 때 나는 보고 느꼈다. 사실 느껴졌다고, 만들어졌다고 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주체는 나였지만 나를 주무르던 손은 정작 내가 아니었기에. 그 손바닥 안에서 배운 건 “나는 저렇게는 만들어지지 말아야지.”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 그 생각은 십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차츰차츰 쌓여 단순한 형태의 조형물이 되어 간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의 이해와 관념이 바뀌고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시작점에서부터 조금씩 쌓인 감정들은 그 피사체의 기둥과도 같다.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수제 햄버거에 큰 이쑤시개가 꽂혀져 있듯 내겐 그것이 곧 신념과 확신이 되었다.



물과 기름을 한곳에 담아두면 자연스레 갈라지게 되고 아무리 세차게 흔들어도 결국 섞이지 못하듯 우리의 농도는 그렇게 짙어졌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존재는 사실 그 가운데에 끼어 이도 저도 못하며 구겨지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할 거라 믿었다. 변치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항상 근처에 머물 것이란 바보 같은 생각을 안일하다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 가운데서 나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썩혀가며 도저히 담지 못해 삐져나온 은은한 부탁의 말들을 난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고,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며 애써 피하고 무시하며 화로 변질시켰다. 무겁게 짓눌리던 마음은 내 모난 눈빛에 더 부식되어만 갔고 비로소 진심의 진심이 내게 전달되었을 땐 난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고 그대로 무너졌다. 산산조각이 난 마음은 곧장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연결되어 날 자책하게 만들었고, 그건 생각보다 훨씬 무겁게 나를 짓밟았다. 깔려 형태조차 찾기 힘든 내 시체를 보며 구역질이 났고, 그동안 사랑을 먹지 못해 멈추지 않는 헛구역질과 시꺼먼 토만 간신히 내뱉는 그 힘겨운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나란 존재는 참으로 역겹다고 생각했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 짓는 건 현재이다. 현재에 충실해야 과거를 성찰하며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좋은 방향의 미래도 만들어나갈 수 있다. 앞으로의 나는 당신들에게 많은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아니 꼭 그래야만 하는데 그런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지, 내가 놓친 수많은 시간 속 기회들을 용서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현실 또한 인정하고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후회하고 또 다짐했지만 또 후회하고 있다. 수많은 감정 속 더 이상은 후회란 감정은 느끼고 싶지 않다. 그들이 느꼈던 무게를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짊어지려 한다. 난 이제서야 힘들지만 그들은 내가 무심히 자나 친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짓눌려져 왔을까 차마 가늠이 되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자꾸만 귓구멍에 맴돌아 잠을 잘 수가 없다. 난 죄인이므로 뜬 눈으로 초췌해져만 가는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죗값을 치르고 쓸쓸히 죽어가야지. 합리화로 잘 포장된 옷을 입고 죽은 순간 그 모습 그대로 썩게 내버려 두길.



왜냐면  이기적이고 못난 아들이거든요.

작가의 이전글 관계에는 신뢰가 가장 우선순위인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