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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두려운 나무

<폭싹 속았수다>

by 재홍

'폭싹 속았수다'를 봤습니다. 홍대병이 있어 드라마든 영화든 늘 뒤늦게 빠져들게 되는데요, 3일 밤을 새워서 다 본 것 같아요. 매 회 매 순간이 힘들었습니다.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느라요. 좋아하는 것들, 원하는 모습들을 포기하고 바람과 파도와 뜨거운 햇살을 몸으로 받아내는 애순과 관식은 어찌 그렇게 강인할까요. 몸보다 작은 옷을 입어 툭툭 터져 나오는 단추처럼 터져 나오는 그들의 약한 모습은 왜 이렇게 애달플까요.


드라마에서 애순과 관식은 참 멋진 사람들입니다. 작은 집으로 옮기며 딸을 유학 보내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서울로 와서는 기숙사 앞에서 서성거리며, 잠깐 집으로 돌아온 딸을 배불리 먹이고 따뜻하게 재웁니다. 소홀하게 대한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눈물 흘리며, 며느리와 허물없이 지냅니다.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자동차를 선물로 주기도 하죠. 자식들을 '애지중지'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찬란한 당신이 금이야 은이야 동이야 하며 최선을 다해서 키워낸 내가 나무가 되지 못할까 봐요. 남들보다 조그만 잎과, 작은 키와, 덜 푸른 줄기와 가지를 가질까 봐요. 봄엔 싹을 늦게 틔울까 봐, 여름엔 나뭇잎이 적을까 봐, 가을엔 단풍이 늦게 들까 봐, 겨울엔 추워서 시들까 봐 무섭습니다. 혹여나 내가 늦게 자라서 그들의 사랑이 폄하될까 봐요. 사실은 나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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