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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반장 Jan 27. 2021

나 같은 흙수저도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엠제이 드마코, <부의 추월차선>


직장인에게 찾아온 현타

2년 전 일이다. 온라인 MD로서 상품 소싱을 위해 어느 영세 업체 대표를 만났다. 대표와 직원 한 명, 총 두 명이 힘겹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 업체는 어떻게 되었을까? 매출이 무려 6배나 성장했다. 사무실을 확장 이전했고, 직원 수도 10배가 되었다. 최고급 세단을 뽑은 대표는 연신 “MD님은 정말 은인이에요. 항상 감사해요.”라고 말한다.     


성공한 대표의 은인이 된 나는 2년 동안 어떻게 변했을까? 직장인이라면 예상했겠지만 별 차이가 없다. 크게 오른 물가 앞에 연봉 상승 폭은 초라하다. 달라진 점은 아이가 한 명 더 태어나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는 것. 기쁨도 크지만, 외벌이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커졌다.     


얼마 전 직장 동료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난 요즘 뭐 하는지 모르겠어. 백날 열심히 해도 회사랑 업체들만 배부르고 난 맨날 그대로잖아. 하늘에서 돈 좀 안 떨어지나!” 직장인으로서, MD로서 회사와 업체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당연한 임무이거늘 아이 셋의 아빠인 동료가 뱉은 푸념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울상이었던 업체 대표를 미소 짓게 만드는 것만큼 MD로서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는 일도 없다. 업체를 성장시키는 과정을 통해 사업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고 업무 능력도 향상된다. 업체와 MD는 언제나 동고동락하는 공생관계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직장 생활을 계속 열심히 하면 서울에 집 사고 좋은 차도 뽑을 수 있을까? 사업하면 90%가 망한다는데 회사에서 존버하는 것이 답일까? 직장인으로서 자녀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줄 여유가 생길까? 승진하고 직급이 높아질수록 가정에 소홀해지는 선배들처럼 살기는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월급쟁이의 노후 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산자가 되어야 부자가 된다

삐까뻔쩍한 자동차를 보고 현타가 온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길에서 우연히 슈퍼카 람보르기니를 본 한 10대 소년은 차주가 20대 중반의 젊은 발명가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흔한 부의 관념대로 평생 일하면서 성실하게 돈을 모아 백발이 될 때쯤 부자가 되고 슈퍼카도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년은 굳이 노인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젊은 부자들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는 30대에 억만장자가 되었고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벌어들이는 것”이라는 새로운 부의 개념을 입증했다. 그가 바로 《부의 추월차선》의 저자 엠제이 드마코이다. 부자가 되는 쉬운 길은 없지만, 빠른 길이 있다고 말하는 《부의 추월차선》은 전 세계 유명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경제 지침서의 바이블로 떠올랐고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사회지만, 돈에 대해 말하면 속물처럼 취급하는 이상한 문화가 있다.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린 유교 문화로 아직도 사농공상의 프레임에 갇혀있기 때문이 아닐까. 부모님도 내게 돈에 대해 가르쳐준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오히려 “우리 피는 사업과 맞지 않는다.” “주식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라며 반경제 교육을 했고, “넌 돈 걱정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좋은 대학 가면 성공은 보장된다.”라는 말로 경제적 문맹인 나를 방치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서른과 마흔 사이에서 이제야 경제적 문맹을 탈피해야겠다고 느꼈다. 그동안 경제 공부를 등한시해도 나는 속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가치를 좇으면 물질이 따라온다는 그럴싸한 신념으로 합리화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최근 자라나는 두 아이를 보며 위기의식을 느꼈다. 전 세계를 장악한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신앙과 경제를 목숨처럼 여기도록 교육받는다고 하는데 나는 자녀에게 무엇을 알려줄 것인가.     


