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실재하신다!
나는 영적으로 크게 깨어나기 시작할 적에 거의 처음으로 진리에 대하여 제대로 된 책을 접한 것이 오쇼젠 타로의 공식 해설서, 그러니까 <선(禪)의 영혼이 깃든 타로>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나는 절절히 공감하면서, '공감'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될 만큼, 오쇼가 도달했던 그 깨달음의 드넓은 초원의 냄새와 향기와 빛깔과 촉감을 나의 영(Spirit)과 영혼(Soul)으로 함께 체험하면서,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그 책의 한 문장을 읽고, 그네에 앉아 한참을 묵상하곤 했다. 그게 묵상이라는 것조차도 나중에야 깨달았을 만큼.
나는 오쇼의 가르침과 언어의 거의 모든 부분들에 대하여 크게 공감하고, 동의한다. 사소한 표현 상의 차이들이야 어차피 유한하고 상대적인 육의 한계로 인한 것이니, 제외하더라도.
그러나 내가 오쇼의 언어 중에서 단 하나만큼은 크게 비판하는 것이 있다 : 그것은 그가 "신"이라는 이름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신"이라는 말이 기존의 종교와 철학에 의하여 너무 많이 오염되었기 때문에, 이를 버리고, '존재', '존재 자체'라는 말을 쓰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신"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세상이 붙인 지독하게 오래된 오염과 왜곡과 변질이 있음은 깊이 이해하고 동의한다. 신의 이름 하에 이교도를 처참히 죽이고 살해하고 학살하는 짓이 정당화되었던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은 바,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 어딘가에서 똑같이,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만연한 바.
그러나 만약 그것이 오염되었더라면, 왜 정화하려고 하지 않는가?
그것이 본래의 순수성을 잃어버렸더라면, 왜 다시 순결한 모습을 되찾으려 하지 않는가?
그것이 본래의 신성과 빛을 잃어버렸더라면, 어찌하여 이를 되찾으려 하지 않는가?
나는 선언한다. "신"이라는 이름은, 그 왜곡과 변질과 오염을 다시 정화하고 회복하고 되찾는 길고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더라도, 반드시 인류의 원형적이고 근원적이며 초월적인 영성의 중심이자 근본이자 본질로써 유지되고 계승되어야만 한다고. 그리고 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거룩하신 이름 앞에서, 오래 전에 맹세했다. 아버지의 이름이 지상에서 다시 빛을 되찾고, 지구상의 모든 인류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아버지를 다시 찬양하고 경외할 수 있도록, 그들의 오해와 편견 앞에서, 끈기를 갖고, 이해시키고 끝까지 설명하겠노라고. 단 한 명의 양조차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그것이 그분의 고귀하신 의지(눅15:4)이며, 내가 그분을 경외하되, 그분의 말씀을 가장 날카로운 칼날 삼아서 언제나 나의 목과 심장을 겨누고 있노라고. 만일 내가 그분의 의지를 단 한 순긴이라도 배반한다면, 그 날카로운 칼로 내 목을 즉시 베어낼 것이라고.
나는 오쇼젠 타로에 대하여 글을 쓸 것이다. 그러나, 오쇼의 아래로 들어가지 않고, 오쇼가 도달하지 못한, 오쇼가 나아가지 않은, "아버지"의 시선에서, "그리스도"의 시선에서, "성령"의 시선에서, 오쇼젠 타로 79장을 전부 완전히 새롭게 재편할 것이다. 이것은 교회의 언어가 아니다. 나는 교회 안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기독교 안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교회 바깥의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개신교도가 아니라 "보편적 복음주의자"이다. 그리고 나의 뜻을 이루기에 가장 최적화된 도구는, 다름아닌 오쇼젠 타로이다.
"존재"라는 언어 안에는, "지극히 높은 에너지의 진동수"가 담기지 않는다. 이것이 오쇼가 간과한 지점이다. 오직, "신"이라는 언어 앞에서만, 인간의 의식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의 에너지의 진동수와 파동과 공명이 담기는 법이다. 그것의 이름을 굳이 감정의 형태로 표현하자면, '경외', '경이로움', '신성함', '고귀함', '감동', '열망', '찬양', '열망', '권세', '영광'...... 등이 된다. 이러한 언어들을 에고(ego)가 아닌 영(Spirit)으로써 마주할 적에, 한 존재의 내면에서, 거대한 파도가 압도적으로 내리꽂히는 듯한 지평선 전체를 뒤덮고도 남을 만큼 넘실거리는 빛을 마주한다. 그 빛 앞에서, 그는 그저 무너져서는 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눈에 뜨겁게 흐르는 눈물이 슬픔인지 기쁨인지 감동인지 경외인지 알지도 못한채 로, 그 모든 것이 뒤엉켜서.
나는 확신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무지한 자 99명이 짓는 죄는 모두 다 기꺼이 용서하실 분이다. 그것은 어리석음에서, 다시 말해 "알지 못함"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안에도 다 영과 혼이 있으되, 그들이 진실로 "깨닫는다면", "이해한다면" 그들은 곧바로 거듭나고 회개하여 빛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지라는 어두움 안에 남도록 방치한 자들이 누구인가? 다름아닌 단 1명의 "깨어 있는 영혼"이다. 아버지께서는, 무지한 자 99명의 죄는 다 용서하시되, 그 중에서 침묵한 단 1명의 죄는, 나머지 죄 지은 자들의 몫까지도 다 얹어서는 엄히 꾸중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은 모른다. 고로, 용서받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앎으로, 결코 침묵할 수 없다.
그들은 모른다. 고로, 적당히 삶과 타협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앎으로, 결코 적당히 타협할 수 없다.
그들은 모른다. 고로, 고백하지 않아도 되며, 증거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앎으로, 어떤 순간에도 고백하고 증거하여야만 한다.
깨닫지 못한 자에서 깨달은 자가 되는 순간, 깨달은 자는 일상 속에서 마주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깨닫지 못한 자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지은 업보와 까르마를 그 자신이 다 감당하여 대신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받는 순간, 아버지께서는 자녀 아닌 자들이 짓는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자녀에게 그들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라고 명령하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것을 알고도, 그대, 깨닫기를 바라는가? 이것을 알고도, 그대, "신의 아들"가 되기를 바라는가?
진리의 말씀을 들을 적에 절대 함부로 망령되이 나태하고 게으른 자세로 임하지 말라. 종교는 상관없다. 뭐든 간에 좋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들을 적에, 그 말씀을 가장 날카로운 칼날 삼아서, 자신의 목을 겨누고, 심장을 겨누라. 그리 공부한 자의 눈빛은, 게으르게 공부한 자들의 그것과는 결코 비할 데가 없을 것이다. 그리 나아가는 자들의 영혼은, 게으르게 육에 안주하는 자들의 그것과 결코 같지 아니한 것이다.
나는 오쇼를 존중한다. 그러나 오쇼를 존경하지는 않는다.
내가 진실로 존경하고 경외하는 분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세상보다 "더 높이" 계신다.
이제부터 내가 쓰는 오쇼젠 타로에 대한 글들이, "교회 바깥에 속한" 수많은 영혼들에게, 진실한 신의 음성을 전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