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를 마치고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아버지가 사시던 곳에 갔다. 전주의 어느 원룸이었다. 집주인에게 받은 비밀 번호는 어머니 집의 비밀번호와 같았다. 그렇게 들어간 작은 원룸에는 마치 아버지가 계신 듯했다. 커피믹스가 있었고 싱크대 안에는 아침에 아버지가 드셨을 커피잔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아침에 커피를 한잔 드시고 운전을 해서 남양주까지 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티비, 이불, 옷가지들, 계산기와 여러 잡동 사니들. 냉장고 속에 그렇다 할 음식도 없었다.
늦은 밤
아버지는 홀로 티비를 보다 이렇게 주무셨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에 구멍이 났다. 한 번이라도 아버지가 계신 이곳에 와서 식사 대접을 했더라면,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까. 아버지가 계셨던 곳에 이렇게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려 왔다는 것이 사무치게 슬프고 서글펐다.
외로운 아버지의 인생이 내 삶에 들어와 중화될 수 있다면 아버진 조금 더 행복하셨을까.
짐을 정리하니 50리터 쓰레기봉투 몇 개가 나왔다. 그것들을 전봇대 앞에 버렸다.
내다 버린 짐들을 보고 어느 노인분이 기웃거리셨다. 아버지가 입던 옷가지들로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다면 아버지도 허허 웃으셨을까.
전주 어느 곳의 아버지가 사셨던 원룸.
그곳은 샛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가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아버지를 정리하고 왔는데 가을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러면서 내심 위안도 된 것은 아버지도 이 아름다운 것들을 보셨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이 샛노란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티비의 반대편에는 마치 아버지가 방금 전 티비를 보셨을 것 같은 형태의 베개와 매트리가 깔려 있었다. 모든 게 똑같은데 아버지만 계시지 않았다. 아버지만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셨다.
아버지의 단출한 살림살이에 가슴이 메어 졌다.
전주의 어느 원룸에서 아버지는 홀로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버지를 뵈러 전주에 간다. 아버지가 계신 전주는 내가 있는 곳에서 2시간 반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아버지와 저녁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술잔도 기울일 것이다. 아버지는 먼데 여기까지 오냐며 나무라셨다. 그러면서 애기는 잘 크냐며 매일 보고 계셨던 유정이의 안부부터 물으신다. '아버지 어디 아픈 데는 없으세요?' 매일 고통에 시달리셨을 아버지께 빈말을 건넨다. 아버지와 전주 한정식을 먹는다. 이가 많이 없으신 아버지는 물렁한 음식들만 드시면서 연신 맛있다며 말씀하셨다. 숭늉을 드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와 나란히 누워 티비를 본다. 아버지는 보고 싶은 것을 보라며 등을 돌리고 주무신다. 넓었던 아버지의 등이 작아 보인다. 나는 영화를 보다 티비를 끄고 돌아 눕는다. 아버지의 코 고시는 소리가 정겹다. 그 소리를 한 번만 더 들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나는 이제 샛 노란 은행잎만 보면 그 가을의 전주와 아버지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