엠제이 드마코는 재무적 문맹 상태를 벗어나라고 일침을 가한다. 특히 “돈으로 미숙한 돈 관리 능력을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재정 자문가로 재무적 문맹을 해결할 수는 없다.”라는 말이 폐부를 찔렀다. 나는 그동안 재무 상담사에게 모든 것을 의존해왔다. 책임과 권리를 회피했다. 두렵고도 귀찮은 마음에 내 인생의 운전대를 타인에게 맡긴 것이다. 그 결과 보험의 종류만 늘어났다.     




부를 향한 3가지 길

《부의 추월차선》에서는 ‘부를 향한 3가지 재무 지도’를 제시한다. 인도, 서행차선, 추월차선으로 가는 지도가 그것인데 인도는 가난한 사람, 서행차선은 평범한 사람, 추월차선은 부자를 의미한다. 저자는 인도로 걷는 사람을 ‘라이프스타일의 노예’라고 부르며 내일은 없고 오늘만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쾌락주의에 빠진 이들에게 부의 방정식은 ‘부 = 소득 + 빚’이다.      


젊은 시절에 열심히 인도를 걸었기에 지금 가난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가 떠올랐다. 내가 어린 시절 아버지는 건설 회사 현장 소장이었는데 수입이 꽤 괜찮았던 것 같다. 중국 전통극 변검에서 계속 변하는 가면처럼 아버지의 차가 수시로 바뀌었다. 당시 국산 차 중에 세단에서 SUV까지 안 타본 차를 세는 것이 빨랐을 정도였다. 젊은 날의 아버지는 오늘만 사는 감정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이에 반해 서행차선으로 달리는 사람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사람이다. 놀라운 사실은 인도를 걷는 사람에게 어른스러운 책임감이 더해지면 서행차선을 달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평범하고 성실한 이들에게 부의 방정식은 ‘부 = 직업 + 투자’이다. 저자는 “평범한 것은 생존 경쟁에 놓인 현대판 노예라는 뜻”이라며 영화 <콘 에어>에서 배우 스티브 부세미가 던진 대사를 인용한다. “50년간 매주 50시간씩 일했는데 이제 그만 꺼지란 말을 들으면, 그리고 결국 양로원에 들어가 똥오줌도 못 가리고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한다면, 그거야말로 ‘미친’짓 아닐까?”      


이 대목에서 직장인이라면 책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저자는 직장 생활 자체가 부를 방해하는 죄악인 것처럼 신랄하게 묘사한다. 직장 생활로는 빠르게 부자가 될 수 없고 실제 젊은 부자 중에도 직장인이 없기에 당장 직장을 때려치우라는 식이다. 책의 제목이 《부의 추월차선》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서행차선을 맹렬히 비난할수록 추월차선이 돋보이는 효과가 있겠지만, 직장 생활도 제대로 해보지 않은 젊은 사업가가 신성한 직장 생활을 모욕하는 듯한 말에 부글부글 끓는다. (직장의 쓴맛도 못 본 애송이 같으니라고!) 서행차선을 달리는 내가 현대판 노예라니, 뼈 때리는 말은 적확해서 틀린 말보다 더 아프게 가슴을 파고든다. 경제적, 시간적, 공간적 자유를 꿈꾸는 내가 직장 생활을 하며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시간적으로 쫓기며, 공간적으로 묶여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저자가 말하는 추월차선은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추월차선을 달리는 사람들에게 부의 방정식은 ‘부 = 순이익 + 자산의 가치’이다. 저자는 부의 비결이 바로 자산 운용에 있는데 “서행차선과 인도 위의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감소하는 자산을 사거나 판다.”라며 꼬집는다. 자동차, 보트, 전자제품, 명품 옷, IT 기기, 귀금속 등은 사는 순간 감가상각이 작동하는 자산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추월차선을 달리는 사람들은 가치가 증가하는 자산을 사거나 판다.”라며 사업체, 브랜드, 현금성 자산, 지적 재산, 라이선스, 발명품, 특허, 부동산을 예로 든다.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부자가 되는 것이 다이어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들은 다이어트가 필요하면 즉흥적이고 감정적으로 달려든다. 흔한 예가 굶는 것이다. 단기간에 체중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무서운 요요가 기다리고 있다. 가수 겸 작곡가 돈 스파이크는 한 방송에서 “내가 다이어트만 안 했어도 지금 100kg이 되지는 않았을 거다. 80kg일 때 다이어트를 했는데 요요 현상 때문에 살이 더 쪄버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웃픈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왜 서행차선을 달리고 있는지, 평생 성실하게 일한 어머니가 왜 만년 돈에 쫓기며 살았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몸짱이 된 사람은 몸의 시스템을 바꾼다. 근력운동으로 근육을 키워 기초대사량을 높이고 유산소 운동과 식이요법을 통해 근본적으로 체질을 개선한다. 부자도 이와 같지 않을까? 근육은 가치 있는 자산을 의미하고 높은 기초대사량은 자산이 벌어다 주는 순이익을 뜻한다. 노동 수익(유산소 운동)과 투자(식이요법)를 통해 다시 자산(근육)을 강화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완성하면 부자(몸짱)가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말이다.     


