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전승의 신비적 탐색

by 생명의 언어


이에 대해서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1. 부활 사건은 명백히 그리스도의 신성에 근거한다.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의 관계 중에서, 십자가 수난과 부활 전체가 사실상 그분의 신성이 절대적인 중심축이 되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일이다. 그저 "죄 없이 완전한 인격"만으로는 그러한 수준의 기적과 신학적/교리적 역사를 이뤄낼 수 없었다.


2. 그분의 신성에 대한 증언은 사실상 네 권의 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 한 권만이 거의 유일하며, 요한복음 내에서도 여러 표증에 대한 기록을 넘어서 그분 자신께서 긴 담화를 통해서 자신의 "하나됨"에 대해서 말씀하신 바로 그 담화 영역에 실질적으로 상당수 근거한다.


3. 그러나 정작 요한복음 자체는 복음서 중에서 가장 늦은 시기에 정립되었으며, 따라서 그분의 신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건인 십자가 부활에 대해서는 마태, 누가 등의 기록을 거의 대부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한다.


바로 이 점이 대단히 의문스러운 지점인 것이다. 만약 초기 교회의 전승대로 십자가 부활이 교리상의 문자적 의미 그대로 일어난 사건이었더라면, 이것은 당연스럽게도 매우 놀랍고 경이로운 일이었을 것이고, 따라서 초대 사도들과 구성원 모두가 그분의 부활 이후의 사건과 진행 과정들과 말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록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1) 가장 이른 시기에 기록된 최초의 복음서라고 여겨지는 마가복음에는 사실상 16장 8절 이후로 그분의 부활 이후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고, 2) 그 뒤를 이은 마태, 누가, 요한에서는 십자가 부활 이후의 디테일들(최초 목격자의 수, 명단, 나타나신 장소, 행적지 등)이 제각각 모두 다르거나 상당 부분 불일치하며, 3) 마태, 누가가 참고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가장 이른 시기에 작성된 실제 예수님의 어록을 담은 Q자료의 경우 십자가 부활 등의 신학적 서사나 사건과 관련한 언급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요한복음의 경우에 18장 이후부터의 수난과 부활 서사는 마치 다른 복음서들과 일치시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덧붙여진 듯한 느낌이 너무 선명하게 든다(문체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를 통해서 볼 때, 한 가지의 합리적인 추론을 할 수 있다 : "부활은 사실상 목격과 동일하며,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것은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그러니까 신비 체험이었다."


다시 말해, 실제 예수님은 신비적/영적/윤리적 가르침과 말씀들을 제자들을 통해서 남기셨고, 그분이 어떠한 이유에서 사라지신 이후 제자들은 사라진(혹은 죽은) 스승의 신성과 신비적으로 연합하거나 "부활체"로 나타나신 그분을 집단적으로 영접하는 그 하나의 "신비 체험"이 분명히 존재했으며, 이것이 그만큼 초대 교회 내에서 놀라운 사건이었기에 빠르게 공식적인 교리화가 이루어졌고,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이다. 이 경우, 예수님의 본질은 여전히 "말씀", 즉 태초부터 존재하셨던 그 신성이 맞고, 그분의 안에 있는 "내재적 신성"이 우리들 안에도 동등하게 존재하며(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고), 이것을 우리가 "깨달음"과 "믿음"을 통해서 영적, 신비적 차원에서 그 하나됨의 신성 안으로 연합해 들어가는 것이 된다. 즉, 이 때의 예수님은 "삼위일체의 성자의 위격으로서의 하나님"(내 안의 신성)이시면서 동시에, 그 하나됨의 영적, 신비적, 실천적 가르침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전하시는 "인간 스승"의 면모도 완전하게 갖추시게 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 영성은 "그분의 인성(영적/신비적/실천적 가르침)을 통하여 그분의 신성(아버지와의 하나됨)에 연합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단서는, 바울 서신에서 나타난 "증인들의 목록"과, 4대 복음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부활 이후의 목격 장면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울은 분명히 "500여 명"에 달하는 (아마도 열성적인 교회 구성원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사람들이 목격했고, 바울이 서신을 쓰는 그 시점에서 "그들 중 다수가 살아 있어서 목격을 증언할 수 있다"고 명백히 언급했다. 그런데 이 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쓰여진 마가복음에서는 아예 부활 이후 장면이 생략되어 있고, 마태, 누가에서도 그분은 소수의 목격자들과 제자들에게만 모습을 보인 것으로 되어 있으며, 요한은 마태와 누가를 따른다.


