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직후부터 해외영업, 영어 강사, 외교부 공무원 등을 거치며 리더라 불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 아르바이트 사장님들까지 치면 우리 집 꼬마 소나무의 솔잎만큼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침에 와이프랑 싸우셨는지 1교시부터 온갖 짜증을 내던 국사 선생님, 손목 안 아프게 고기불판 닦는 요령을 알려주던 갈빗집 사장님, 직원회의 시간에 학원 강사나 하는 삼류인생들이라며 막말을 하더니 막상 본인은 그 삼류 인생들의 알바비도 떼어먹은 학원 원장님, 비디오테이프 반납일이 지난 고객이 어떻게 하면 기분 나쁘지 않게 얼른 반납하도록 할지 안내 전화 멘트를 적어주던 사장님, 까다로운 바이어에게는 이렇게 하라며 순서도까지 그려가며 가르쳐주던 사수, 학생의 영어 실력 향상보다는 강의 순서와 방법, 멘트까지 통일한 서비스 품질 동일화가 더 큰 꿈이었던 어학원 원장님, 인수인계를 제대로 못 받은 신입 공무원을 점심시간까지 내어가며 공부시킨 과장님, ‘왜 이렇게 합니까’ 타령만 하는 꽉 막힌 신규 부임 직원을 일일이 가르친 대사님, 폭우가 쏟아지는 밤 관저 위성 TV가 안 나온다고 전화하는 대사님, 공관장은 나 아니어도 챙겨줄 직원이 많지만 내 밑에 직원들은 나밖에 챙겨줄 사람이 없다고 하신 참사관님, 소리 지르다가 웃다가, 감정기복이 사춘기 여중생 수준인 심의관님, 아는 사람 비자 빨리 내달라고 전화하는 참사관 사모님...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도 만났다.
사회생활 초창기에는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알아서 결정하고 지시해주는 보스가 최고였다. 성격은 별로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정답이 튀어나오고, 간단명료하게 지시하는, 효율성 최고에 업무 이외에는 에너지 낭비 1도 없는 카리스마 폭발 보스. 극 T형 인간인 내가 같이 일하고 싶어 했고, 추구하는 리더상이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사람을 겪다 보니, 리더에게 제일 필요한 덕목은 완전무결한 전문성이 아니라, 인간적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에서는 어차피 혼자서 일하지 않는다. 항상 협력하고, 부탁하고, 이끌고, 격려해야 할 누군가가 있다.
팔로워(follower)의 입장에서 보자면 신이 나서 일하게 만드는 A 리더를 만나면, ‘아, 저 사람이 내 능력을 인정하고 날 믿어주는구나’하는 생각에 밤새워 일해도 피곤한 줄 몰랐다. 이런 리더는 이제 막 입부한 초짜가 허황된 소리를 해도,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를 왜 이제야 얘기하느냐며 밤새워 일할 에너지를 충전해 주었다. 자부심인지 국뽕인지 칭찬뽕인지, 매일 야근하면서도 동료들과 으쌰으쌰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우유로 식사를 때우며 일하면서도 뭐 더 할거 없나 찾는 일중독자를 칼퇴해 버리게 만드는 B 리더를 만나면, 속으로 ‘이런 걸 왜 해야 하나’ 내지는 ‘그렇게 급하면 니가 하지’하고 투덜대기도 했다.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재미와 보람은 신기하게 사라져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만 하던 나를 위해, 내 워라밸을 지켜주기 위한 조직 내지는 하늘의 배려였던가 싶다 ^^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A형 리더와 다시는 만나기 싫은 B형 리더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같이 일하고 싶은 리더들은 직원들의 자발적인 헌신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인간적인 매력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지위고하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고, 사람에 대한 호불호나 본인의 감정에 따라 업무적 판단을 번복하지 않으며, 다양한 사람들과 코드를 맞춰 갈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든, 그들이 리더든 팔로워(follower)든, 이런 모양의 마음 그릇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닮아가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