데일 카네기는 “우리가 하는 걱정의 70퍼센트는 돈과 관련된 문제”라고 말했다. 돈 덕분에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돈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부자가 되기 위해 추월차선을 달리라고 권하는 저자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꼭 부자가 되어야만 할까? 1인당 국민소득이 3천 달러도 안 되는 최빈국 부탄의 행복 지수가 1위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진정한 부자란 어떤 사람인가

저자는 부의 3요소가 ‘3F’, 즉 ‘가족(Family, 관계), 신체(Fitness, 건강), 자유(Freedom, 선택)’라고 정의하며 이렇게 말한다. “돈은 올바르게 사용할 때 자유를 가져다준다. 자유는 부를 이루는 3요소 중 하나다. 자유로 선택을 살 수 있다.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과로에 시달리는 중상류층 노동자에 비해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과로에 시달리는 중상류층 사람들은 자유와 관계와 건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모두 하기 싫은 일을 한 주에 5일씩 50년 동안 열심히 한 결과다. 돈은 적어도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 그리고 이로 인해 부의 다른 요소인 건강과 관계를 지키기가 더 쉬워진다.”     


그의 말처럼 돈은 올바르게 사용할 때 참된 가치를 창출한다. 자유가 보장되어야 건강과 관계를 지킬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며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중 사업은 이타심으로 시작해야 하고, 실행이 아이디어보다 중요하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전자는 돈을 좇지 말고 타인의 필요와 곤란함, 문제점과 서비스 결함, 그리고 정서를 좇으며 이타적인 사고로 사업을 해야 성공한다는 뜻이다. 후자는 경쟁이 어디에나 있기에 거창한 아이디어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사업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사업보다 더 잘하는 것이 중요하고 실행하면서 아이디어는 보완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흙수저가 부자가 되기 위한 유일한 비법은 세상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실행, 또 실행하는 것뿐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때때로 돈은 자유를 박탈하기도 한다. 수많은 가난한 사람이 과로에 시달리는 중상류층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저자가 인정했듯이 돈을 좇다 보면 돈에 쫓기는 삶이 될 수 있다. “가장 많이 가진 자가 부자가 아니라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다.”라는 말처럼 진정한 부는 자신의 가치관으로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있다.     


나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삶의 가치관이 바뀌었다. 하루에 최소 밥 한 끼는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함께 먹을 수 있는 삶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인사고과를 위해 매일 13~14시간씩 삶의 시간을 회사에 저당 잡힌 인생은 끔찍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나는 불필요한 야근을 없애기 위해 업무 시간에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려고 노력한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흙수저인 나도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부자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다. 감옥에 가 있는 부자들 때문이다.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선한 일에 부를 나누는 부자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우리나라에도 이제는 존경받는 부자가 많아져야 한다. 많이 가진 자가 아닌 많이 나누는 자가 진정한 부자로 인식되는 세상은 정말 살맛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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