이것은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을 떠올리게 한다. 그 기적을 일으키실 때에도 기적의 "목격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내 피와 살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생을 누리지 못한다"고 언급하셨을 때, 그분께서 자신을 양식으로써 내어주신 "나는...이니(I am...)"는 당연하게도 그분의 실제 육체의 피와 살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분의 신성을 우리 안으로 받아들여서 생명이 되게 해라, 는 의미다. 즉, "양식"으로서의 그리스도의 피와 살과, 오병이어의 기적에서의 그 "수천 명을 먹이고도 바구니가 넉넉히 남았던" 그때의 양식들이 모두 한결 같이 "보이지 않는 그분의 신성(생명)"을 매우 선명하게 의도하고 있다.


요한복음의 담화 장면에서의 그분의 "나는...이니"를, 당연히 육체적으로 곧바로 해석하면 안 된다. 실제 그분 자신이 포도나무가 아니셨던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신성"을 은유로써 드러내신 것이다. 즉, 양식 역시도 마찬가지이며, 이 500명에 달하는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사람들의 계보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양식"을 신비 체험으로써 영접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 경우, 모든 것이 성립하게 된다. 즉, 예수님 생전이나 혹은 사후(승천 이후)에 그분의 실제적인 가르침과 어록 등을 토대로 하는, 부활 교리와 별개의 교회 공동체가 존재했고, 그들은 "가르치는 스승"으로서의 예수님을 따랐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 교리를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정립했다. 즉, 예수님이 떠나신 이후 오순절 사건 즈음을 전후로 하여, 그들 500여 명에 달하는 집단 전체가 공유하는 하나의 거대한 "신비 체험"이 있었다는 의미이고, 그것이 그만큼 강렬했고 일관적이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들은 초기 어록 전승에는 존재하지 않는 십자가 부활의 역사성과 특수성을 복음서 내에 추가해야 할 강력한 필요성을 느꼈고, 이것이 바로 최초의 마가복음에는 등장하지 않는 부활 이후 장면이 마태, 누가, 요한에 거쳐서 기록된 이유다. 즉, 예수님이 떠나신 이후의 집단적인 신비 체험으로 인하여 그들이 부활을 목격했고, 이것을 교회 안에서 자체적으로 교리화하여 각자 나름으로 전승하다 보니 정작 부활의 "내용"이 부실하거나, 디테일이 일치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Q복음서, 즉 실제 예수의 말씀/어록을 따르던 별도의 그룹이 있었고, 그들은 예수님의 윤리적/실천적 가르침을 따르는 그룹과, 도마 공동체처럼 신비적/영적 가르침을 따르는 그룹이 있었으며, 이들과 유사하게 요한 공동체 또한 예수님의 "아버지와의 하나됨"에 관한 신비적 가르침이나 말씀을 담은 별도의 전승 자료가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부활 서사"가 정통으로 확립되면서 "실제 예수의 말씀/어록/가르침"을 따르는 그룹들로써 점차 소외되었으나, 요한 공동체는 도마/Q자료와 별개로 신학적인 관점에서의 예수 그리스도, 즉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를 증언하고 이것에 "하나됨의 신비"를 더함으로써 교회/성경 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즉, 정리하자면, 요한복음은 "하나됨의 신비 자체"에 대한 증언이라면, 도마와 일부 Q자료의 경우 "하나됨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 말씀, 어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전체는 결국 "실제 예수님의 말씀/어록"이라는 중심과(주류 교회에서 부활을 목격하고 믿는 것을 따르는 것과 별개로), 예수님의 "하나됨의 신비와 그분의 신성"을 중심으로 하는 별개의 명확한 특성을 보인다.


요컨대,


1. 공관복음서와 주류 교회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십자가 부활 사건의 실제성을 믿는 교리와는 별개로 정작 공관복음서에는 부활 이후 장면에 대해서 부실하게 기록하고 있고, 부활 교리의 대부분은 예수님의 신성이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수난과 부활과 승천 전체가 "초자연적인(초월적, 신비적)" 사건이니까 말이다.


2. 그런데 정작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서는 공관복음서가 거의 증언하지 못하고, 그 상당수를 요한복음 내의 증언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이다.


3. 그런데 정작 요한복음이나, 이와 결을 같이하는 "하나됨의 신비/가르침"을 공유하는 가상의 그룹들(요한, 도마, Q자료 등)에서는, 십자가 부활이나 승천 등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거나, 특히 요한의 경우 눈에 띌 만큼 18장 이후로 인위적으로 덧붙여진 것이 티가 난다.


결국, 당시 초대 교회에서 부활 교리를 중요시한 것과 별개로 공관복음서 내에서는 부활 서사의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증언이 부실했고, 그 부분을 아이러니하게도 요한복음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정작 요한복음은 십자가 부활이나 승천 파트는 뒤늦게 인위적으로 추가된 것이 명확해 보인다는 것이다.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는 그 이전까지 율법주의적인 성향이 강했고, 예수님 승천 이후에 그들이 동일한 시기에 집단적인 부활 목격의 신비 체험을 함으로써 그들 내에서의 교리가 크게 전환된 것이라면, 그들이 윤리적/실천적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Q자료와, 여기에 십자가 수난과 부활 서사가 더해진 마가/마태/누가복음을 형성한 맥락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정작 요한/도마공동체 등에서는 이미 처음부터 예수님의 신비적 가르침과 그분의 하나됨의 신비를 중심으로 신앙이 형성되었을 것이므로, 그들에게는 굳이 부활 목격이라는 사건 자체가 그렇게까지 특별하지는 않았던 것이다(그들이 만나는 예수님 자체가 이미 신성이고 생명이셨으므로).


