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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젤라 Oct 26. 2022

당신이 나이를 잊고 살아도 되는 이유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만난 80대 배낭여행자들

한국에서 나이는 정말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나이에 참 야박하다.

25살만 되어도 자신이 이제 나이가 좀 든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내 생각에 25살은 청소년이다.(그만큼 잠재력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입니다)


질문 : 한국이 유독 나이에 집착하는 걸까?

정답 : 그렇다.


그러니 한국 사회는 좀 나이를 잊어도 된다.

약 6년 전 아프리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6년 전 스페인 교환학생 시절에 아프리카의 '모로코'라는 나라를 여행했다. 모로코는 유럽과 가장 가까운 아프리카 국가로 아프리카 내에선 그나마 인프라가 갖춰진 편이다. 그래도 아직 발전이 덜 된 국가이다 보니 포장도로는 거의 없고 수도 시설도 아주 열악하다. 숙박업소를 벗어나면 화장실도 푸세식이다.

 

나는 당시 돈이 없는 대학생이기에 한 방에 이층침대가 3개 놓인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잡았다. 숙소에 도착하니 내 바로 옆 침대에 백발의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할머니는 나에게 먼저 어디서 왔는지 물으셨고, 나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할머니와 몇 마디를 나눌 수 있었다. 할머니는 프랑스 파리 출신으로 나이는 83세셨다. 과거에 모로코를 여행했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다시 한번 이곳을 찾았다고 하셨다. 그녀는 정말 단출하고 흐물흐물한 백팩을 하나 메고 모로코로 여행을 왔었다. 얼굴엔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가 넘쳤다.  


그리고 내 앞 침대 1층에는 배가 남산만 한 임산부가 앉아있었다. 그 침대 2층은 임산부 남편의 자리였다. 나는 임산부에게 임신 중인데 여행하는 게 힘들지 않은지 물어봤다. 임산부는 전혀 힘들지 않다고 대답했다. 남편은 임신한 부인이 불편하지 않도록 계속 그녀를 보조했다. 짝꿍이 살뜰하게 챙겨주니 임산부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참 멋진 커플이었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모로코에 도착하자마자 첫날부터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 기준에 모로코는 83세 할머니와 만삭 임산부가 여행하기는 너무 도전적인 여행지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세상을 보는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나는 사하라 사막 패키지여행을 출발하는 날이었다. 모로코에 오기 전 지인의 추천을 받아 미리 현지 여행사로 사막여행 예약을 해둔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패키지여행은 거의 사기당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나를 포함하여 많은 나라의 여행자들이 이 사기 패키지에 속아 함께 사하라 사막으로 떠나게 되었다.


덜컹거리는 미니버스에 올라타 끊임없이 황무지를 달리는데 유난히 눈에 띄는 여행객이 있었다. 바로 독일에서 여행 온 80대 노부부였다. 할아버지는 여행 내내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고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가 고마운지 할아버지의 대머리를 자주 쓰다듬었다. 할아버지는 음식을 먹기 전이나 멋진 풍경을 보면 살짝 바운스바운스 춤을 추며 '울랄라~'라고 즐거운 추임새를 넣었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엄마 미소를 지으며 할아버지의 민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들은 이 패키지의 최고령 여행객이었지만 모든 일정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약 3일간 미니버스를 타고 포장이 거의 안 된 도로를 달렸고, 30분간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들어갔으며, 난로가 없는 천막 텐트에서 하룻밤 잠을 잤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길 가다 마주친 악사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웃으며 돈을 건네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반면 당시 23세 여행객이던 나는 고된 코스에 녹초가 되어 아주 예민해져 있었다...


지금도 가끔씩 모로코에서 만난 80대 여행자들이 생각난다. 나는 그들을 보며 많은 편견을 지웠다. 이제 곧 한국인 중에서도 80대 아프리카, 남미 배낭여행객들이 생길 것이다. 아마 내 또래 사람들 중엔 심심찮게 80이 넘어서 세계 각지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전에 가능하면 윗 세대에서도 80대에 사막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마음속엔 아직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면서 나이라는 숫자에 묶여 사는 40~50대들을 너무 많이 봤다. 건강만 따라주면 80이 넘어도 사하라 사막을 여행할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여행하는 사람들이 지구 건너편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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