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두 돌을 맞는 아이는 신체·언어 능력과 더불어 요술도 겸하고 있다. 바로 어제 같은 오늘을 선사하는 요술! 이 요술은 밥 먹다 말고 숟가락 던지기, 컵에 있는 물 일부러 쏟고 장난치기, 잠자기 싫어 도망가기를 한 달 넘게 이어가며 양육자에게 어제인지 오늘인지 헷갈리게 한다.
심술궂은 꼬마 요술사의 저주를 끊으려면 일상을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지난주 목요일처럼 말이다. 카페에서 결제를 하는데 점원이 두리번대더니 '고객님'하며 속삭이는 게 아닌가. 다른 손님 몰래 서비스를 챙겨주시려나 싶어 선웃음 후대답으로 다가갔는데 '고객님, 카드 한도 초과입니다.'
이런 날은 요술 소용돌이에 빠졌던 어제와 오늘을 확실히 구분하는 계기가 된다. 잊지 않으리 1월 21일.
그날도 그랬다. 신혼 6개월에 접어든 우리는 힘들게 찾은 단골가게가 문을 닫고, 서점 베스트셀러가 몇 주동안 그대로일 때쯤 지루해졌다. 곧 벚꽃이 만개한다는 소식을 들은 남편은 사람이 적을 때 다녀오자며 운을 뗐다. 북적이는 거리를 싫어하는 나에게 그때는 딱이었고 봄바람이 꽃잎을 샘하기 전, 우린 떠났다.
온몸으로 봄을 먹고 얼큰한 된장찌개로 배를 채우니 든든했다. 디저트로봄이 주는 용기까지 마신 우리는 평소와 달리 활동적인 일에 도전했다. 두 곳 중 고민하다가 천 원 깎아주는 곳에 마음을 굳혔다. 남편은 체형에 맞게 큰 것. 범버카도 못 타는 나의 상태를 심각히 듣던사장님은 창고에서 중간 크기를 내오셨다.
'오른쪽은 전진, 왼쪽은 브레이크.' 몇 번을 되뇌어도 긴장됐다. 결혼 전 자전거를 가르쳐준다며 두 시간 동안 내 뒤를 쫓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남편은 내게 먼저 앞장서라고 했다. 올라타자마자 비명을 지르는 나를 한적한 곳에 데려간 남편은 무섭게 가르쳤고 몇 번의 시험을 통과한 뒤, 전동 킥보드를 탈 수 있었다.
지켜보는 남편이 든든해서인지, 살랑이는 바람이 좋아서인지는 몰라도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점점 신도 났다. 하산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지 남편은 '먼저 간다'며 앞질러 갔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덧 반납 시간이 다가왔다. 남편이 먼저 횡단보도를 건너 기다렸고 나도 곧장 뒤따라가려던 참이었다.
반쯤 도착했는데 갑자기 깜빡이는 신호를 보니 나의 주특기 머뭇거림이 시작됐다. 신호등이 깜빡일 때 빨리 달려 횡단보도를 건넌 기억이 떠올랐다. 킥보드는 빠르니 건너고도 남겠다는 판단이 섰고, 그렇게 해맑게 웃는 남편과 가까워지고 있는데 오른쪽에서 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초록불. 킥보드를 타긴 했지만 횡단보도에 사람이 있으니 차가 멈출 거라 생각했다. 간절한 내 눈빛을 보지 못했는지 이미 차는 횡단보도 위에 바퀴를 올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왼쪽과 오른쪽 핸들을 동시에 잡았고 속도가 붙은 킥보드는 힘차게 달리고 달려 보도블록 턱을 들이받고서야 멈췄다.
무릎이 쓸려 피가 났지만 참을만했다. 문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깨와 팔목, 허벅지를 압박하는 고통이 찾아왔고, 집에 도착했을 땐 팔을 들 수도 없었다. 다음날 '대체 뭘 했는데 인대가 이렇게까지 늘어났냐'는 호통에 세 번이나 전동 킥보드를 설명했지만 오토바이로 생각하는 의사 선생님께 옅은 미소로 답했다.
작은 가방 하나 들 수 없었고 남편 도움 없인 옷도 못 입었다. 제일 힘든 건 잠들 때였다. 평소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들곤 했는데, 한 곳으로 무게가 쏠리면 뒤따라오는 고통 때문에 천장만 보며 잠을 청했다. 주말이 되고 남편과 친정에 갔다. 엄마가 해주신 밥을 먹으면 금방 나을 것 같아서였다.
식탁에 놓인 빛깔 좋은 음식처럼 빨갛고 푸르스름하고 노란 멍을 본 엄마는 속상함을 연거푸 마시더니 말씀하셨다. "0 서방, 자네는 운전면허라도 있지. 우리 딸은 면허도 없지 않은가?" 엄마만 빼고 모두가 웃었다. 10분을 넘게 설명했지만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그래도"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도 차를 몰고 있다. 하루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주로 가까운 거리를 주행하고 주차는 집 현관에 한다. 연료도 필요 없다. 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운전자에게 커피 연료가 필요하다. 그 차의 이름은 바로 유모차!
고객님의 안전과 기분을 최우선으로 하는 유모차를 운전하며 신호를 기다리는데 현수막이 눈에 띈다. "전동 킥보드는 인도주행 금지! 안전할수록 더 즐거워집니다." 추억을 떠올리며 집으로오는 길에 스마트 모빌리티(Smart Mobility)를 탄 세 분을 만났다. 아쉽지만 안전 장비를 착용한 분은 없었다.
내 차로 다가오던 전동 휠의 사나이는 현란한 S자를 선보이며 담배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쉴 새 없이 도로와 인도를 오가는 청년은 당장 내 킥보드 사건을 들려주고 싶을 만큼 위험해 보였다.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뒤에서 '훠이' 소리가 들렸다. 전동 킥보드를 탄 분이 조심하라며 보낸 신호 소리였다.
이제 스마트 모빌리티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걷기에는 멀고 차로 이동하기엔 어중간할 때, 안성맞춤이다. 개인적으로 건전한 취미활동이라 생각한다. 멋도 있다. 더군다나 환경까지 생각하니 이처럼 기특한 이동 수단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연이어 발생하는 사고에 이제는 운전면허를 소지해야 탑승이 가능하다.
딸을 걱정한 엄마는 지금 이 시대를 예견한걸까? 면허는 없지만 차를 운전하는 나 역시, 꼬마 요술사 고객의 안전을 위해 다시 한번 안전벨트와 안전바를 점검한다. 오늘도 안전 운행을 다짐하며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노래를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