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5년의 마지막 날이다.
해가 떠오르고 지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해는 매일 뜨고 매일 지지만, 한편으로는 매일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며 영원의 시간 안에서 흘러가고 있다.
성령께서 나를 어여쁘게 봐주시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새삼스레 되새긴다. 지난 수 년간의 시간들이 내게는 영혼의 어두운 밤이었지만, 특히나 올해는 더욱 절정에 달해서, 올해가 영원히 지나기지 않을 것만 같았다. 침묵과 외로움과 공허와 허무 속에서의 시련과 고난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참으로 올해가 이리 기어코 보내어지는 것이, 참 다행이랄까. 아무리 막막하더라도 시간은 어쨌든 흘러가고 지나간다는 사실이, 아버지께서 그리 우주의 법칙을 세우셨다는 것이, 이다지도 감사할 일이다.
올해의 마지막 순간에서조차도 그분께서는 내게 잔인하리만치 나의 마지막 작은 소망조차도 들어주지 않으셨지만, 한편으로는 새해를 맞이하여 내게 살 길은 확실하게 열어주셨다. 그리고 잘만 한다면, 이상적인 환경 속에서 적당한 돈을 벌고, 공부하고, 글쓰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여유도 마련해주셨다. 하나님의 시간이 열리기 전에는 어떤 기도를 해도 절대 인간적인 희망을 들어주지 않으시는 분이시지만, 동시에 당신께로 가까워지고자 열망하는 영혼이 절대 현실의 어두움에 잠식당해 죽지 않도록 때마다 살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럼에도 이를 견디지 못해 삶이라는 마지막 희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 모든 이들의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을 성령께서 반드시 외면하지 않으셨으리라고, 나는 홀로 어리석고 서투르고 무모한 신앙으로서 이리 순진하게 믿는다. 이제 내게는 화려한 언어도 말도 지식도 지혜도 없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으되 내게 남은 것은 오직 믿음 하나이기 때문이다. 결국, 믿음이다.
신께서 올해 내게 주신 시험에 나의 답안지가 차마 눈 뜨고 못 봐줄 지경이지만(처참한 악필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끝까지 시험장을 도망치지 않고, 마지막 1초까지도 최선을 다하여,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올해의 시험에 반드시 응답을 제출했다는 것이, 내게는 참으로 기쁜 일이고, 스스로에게 위안이 된다. 올해의 끝을 맞이하여 뒤돌아보니, 결국 이 하나만이 남는다.
기존에 국경없는의사회에 2만원 정기후원을 하고 있었고, 오늘부로 내년 1년간의 고용이 완전하게 확정되었으니, 새해 1월 1일이 되는대로 또 하나의 정기후원을 등록하기로 했다. 최종적으로는 2월에 첫 월급을 받는대로 한 곳을 더 추가하여, 세 곳을 만들 것이다. 3이라는 숫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성에 대한 나의 경외이자 찬양이다.
나머지 두 곳은 차례대로 아름다운재단, 안나의 집을 선택했다. 내가 무슨 기준대로 골랐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내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것은 결국 교만일 것이다. 다만, 나는 여전히 갚아야 할 빚이 있고,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태이며, 미래를 장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써 그 사랑에 대한 책임을 아주 작은 수준에서나마 이행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가난한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했을 따름이다.
이제는 이것이 거짓이고 기만이고 위선이어도 상관이 없다. 이런 내 마음이, 이런 내 신앙이, 이런 내 믿음이, 거짓말탐지기 앞에 앉았을 때 거짓이어도 상관이 없다. 위선이어도 상관이 없다. 자기 기만이어도 상관이 없다. 그래도 할 것이다. 살아 평생에, 위선이라도 좋으니 선을 사랑할 것이고, 선을 열망할 것이고, 부끄러운 수준에서나마 죽기 전까지 한 걸음씩이라도 선을 향하여 살천하고 나아갈 것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상태를 보지 않으시되 의지 하나만을 보시는 분이라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비록 내 상태는 거짓일지언정, 아버지를 향한 나의 의지, 아버지의 뜻을 열망하여 이루고자 하는 내 의지는 진실하며, 변함이 없다.
올해의 여정들에서, 수 차례, 수십 차례나 그때마다 외적인 삶은 하나씩 무너지고 또 깎여나갔을지언정, 나는 아버지 앞에서 도망가지 않았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성령께 대한 나의 충성을 꺾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가난하므로 말미암아 시련 가운데에서 전진하지 못하였으나, 두렵고 무서움에도 나의 시험, 나의 전선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는 것은, 내 부끄럽고도 자그마한 기쁨이다.
이제 내년이 어떻게 되든 별로 상관이 없어졌다. 참으로 다행히도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그러니까 글을 쓰는 일 하나만큼은 어떻게든 이어나갈 수 있도록 그분께서 물질적인 여건들을 모두 마련해주셨으니, 이것으로 연말에 선물을 주신 것이라고 믿고 감사드린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써야지. 어차피 외적인 삶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되 오직 그분의 손에 달려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적인 삶, 곧 사랑하고 열망하고 기뻐하면서 한결같은 의지로 충성을 다하는 것뿐이다. 외적인 삶은 이제 두렵지 않다. 내 모든 것이 다 무너지더라도, 나는 글을 쓸 노트북과 충전기와 덮고 잘 신문지 하나만 있으면 족하다. 그때에는 오히려 지금보다 더 편안할 것이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그날 먹을 양식과 물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생존을 이어갈 수 없었던 그 옛날의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의 순결함에 나는 이 생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 닿을 수 없을 것을 알기에.
내년의 계획이랄 게 솔직히 지금은 없다. 일단, 지금 연재하는 브런치북들은 어지간하면 연재가 누락되지 않도록 매주 꾸준히 쓸 계획이다.
그런데 이게 고민이라 해야 할지, 기쁘다 해야 할지, <생명의 언어> 같은 글들은 특히나 내 능력이나 내 지식으로는 절대 흉내낼 수도 꾸며낼 수도 없는 글이어서, 그 주에 성령께서 자비를 베풀지 않으신다면 나는 그 주의 생명의 언어의 연재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을 느낀다. 이는 요한복음 이야기나,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내 안에서 <신성한 수동태>, "신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다"의 생명의 구조를 강화하시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인간적으로는 위태로우나 그럼에도 영적으로는 기쁘다.
<오쇼젠 타로> 시리즈도 아직 한참이나 남았고, <요한복음 이야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어찌 됐든 지금 쓸 수 있는 글들은 전부 다 쓰고 있으니, 이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다음 단계의 하나님의 시간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준비할 수밖에.
굳이 개인적인 새해 목표라고 한다면, 기왕에 1년간 고정적인 일자리가 생긴 김에 예전의 수행식 및 단식 루틴을 회복하고 강화할 계획이다. 육체적인 활동량이 많지 않은 형태의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무리는 없을 듯싶다. 그리고 남는 시간들에는 그동안 미뤄뒀던 책들을 읽어나가고, 써야 할 글들을 쓰는데 최선을 다하려 한다. 이 정도가 그나마 새해 계획의 전부이다.
운전대가 내 손에서 떠나 그분의 손에 맡겨드린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이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지금까지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새해에도 모든 분들께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