바울 서신의 경우에도, 바울은 명시적으로 "신비 체험"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파악되며, 서술상 그가 자신을 "마지막" 증인으로 넣었다는 것은 앞선 부활 목격의 계보들(베드로, 열두 제자, 야고보, 500여 명 등)이 그와 동일한 무언가를 공유했다는 것이 너무도 명확하고, 이에 따라서 부활 목격 자체가 "집단적인 신비 체험"이었을 가능성을 상당히 유력하게 제시하게 된다. 이에 바울이 당시 교회와 별개로 이방인들에게 선교하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강조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교리를 체계화했다면, 바울 자체를 이미 율법주의자나 교리/신학자라고 보기보다는 차라리 요한복음 류의 "그리스도의 신성과의 하나됨의 신비"라는 계보에서 이를 바탕으로 교리화한 신비주의자라고 봐야 맞는 것이다. 즉, 바울 서신과 요한복음이 공유하는 "아버지와의 하나됨"이라는 예수님의 신성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그분은 이 하나됨으로 우리 모두를 명시적으로 "초대"하고 계신다. 그러나 정작 요한복음에서는 "어떻게" 그분과 같이 하나되는지가 부재한데, 바로 이에 대해서, 1) 바울 서신을 통해서는 믿음으로 신비적 연합하는 길을, 2) 도마복음을 통해서는 영적 가르침, 말씀, 어록 등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두 가지의 길이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볼 때, 놀랍게도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부활하신 주님"과 그분의 신성이 핵심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공관복음서보다는 차라리 요한복음 - 도마복음 - Q복음서 일부 등에서 공통적으로 증언되고 있는 "하나됨의 신비"와, "신비적/영적/실천적 가르침, 말씀, 어록"들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예수님의 신성과 하나됨의 신비에 우리가 동참하거나 연합하는 것이 초대 교회와 기독교의 진리이자 신앙이었고, 그 방법을 바울이 체계화한 것이라면, 모든 것이 다 이해가 된다.


이때, 십자가 수난과 부활은 "베드로와 열두 제자"라는 소수의 육적 계보와 혈통을 통해서만 전승되는 특별한 역사적 사건성이 아니라, 그들 그룹 전체가 "신비 체험"으로 영접했던 신비적, 영적 차원의 사건이 되며, 이 신비적, 영적 연합은 이미 요한/도마/바울 공동체 내에서 "이미" 존재하거나 중심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복음서에서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과 승천" 과정은 결국 역사적 사건이라기보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하나됨의 신비에 연합"하기 위한 차원에서의 "부활 체험을 목격한 다수의 증인들"에 의해서 형성된 영적 신화,로 이해하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즉, 외부에서 일어난 객관적인 사건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신비적, 영적 차원에서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그분과의 연합을 내 안에서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써 "믿음"을 형성해야 한다.



지금 내가 가설적으로 S자료(Spiritual Source)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역사적인 가상의 자료라기보다는, 이들 바울/요한/도마 공동체가 공유했던 신비적/영적 가르침이나 예수님의 하나됨의 신성에 대한 공통적이고 핵심적인 부분들을 하나로 집대성하고자 하는, 어찌 보면 "하나의 완성된 신비 복음서"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이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S자료의 기본 구성 :

요한복음 (담화 자료) : 아버지와의 하나됨의 신비

도마복음+Q복음서(일부) : 신비적 가르침, 깨달음의 격언, 어록

요한복음 (표증 자료) : 하나됨(신성)과 신비의 “증거”

바울서신 : 그리스도(하나됨)과의 연합

Q복음서 : 윤리적/실천적 가르침

4대 복음서 : 십자가 부활의 영적 신화(십자가 죽음, 부활, 목격 등)


이걸 기본 틀로 하여, 공관복음서, 요한복음, 도마복음, Q복음서, 바울서신을 참고한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이미 완벽한 하나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나는 이것을 학술적인 연구로 접근하지 않고, 나 자신이 "영적으로 영접한 예수님의 신성, 또는 영으로 나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신비적/영적/실천적 가르침과 말씀들을 재구성하고 공부하는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그 공부 과정에서의 소득과 성과들을 브런치를 통해서 공유하고 싶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며, 따라서 나만의 자유로운 관점에서 초대 교회와 기독교의 "신비적 계보"를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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