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2026년 1월 1일, 이 글을 쓰는 현재 시각으로 새벽 01:43분을 지나는 중이다. 정말로 새해가 오기는 오는구나, 싶어서, 이상하게도 유독 감격스럽다. 이제 작년을 완전히 떠나보낸다.
이번에 취업에 성공하면 기존에 정기후원을 하고 있던 국경없는의사회에 더하여 추가로 2곳을 더 후원하여, 매달 3곳의 단체를 정기후원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을 드렸다. 사실 나는 교회 바깥의 그리스도인이기에, 이런 내 신앙의 방식이 교리에 맞는지 안 맞는지 형식이나 의례적 기준에 적절한지 같은 건 잘 모른다. 난 광야에서 홀로 피어난 이름 없는 들풀이니까, 못생긴 신앙이라서. 나머지 한 곳은 2월 초에 첫 월급을 받으면 그때 등록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내가 기존에 국경없는의사회를 선택한 이유는, 1) 여러 단체들 중에서 비교적 깨끗하고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고, 2) 특정 이념이나 사상에 얽메이지 않고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지향하는 듯했고, 3) 단체의 방향성이나 활동의 목적성이 선명하고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기부하면서는 문득 내 안에서 그분의 음성을 듣기로, 한 곳은 국내에서 당장 벼랑 끝에 몰린 삶의 현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돕는 곳을 찾아서 후원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고, 나머지 한 곳은 어려운 처지나 환경 가운데에서 미래의 희망이나 자신의 꿈, 비전,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을 돕는 곳으로 후원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무척 선명한 음성이었다. 그래서 안나의 집의 경우에는 두번째 목적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활동이나 방향성을 가진 듯하여 선택했다. 무엇보다, 비록 종교 안에 속하지는 않더라도 그리스도인의 모든 신앙적인 토대는 가톨릭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점에서도 여러 단체들 중에서 선택하게 된 비중이 컸다.
새해 첫날이 되자마자 첫번째로 떠올린 의지, 그리고 첫번째로 실행한 행위가 하나님께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과 또한 선행이라는 것이, 이유 없이 참 좋다. 지난해가 유난히 힘들었기에, 올해는 그래도 지난해의 시련과 고난이 결실을 맺는 좋은 한 해가 되기를 바라고 소망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기부한 것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그분께서 이해해주시리라고 믿는다.
금요일이 첫 출근이고, 그 이후부터는 주말을 포함한 주 5일 근무이다. 구체적인 부분들은 출근을 해서 적응해나가면서 판단해야 하겠지만, 현재까지로서는 내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교적 조용하고, 한적하며, 여유 시간이 많고, 혼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등의 자기 활동에 투자할 시간이 많은, 고정적인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되는 형태의 근무이다. 비록 1년짜리 계약직이지만, 장기적인 비전이나 이상을 위해서 준비할 시간적인 여유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만족스럽다.
여기까지 흘러오는 내 삶의 과정들이 철저하게 내 의지, 내 판단, 내 계획을 전부 다 무너뜨리시는 방식으로 역사해오셨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올해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도무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과연 내가 소망했던 대로 내게 안식년을 허락하시려는 것인지, 그 안식년 가운데에서 올해는 뜻을 펼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허락하실지, 외부적인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따라서 나를 안으로 거두어들이셔서 보호하시려는 뜻인지, 모든 것을 판단하기 어렵다. 결국 나는 이대로 출퇴근하고 일에 적응하면서 다음 단계의 하나님의 시간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내게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일이기는 한데, 어느 날에서인가 문득 내게 "사생활"이라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년 여름쯤인가 어느 지인이 내게 "종교나 영성적으로 말고, 그냥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같은 것 없어요?"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게는 그런 "사적인 삶"에 대한 집착 같은 게 전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난 그저 그분께서 내게 허락하신 작은 능력과 힘으로 그분의 뜻을 섬기고 이루기 위한 사역과 사명을 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고, 그 일들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할 경제적 기반 정도만 갖춰지면 나머지는 나 자신을 위해서 딱히 원하는 게 없었던 것이었다. 내게는 사생활이 없다. 지금의 나는 그저 신과 함께, 신의 뜻을 이루고 함께하며, 그리 살아갈 수 있기만을 바라고 소망할 뿐이다. 작년까지는 그 기회가 완벽하게 닫혔고, 심지어 기존에 있던 기회들마저도 박탈당하는 과정들의 연속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삶의 중대한 전환기라면, 올해에 무언가 유의미한 변화들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생각보다 더 워커홀릭인 편이다. 사실 내게 돈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만약 사역이나 사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돈을 오히려 내가 따로 벌거나 지불해가면서 해야 한다면, 그 또한 내게는 합당한 일 중 하나이다. 돈이야 아르바이트를 하든 기간제 일을 구하든 간에 상황에 맞춰서 하면 그뿐이다. 꼭 영적인 일들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걸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은 버린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사명은 절대로 내 마음대로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다만 때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 만약 내가 정말로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대로, 내가 본격적으로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삶이 열리고 변화되기 시작한다면, 나는 하루 24시간 잠 자는 시간조차도 줄여가면서 그 일에 몰두할 것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내게 주어진 능력으로 봉사하고, 돕고, 함께하며, 그리 보내는 삶 자체가 내게 사적인 기쁨이고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리하는 대가로서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 일을 꾸준히 이어나갈 최소한의 의식주 정도를 해결할 만큼의 수입뿐이다. 이것이 나의 오래된 소망이었는데, 새해의 시작에서 내게 안정적인 수입원은 보장해주셨는데 정작 사명에 관한 것은 여전히 아무것도 열어주지 않으셨으니......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 정도만 겨우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진실함이다. 그리고 그 진실함의 기준은 오직 하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가?"이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큰 돈을 벌게 된다 하더라도, 물론 인간적으로야 잠시 즐거울지언정 내 영혼은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면서 굳이 고생해가면서 사역이나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최소한의 물질적 기반과 보호가 따르고,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기쁨이며 또한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것, 순종하여 따르는 것, 그 과정 속에서 전적으로 기뻐하는 것, 이뿐이며 이것이 나의 진실성이다.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하든 간에, 내게 중요한 최우선 기준은 이 하나뿐이다. 이 하나의 기준에 관한 한, 사실은...... 지금의 글쓰기는 내게 많이 버겁다. 나는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도움과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부분에 관한 한, 여전히 그분은 내게 문을 열어주지 않으신다. 물론, 그분의 의지는 전적으로 옳으시며 나는 끝까지 믿고 따를 것이다. 다만 올해에는 어떤 식으로든 간에 내가 숨은 쉴 수 있을 만큼의 활동의 기회라도 열어주시기를 기도할 뿐.
새해가 되니 기쁘다. 시간은 흘러가고, 현상계에서 영원한 것은 없으니, 이 고통스러운 기약 없는 기다림도 인내도 언젠가는 반드시 끝이 나겠지.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