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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밥은 한 번 더 취사하면 된다

실패가 없는 집안일들

by 재홍

본가에서 가서 오랜만에 밥을 했다. 밥솥 그릇에 쓰여 있는 2인분 양의 물과 쌀을 넣었는데 밥이 너무 질게 만들어졌다. 전화를 걸어 엄마한테 볼멘소리로 난 제대로 한 것 같은데 밥이 질다고 말했더니 웃으면서 한 번 더 취사를 하면 된단다. 밥이 들어있는 밥솥 그대로 쾌속 취사 버튼을 누르고 15분을 기다렸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고 밥을 퍼서 그릇에 담았다. 진미채볶음과 부추김치와 멸치 볶음과 생선구이. 그리고 취사 버튼을 두 번 누른 밥으로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밥이 왜 질게 됐는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살짝 웃으며 “아, 밥솥이 오래돼서 물을 좀 덜 넣어야 해”라고 말했다. 선보다 조금 적게 물을 붓는 엄마의 손길을 상상했다. 그렇게 엄마의 손때가 묻어 있는 청소도구들, 냉장고, 색 바랜 전자레인지 버튼 같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어릴 때부터 쓰셨으니 어림잡아도 15년은 넘은 것 같다. 낡고 오래되어 불편할 법한데 엄마는 그냥 이게 편해서,라고 한다. 엄마는 그들과 함께 살아내고 있었다.


집안일은 언제나 성공으로 끝나야만 하는 일이다. 계란말이가 좀 탔다고 저녁을 포기할 수는 없고, 김치찌개가 오늘은 덜 시원하다고 밥상을 엎을 수도 없다. 밥이 질게 됐으면 한 번 더 취사를 하면 되고, 생선구이가 부서져도 접시 위에 예쁘게 얹으면 그만이다. 요리뿐만 아니라 청소, 빨래,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집안일은 사소해 보여도 꽤나 위대한 일이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밥을 먹고 빨래를 개고 청소를 하는 일들이 손이 많이 갈 뿐만 아니라 가끔은 벅찬 일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엄마는 몇십 년째 벅차고 위대한 일을 해오고 있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이 밥을 질게 해도 문제없이 상을 차린다. 틈틈이 빨래를 널고, 싱크대에 쌓인 그릇을 깨끗하게 설거지하고, 화장실을 청소한다. 나는 한 끼 밥만 해도 시끄러운데, 엄마는 이런 일들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해내고 있었다. 엄마의 손에는 수십 년 쌓인 집안일의 무게가 얹혀 있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괜히 마음이 찡했다.


이 찡하고 벅차오르는 마음을 늘 간직해야지. 결국 집안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사람은 엄마라는 사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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