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광고 문구 보고 힘들었던 사람들을 위해
주민센터의 12월은 기부의 달이었던 것 같다. 라면, 쌀 같은 식자재부터 전기장판, 솜이불 같은 생활용품 기부까지 다양했다. 사랑의 열매를 비롯한 현금 기부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는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모아서 낸 기부금도 있었는데, 그걸 보니 '아, 나도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학교에서 기부금 낼 때 같이 했었지'하는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때의 추억을 되짚다 보니, 그때 했던 생각들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는 기부금을 내면, 칠판에 학번 순으로 붙는 "시험 성적표"처럼 누가 얼마를 냈는지 볼 수 있었다. 나는 내 이름 옆에 적힌 숫자를 크게 하고 싶어서, 엄마한테 기부하는데 돈을 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3천원이면 이 아이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같은 자극적인 광고 문구도 영향을 많이 줬다. 엄마는 창문 닦을 때마다 200원, 바닥 닦으면 1000원 같은 식으로 집안일을 시키셨는데, 집에 있는 창문이란 창문은 다 닦아서 무려 3만원이라는 거금을 기부했었다. 당연히 반에서도 굉장히 높은 순위였다. 그 기부 성적표에는 0원이 적힌 아이들도 한 두 명 있었는데, 그땐 그 이름 옆의 '0원'이라는 숫자가 참 이상하게 보였다.
기부를 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일까?
어릴 때는, '기부를 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인가?'라는 고민을 참 많이 했다. 그땐 TV광고에도 그런 생각을 부추기는 게 많았다. '3천원이면 아이가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데 내가 2만원짜리 치킨을 먹어도 되는 걸까?' 같은 생각. 난 모르는 게 있으면 항상 엄마에게 물어보는 아이였고, 엄마는 거의 항상 나에게 답변을 주었기에, 그때도 그렇게 했었다.
"엄마, 3천원이면 아이가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데 엄마는 왜 안 내?"
질문을 한 기억은 있는데 답변은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엄마가 답을 주지 못했었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그 질문이 꽤 난감했을 것 같다.(엄마 미안) 그런데 이제는 말해주지 않아도 그 답을 알 것 같다.
내가 피땀 흘려 번 내 돈이야!!!!
돈을 벌어보니 조금은 느꼈다. 내 돈은 내 노동의 대가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곳에 쓸 자유가 있다는 걸. 내가 2만원으로 치킨을 사 먹는 게 더 가치 있는지, 아이들에게 깨끗한 우물 6.67개를 파주는 게 더 가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주체는 오롯이 나라는 걸. 당연히 나의 돈은 남에게 주지 않는 것이 디폴트이고, 기부를 하는 것은 그 당연한 기본값을 박살 내버린 위대한 결정이라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회복무요원 하면서 번 돈을 어디에 쓸지는 온전히 나의 자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치킨을 먹는데 쓴 돈 27900원의 기회비용이 피자가 아니라 깨끗한 우물 9.3개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아린 것은 어쩔 수가 없구나. 그래서 나도 12월에는, 눈 딱 감고 우물 3.34개만 파줬다. 이 얼마나 위대한 결정인가!
(실제로는 우물 파는 곳에 내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