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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크 May 13. 2023

우리 집을 들여다보던  나의 변태 아저씨에게

Ep8


TO. 우리 집을 들여다보던 나의 변태 아저씨



언제부터였나요?

나를 향하던 당신의 그 시선.


언제부터였는지 가늠하지 못하지만

그날은 확실히 기억해요.

내가 무척이나 예민하던 날이었죠.

그때의 내 심정은 정말이지...

'누구 하나 걸려라.'는 마음이었거든요.


너무 거친가요? 그치만 누구나 살면서 그런 거친 마음 한 번쯤 품을 때가 있잖아요?


어쨌든.

그날은 내게 그런 날이었어요.

그리고 마침 그날. 당신은 내가 살던 1층 부엌에 나 있던 작은 쪽문을 통해 식탁에 앉아 평화롭게 핸드폰을 하던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죠.


흡사 길고양이로 착각할 뻔했던 부스럭 거리는 소리. 2층에서 들려오던 "거기 누구요?"라는 주인아저씨 내외의 물음과 그에 답하지 못하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던 당신의 빠른 발걸음, 그리고 그를 포착한 나.


난 직감했어요. 우리 집을 몰래 들여다보던 쥐셰끼가 있다는 걸 말이에요. 곧바로 수면바지를 챙겨 입고 싱크대에서 식칼을 뽑아 든 채 밖으로 나갔죠. 지난 십 수년간 딸 많은 집에 살아오면서 당신처럼 우리 집을 들여다보던 수많은 변태들을 상대해 왔던 짬밥이 본능적으로 말해주고 있었죠.


이대로 당신을 놓치면 안 된다고.


밖으로 튀어나간 난 목격했어요. 골목 끝을 지나 줄행랑을 치던 당신의 뒷모습을 말이에요. 작고 가냘픈 모습으로 허둥지둥 도망가고 있었죠. 그런 당신의 뒷모습을 보며 난 이런 마음을 품었어요.

'내가 딴 놈은 몰라도 니 놈은 족칠 수 있겠다.'


그래서 홀린 듯 외쳤죠.

"거기 서!!!!"


사실 그런다고 당신이 멈춰 설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당신의 반응이 의외였어요. 마치 유년 시절 즐겼던 얼음 땡 놀이처럼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죠. 도망가려고 마음먹었다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 거리인데도 말이에요. 나는 술래가 된 양 의기양양하게 단숨에 달려가서 당신의 멱살을 잡았어요. 내 다른 한 손엔 집에서 들고 나온 식칼이 쥐어져 있었죠. 당신은 그때 직감했을 거예요. 곧 콩밥을 먹게 되리라는 걸.


왜 우리 집을 몰래 들여다보냐는 나의 앙칼진 물음에 당신이 대답했죠.


"치... 친구랑 통화하다가 싸움이 나서 화가 나서 라이터를 던졌는데 그게 골목 깊숙이 들어가서 그걸 주우려고 들어갔던 건데..."


당신은 아나요?

이 세상에는 말과 말이 아닌 것이 있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방금 당신이 내뱉은 것처럼 말이 아닌 것을 흔히 개소리라고 해요.


당신이 라이터를 주우려고 들어왔다던 길은 길 고양이가 아니라면 드나들지 않을 정도로 좁은 너비였단 걸, 당신이 나를 지켜본 부엌 창문까지 오려면 건물을 기역 자로 끼고돌아 깊숙이 들어와야 한다는 걸 간과한 당신의 답변은 화는커녕 코웃음도 나오지 않을 정도였어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탓인지 주인집 부부 내외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 다섯이 뛰어내려와 당신을 포위했고 도망갈 곳이 없던 당신은 '라이터를 주우려고 했을 뿐인데... 라이터를 주우려고 했을 뿐인데...'만 반복했죠. 처음부터 당신을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던 나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차 뒷좌석에 태워져 끌려가는 당신을 본 게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어요.


그 후 알았죠.


당신이 우리 집만 본 게 아니었단 걸.

지속적으로, 오랜 시간 그런 짓을 해왔단 걸.

그리고 자신이 지켜본 모습을 핸드폰으로 촬영해 왔단 걸.


돈암동에 거주하는 30대 변태 아저씨.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아직도 밤마다 남의 집을 도둑고양이처럼 들여다보고 핸드폰으로 찍어대고 그러다가 인기척이라도 들릴라 치면 그 가냘픈 몸으로 줄행랑치면서 살고 있나요?


노쇠한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정신 차리길.

바라옵고 바라건대 개과천선하길.

만약 그 짓거리를 계속하거들랑 부디 내가 사는 곳으로 또다시 찾아오길.


식칼 잘 갈아두고 기다리겠습니다.



우리의 두 번째 조우를 고대하며

당신의 고소인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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