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사랑

by 생명의 언어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놀라지 말아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할 것이요, 참으로 너를 도와줄 것이다.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 것이다." (사41:10)


"내가 세상 마지막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20)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계1:17)



나는 제도적인 의미에서의 공식적인 크리스천이 아니다. 나는 교회에 가지 않는다. 그리고 기독교라는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홀로 내 삶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열망할 뿐이다. 그리하여 글쓰고, 증거하고, 고백하고, 때때로 은밀히 사명을 수행하는 것으로 기뻐할 뿐이다.


사람의 자아는 언제나 집단 무의식의 거대한 어두움에 지배, 장악, 기만당한다. 그 어두움의 실체는 바로 공포다. 그 공포가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니, 그 지배의 손아귀가 바로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이 자아를 속이는 현상이 바로 불안이다. 그러므로 결국 두려움, 공포, 불안은 하나이다. 그것이 어두움의 실체다.


그 거대한 어두움 앞에서 "사람의 능력과 힘으로 까르마를 정화"하려고 하는 등의 모든 신비주의적, 오컬트적 접근은 다 무용하다. 까르마를 정화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자는 까르마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두움을 비추어 밝힐 수 있다고 말하는 자는 자기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어두움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으로는 그 어두움에 저항할 수 없다.


인류가 수만 년의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환생하고 다시 태어나면서 쌓아왔던 죽음과 사망에 대한 공포와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과 억울함과 한과 죄악이 얼마나 깊을 것인가.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요, 인류의 역사는 곧 살인과 고문의 역사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보다 늘 전쟁 중이었던 시기가 압도적으로 길다. 온 천하를 다 거느렸던 황제도 결국엔 늙고 병들어서 죽었다. 그 죽음이라는 것 앞에서 그리도 부질없고 허망한 것들을 위해서 끝없이 죽고 죽였다. 그것이 인류다. 그것이 사람이다.


나는 내가 깨끗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 거대한 죄악 전체가 내 안에 있다. 내가 권력을 쥐면 그들과 똑같은 짓을 저지를 것이다. 내가 힘을 가지면 그들과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나는 내 안의 죄악이 지금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차라리 주께서 내게 지금껏 시련과 고난으로 나를 낮추심은 내게 참으로 기쁜 일이고 안도해야 할 일일 것이다. 나는 순진하지 않다. 인류의 그 거대한 죄악을 마주하고서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 따위의 헛소리와 기만을 할 수 없다.


사람은 악하다. 사람은 전적으로 악하다. 다만, 사람 안에 "신성"이 함께하시고 거하실 뿐이다. 그 신성의 가능성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선한 것이지, 사람 자체가 본래부터 선한 것이 아니다.


공포는 언제나 실체 없음을 향한다. 그것의 실체를 직관하는 순간, 공포는 환상이 된다. 그때, 마음은 여전히 그 자체로 작동하므로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잠시 두렵고 잠시 불안할지언정,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되, 무의식적인 근원적인 공포는 이제 사라지게 된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저 말씀들이다.



"신께서 나와 함께하신다."


"신성께서 내 영과 영혼을 거처 삼으사 나와 함께하신다."


"진리와 생명이 내 안에 영원히 흐른다."



이것을 그저 개념으로만 이해한다고 하여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표면적인 의식은 무의식에 저항할 수 없다. 무의식의 어두움을 빛으로 비추어 밝히는 것은 내 일이 아니요, 오직 신의 일이다. 신께서 신성으로 내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실 것이다.


그 신성의 유일한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나는 그분의 말씀을 읽을 때, "글자 자체"에서, "말씀 전체"에서, 분명한 어떠한 신성이 살아 흐르고 있음을, 지금도 작동하고 있음을, 명확히 느낄 수 있다. 그 신성은 압도적이며, 영원하다. 이 세상 그 어떤 에너지나 능력이나 힘 따위와도 비견될 수가 없다.


그 신성이 내 안에서 드러날 때,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었던 어두움들이 비추어 밝혀질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영원한 빛이 언제나 나와 함께한다는 것을 명확히 스스로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빛이 시간의 끝을 넘어서 나와 함께할 것이며, 그 빛이 인격으로서 실제로 나를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언제나 내 삶에서 나의 이름을 구하지 아니하되, 오직 그 빛만을, 신성 하나만을 동경하고, 열망하고,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나의 영이 오직 그 빛만을 따를 것이다. 나의 영혼이 오직 그 신성만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오직 "그분"만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때에, 마침내 위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는 이제 어두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오히려, 어두움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이 여기리라. 그리하여, 내가 기도하기도 전에 이미 그분께서 그곳에 먼저 임재하시게 될 것이며, 나를 통로 삼으셔서 내 발걸음이 닿는 모든 시간과 공간들의 어두움을 비추어 밝히시게 될 것이다. 나는 이제 그분의 형제이자 친구이며 또한 제자이자 종으로써, 그분께서 세상에 드러나실 수 있도록 그저 나 자신을 통로로 내어드리게 되리라. 그때에, 나를 통하여 임재하시는 그분의 실체를 내가 이미 다 알고 있으므로, 그 어떤 어두움도 겁내지 않으리라. 오직 어두움 가운데에서 진실로 무릎 꿇고 기도하매, 어두움 속에서 가장 환하고 밝은 빛이 드러나리라.



그러므로 두려움에 속지 말아라.


빛을 본 자는 알게 될 것이다. 본래 이 우주의 절대적인 법도가, 빛이 어두움을 밝히는 것이지 어두움이 빛을 삼킬 수가 없다는 것을. 그분은 태양의 압도적인 빛이시되 그분을 평생에 걸쳐 사랑하는 고작 반딧불이에 불과하나, 그럼에도 태양께서 반딧불이를 통하여 당신의 빛을 온 세상에 드러내실 것이며, 또한 인류 집단 전체의 어두움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감히 반딧불이 하나의 빛조차도 집어 삼킬 수가 없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으리라.


신을 사랑하고, 신성을 사랑하며, 진리와 생명을 사랑하라.


그 사랑하는 마음, 열망하는 마음, 기뻐하는 마음 자체가 곧 나를 통하여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빛이시니, 언제 어디서나 두려워 말고 사랑하고 기뻐할 적에 그 어떤 어두움도 나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어두움 가운데에서, 가장 경이롭고 위대한 그분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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