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뒤 다시 내원하라는 말을 듣고 약봉지를 움켜쥐며 집으로 왔다.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하고 싶은 일을 찾았는데 현실, 아니 이젠 몸이 따라 주지 않는구나. 울고 있는 딸을 보며 어디론가 전화하던 엄마는, 걱정 어린눈빛으로다른 안과를 일러주었다.
갔던 길을 또 걸어서일까. 걸음을 뗄수록 마음이 무거웠다. 10분이면 도착할 텐데 30분이 걸렸다. 갖은 생각이 걸음의 무게를 더한 것이라 해두자. 현미경 사이로 원장님 얼굴을 살폈다. 금색 안경테, 차가운 눈매, 얇은 입술. 이윽고 눈 조형물을 꺼내 든 원장님의 설명이 시작됐다.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정말 녹내장이구나. X-ray 위로 붉은 레이저가 왔다 갔다 하더니 한 곳에 멈췄다.
"자세히 보면 이 부분이 다른 사람보다 커요. 그래서 녹내장이라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녹내장이아니라는 말에 찰나의 이별을 준비한 내가 우스워졌다.
처음 떠난 고향이 그리워서인지 편입생이라는 텃새가 힘겨워서인지는 몰라도 다시 눈이아팠다. 마침 주말에 집에 가게 되어 안과를 찾았다. 자주 올 수 없으니 안약을 더 처방해달라는 말을 공손히 덧붙였다.
"전공이 뭐예요?"
"국어예요."
"공부하는 거 어때요?"
"..."
답을 할 수 없었다. 글이 좋아 선택한 길이지만 녹록지 않았다. 2년 만에 졸업해야 하는 부담감, 반드시 임용에 합격해야 한다는 중압감은누가 더 무거운지수시로 저울질해댔다. 그 순간,답하기 곤란할 때 튀어나온 나의 농담이 반가웠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원장님은 말을 이어가셨다.
"근데 아까 대답 안 해줬는데."
"네?"
"사실 내 꿈이 국어국문학과에 가는 거였거든. 부모님이 반대해서 못 갔지만..."
흐려지는 말끝에 서글픔이 맺혔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어쭙잖은 위로를 던졌다.
"그래도 지금은 원장님이 되셨잖아요. 저는 원장님이 부러운데요?"
얇은 입술 사이로 씁쓸함이 나돌았다. 어쩌면 원장님은 나를, 내 삶을 동경했을까.
학교에 돌아와도 변한 건 없었다. 여전히 수업은 따라가기 벅찼고, 답 없는 생각들이 저울질하는 밤이 되면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을 지키기 바빴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중심을 잡아준 건 '그래도 나는 도전했다'는 스스로의 위안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병원 번호로 문자가 도착했다. 병원이전안내 문자였다.
가끔 안약을 넣을 때면 그 날의 먹먹한 대화가 떠오른다. 이루지 못한 꿈을 품고 사는 것은 어떨까. 잊을 수 없는 꿈을 간직하는 삶은 어떨까. 답 없는 질문이 마음까지엉겨 붙을 때면 그래도 나는 도전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가시린 현실에눈을 떴다.
후-불면 먼지처럼 일어날 미련에 전공서적은 숨겨둔 지오래다. 수납공간이 없다는 핑계에 꿈을 묻었다. 간혹 아이가 책을 찾아 꺼내올 때면 비밀을 들킨 것 같아 더 깊숙이 감춰버렸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지난 주말, 서점에 들렀다가 어떤 책 앞에 멈춰 섰다. 저자의 이름만 봐도 설렌 날이 있었다. 이런 선생님이 되겠다며 다짐했었다. 책을 집어 들고 목차까지 살폈지만사지 못했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꿈을 외면한 나에게서,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질문의 답을 찾았다.
누구나 꿈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꿈을 찾는 과정은 힘들다. 후회하지 않을 용기, 선택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고된 일이 남았다. 버티는 일이다. 주변의 말, 환경, 나조차 어찌할 수 없는 변수까지 이겨내야 한다. 하지만 이토록 힘겹게 이룬 꿈이 생각과 다를 때또 고민하게 된다. 이 꿈이 내가 간절히바라던 꿈인지머뭇거리게 된다.
어쩌면 원장님은이루지 못한 꿈이 아니라,더 이상숨기지 않아도 될 꿈을 간직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툭 던져도 아프지 않은 꿈. 나도 그 길을 가고 싶었노라 말할 수 있는 꿈. 스치듯 마주친 꿈 앞에서도 초연 해지는 그런 꿈. 한때 나에게도 당신과 같은 꿈이 있었다고말하게 되는 꿈 말이다.
그런데도괜히 브런치를 둘러본다. 여기라면원장님을 찾을 수 있지않을까. 접어둔 꿈을 남몰래 펴 보이는 원장님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서점에서본책을발견하고, 마음이 일렁였던 나를. 여기에선 드러내도 되지 않을까. 아쉬움도 미련도 아닌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여기에서, 여기라면 마음껏 드러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