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 하나

by 조의 사유 공간

오랜만에 천만 관객의 영화가 탄생했다. 어린 왕 단종과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켜준 엄흥도의 이야기다. 굳이 보지 않아도 이미 결말을 다 그려낼 수 있는 이 뻔한 서사가 천만 명의 발길을 불러 모은 것은, 분명 배우들의 호연과 감독의 연출력이 가진 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익숙한 비극 앞에서 우리가 다시금 동요한 이유는, 그가 지키고자 한 가치가 이제는 너무도 생소해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세상은 생존 그 자체만으로도 각박하며, 물질 외의 모든 가치는 조롱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현대 인간의 욕망은 ‘돈’과 ‘명예’라는 양 갈래 길을 버리고 오직 ‘돈’으로 수렴된다. 사는 동네와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가 한 개인의 가치를 매기고 계급을 나뉜다. 반면 ‘명예’는 타인의 정중한 시선과 내면의 고결한 긍지를 동시에 필요로 하는 고비용의 가치다. 돈처럼 즉각적으로 환산될 수도, 유리한 조건으로 등가교환 하기도 어렵다.

죽은 왕을 위해 목숨을 거는 엄흥도의 선택은 리스크는 무한대이나 기대 수익은 제로에 수렴한다. 물질적으로 보면 압도적으로 비효율적인 행위다. 그런 그의 행동들이, 오직 숫자로만 증명되던 나의 메마른 삶에 균열을 냈다.

현실의 악다구니 속에 도태되지 않으려, 혹은 남들보다 한 뼘이라도 앞서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이 어느덧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에 생경한 생채기가 난 것 같았다. 승자가 아닌 패자가 된 자신의 왕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그들의 헌신. 그 무모하고도 아름다운 뒷모습에서 느낀 카타르시스는, 이미 잊고 있던 내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되묻게 한다.


현실의 궤도 위에서, 내가 필사적으로 잡고 싶어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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