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정말로 헷갈릴 때가 있다. 나는 냄비이고 남편은 돌솥이란다.
매사가 반대인 두 사람은 서로가 피곤하다. 풀 맛이 최고인 나와 풀때기 맛에 도리질하는 남편, 뜨거운 건 혀 가 얼얼할 만큼 뜨거워야 맛나고 찬 것은 얼음맛이 제맛이라는 나와 미지근해야 최고라는 이해불가 입맛부터 뭐 하나 조화로운 게 없다. 그래서 나는 틀렸고 본인은 옳다는 얘기다.
일 이 생기면 쓱싹 처리하는 냄비는 다해놓은 일이 꼬여서 골치 아파할 때 돌솥은 느릿느릿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해 놓고는 한다. 그러니까 바글바글 끓어서 후다닥 99% 를 처리하고 나면 1% 돌솥의 권위를 휘두르며 멋진 마무리를 한다. 마치 마지막 MSG 한 꼬집을 톡 떨어뜨려 화려한 맛으로 변신한 요리와도 같다.
냄비 근성은 “경계성 장애 증후군”이라는 정신병의 기본이라면서 어느 날 책을 주문해서 내가 속한 장애 부분을 책에 밑줄까지 쳐놓고는 열심히 공부해서 장애를 고쳐보란다. 대충 읽어보니까 그게 왜 나의 장애가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똑똑한 저자의 글은 많은 부분 옳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나와는 맞지 않았다. 많은 상담결과로 탄생한 책이니까 도움 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이름마저 낯선 경계성 장애 즉, 만사에 분명한 선 들이 “꿈쩍 불가 증후군”인 돌솥 속에서 지져지고 나면 경계가 아예 없어져버린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초탈한 존재이고 즉 경계가 무너진 초자연인인데 날 보고 밑줄 그은 책을 읽고 고치라고? 와 정말 헷갈리는 중이다.
얼마 전 뜨개질 하다 엉망으로 뒤엉켜서 풀 수 없는 실타래를 한쪽 구석에 밀어 놓았다. 남편이 쓱 쳐다보더니 가져가서 1시간 이상을 꼼지락 대면서 돌돌 말아 정리해서 봤지? 하는 몸짓으로 가져다주었다. 내방법은 간단하다. 가위로 싹둑 잘라서 엉킨 부분은 버리고 양쪽을 붙잡아 매버리면 1초 안에 끝나버릴 일인데 1시간을 쓰다니… 갑자기 마음 묘하다. 아무래도 경계성 장애 증후군 책을 잘 읽어보고 밑줄 쳐진 부분도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냄비, 너는 돌솥 그렇게 어우러져 사노라면 한세월 흘러가고 경계마저 사라지는 것임을 조금은 알 것도 같은 기묘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