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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한 하루 Jan 13. 2021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병간호 차이

남편과 아이가 동시에 아플 때

보슬비가 기분 좋게 내리던 날, 모유수유 강의를 들으러 보건소 갔다. 도착하니 이미 예비 엄마들이 앉아 있었다. 앞줄에 앉자니 은연중에 보일 내 뒤통수가 부끄러웠고, 명당인 중간은 만석. 그렇다고 열정 없어 보이는 맨 뒷자리는 싫어서 머뭇거리다 선택한 자리는 뒤에서 한 줄 . 출석을 부르고 강의가 시작됐다.


나와 같은 '필기구파'는 3명. 뒤에서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신명 나게 필기를 시작했다. 강의 중간쯤 '어머님들, 이 부분은 정말 중요합니다.'라는 교수님의 말에 사진파가 등장했다. 잠시 흔들렸지만 필기구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형광펜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오늘 강의 다 잊어도 이것만은 꼭 기억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등장한 동영상파의 유혹은 떨치기 힘들었다. 결국 나도 핸드폰을 들고 동영상 버튼을 눌렀다.


돌아보면 동영상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딱 하나 뇌리에 스치는 말이 있다. "혹시 시어머니가 산후조리해주시는 분?"이라는 물음에 어떤 사람은 호탕한 웃음으로, 나는 입술 끝에 경련이 살짝 일어날 정도만큼만 웃었다. 우리 반응에도 교수님은 진지했다. "시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하면 모유가 줄어듭니다. 논문에도 나와있습니다."


출산하고 시어머니가 잠시 아이를 보시는 동안 모유 10ml가 줄었다. 그 교수님은 참 용했다.



더 이상 시어머니의 도움은 필요치 않을 거라며 기세 등등했던 나는, 2020년 새해 인사와 함께 다시 도움을 구했다. 주사를 맞아도 열이 40도까지 올라가는 남편과 장염으로 앞뒤로 뱉는 아이 사이에서 어느 한쪽도 제대로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친정어머니는 대상포진.


'효율파'인 시어머니는 당신의 옷가지를 챙겨 오셨고, 나머지는 우리 집 근처 마트를 이용하셨다. 낱개로 포장된 이온음료 한 박스가 집에 도착했다. 아픈 남편이 굳이 거실로 나오지 않아도 되고, 머리맡에 두 수분 섭취를 하며 푹 쉬라는 사랑의 표현이었다.


작년 정초부터 응급실을 다녀온 남편은 올해 1월 4일, 이젠 수술 기록까지 세웠다.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며칠이 지나 퇴원을 하루 앞두고, 이젠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39.6도. 온도계에서 처음 보는 숫자였다. 병원에서는 감기 증상이 없는데 고열이 나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힘들 때면 윤향기의 <나는 행복합니다>를 큰소리로 불렀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여기까지만 불러도 힘이 났는데, 종일 는 아이와 몸져누운 남편 보니 이 노래를 떠올릴 힘도 없었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차에서 내린 엄마의 양손에는 짐이 한가득이었다. 동생이 귀띔하지 않았으면 '짐 하나도 없다'는 연기에 속을 뻔했다. 집에 도착한 엄마는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전복, 굴, 도미, 멸치 등. 알차게도 넣어왔다. 그렇다. 친정어머니는 '정성파'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수술 회복에 좋다는 주스를 아침마다 만들었고, 남편 도시락도 싸주셨다. 아픈 아이를 위해 각종 음식은 물론 기분을 맞춰주려 그림도 그리고, 풍선도 불고, 춤도 추셨다. 가시기 전까지 밑반찬을 만들던 엄마는 '친정엄마는 딸 집에 오면 가스레인지 앞에서 보낸다더니'라며 넋두리하셨다.     




남편과 아이가 동시에 아프면서 한 번은 시어머니, 한 번은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두 분을 비교하게 되었다. 결혼 전, '너희가 알아서 결정해라'는 시어머니의 말이 감사했다. 우리 의견을 존중하셨고 어떠한 간섭도 일채 하지 않으셨다. 당연히 신혼집에도 오지 않으셨다.


우리 집에서 손수 끓인 전복죽을 처음 먹어본 남편은 친정어머니의 따스함이 좋다고 했다. 명절에 송편을 빚은 것도, 가족과 여름휴가를 떠난 것도 남편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결혼하고 2번의 이사에 친정어머니가 함께 한 것도 언제나 혼자 일을 감당했던 남편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이렇게 보니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비교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인 듯하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비교란 둘 이상의 사물을 견주어 공통점과 차이점 등을 찾는 일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분의 공통점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겉으로 보이는 차이점은 나에겐 감사함으로, 남편에게는 따스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필기구파'인 나에게 때론 시어머니 같은 모습이 필요했다. 밥 하랴 간호하랴 내 몸이 지쳐 남편과 아이에게 짜증내기보단 반찬 몇 가지를 사놓고 휴식하는 센스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손글씨 가득한 노트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장엔 내 몸이 힘들지만 남편과 아이에겐 사랑과 헌신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상상도 하기 싫지만 만약 정말 만약에, 내년에도 남편과 아이가 동시에 아프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까? 밤새도록 고민했지만 결론이 쉽사리 나질 않는다. 정성파와 효율, 두 선택지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어머님들의 건강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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