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년 만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 새로 생긴 대경선을 타러 플랫폼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추적추적 떨어졌다. 얼른 지하철에 올라탔다. 세량뿐인 지하철은 아담했다. 서서 밖을 구경했다. 창문을 스치는 비와 머리카락 없는 민둥산들이 처량했다. 추적츠적 비 내리는 소리 괜히 우울해졌다. 에어팟으로 듣고 있는 음악을 바꿨다.
N이 지하철 도착 시간인 6시에 맞춰 사곡역으로 나를 마중 나왔다. 얼마나 걸렸냐고 물어보니 대답해주지 않았다. 비가 이래 많이 오니까,라고 덧붙이며 차 문을 열었다. 스피커에서 노래만 흘러나오는 자동차 안의 침묵이 좋았다. 여전히 발라드를 좋아하는군. 친구 집에 도착해서 우리는 오랜만에 보면서도 시답잖은 이야기만 했다. 어제는 누구랑 뭐 먹었고, 요새는 헬스를 열심히 한다. 소화 잘 되는 음식을 먹는 느낌이었다. 찬 밥을 물에 말아서 김치를 올리고 한 입. 그리고 밥 한 술 위에 잘 구워진 생선을 올려서 한 입 먹는 기분.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술이 빠질 수 없었다. 처음 보는 '보리소주'를 마셨다. 친구들은 줄여서 '보쏘'라고 했다. "보쏘 좀 먹어 보쏘~." 그 유치하고도 어이없는 말에 웃어버렸다. 웃으면 지는 건데, 져 버렸다. 족발과 보쌈과 치킨을 양껏 시켜 먹었다. 라면도 끓여 먹었다. 배고팠던 것 같다. 정확히는 너희가 고팠던 것일 테다.
거나하게 취한 다음날 D가 나를 역까지 깨웠다. 비몽사몽 한 나를 깨워 화장실로 밀어 넣고 초콜릿 우유를 먹였다. 아침 7시 댓바람부터 정신없게 뭐 하냐고 따졌더니 아침에 차가 없어 자기가 태워주지 않으면 택시를 타야 한다고. 그럼 택시를 타면 되잖아,라고 했는데 "그럼 내가 뭐가 돼~" 한다. 8시에 나를 구미역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러 가는 친구를 뒤로 하고 기차를 탔다. 동대구역에 내리니 비가 세차게 오고 있었다. 플랫폼에서 머뭇머뭇하던 나에게 모르는 사람이 다가왔다. 자기는 우산이 두 개 있으니 하나 쓰고 가시라고 했다. 말을 꺼낼 틈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그가 사라졌다. 내 손에는 우산 말고도 다른 것이 들려 있는 듯했다.
나는 알 턱이 없다. 좁고 알량하고 속물적인 마음을 가진 나는.
퇴근 시간 차로 가득 찬 정체길에 마중 나오는 마음을.
출근 시간을 쪼개어 나를 역으로 데려다주는 마음을.
돌려받지 못할 우산을 빌려주는 마음을.
건네받은 우산을 종종 쓰면서 어림짐작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