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雪國)'
"여자의 얼굴은, 창문에 비친 저녁 풍경 속을 흐르고 있었다. 그러자 여자와 풍경은, 마치 동화 속의 환상처럼 서로 겹쳐졌다....
거울에 비친 그 얼굴은, 현실의 여인이 아니라, 저녁의 불빛 속을 떠도는 실체 없는 영혼과도 같았다."
주인공 시마무라는 창유리라는 틀을 통해 요코를 바라본다. 자신의 프레임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며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
창문은 그만의 미적 기준이기도 하면서 한편 물러나 자신의 감정이 어떻게 흐르고 사라지는지를 관조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감정은 유한하기에 자신의 감정을 흐르는 대로 놔둘 뿐 그것을 위한 어떠한 인위적인 노력도 배제한다.
사랑이란 감정에서조차 그 대상으로부터 일정 간격을 유지한다.
감정의 대상과 섞이는 순간 그 대상은 나를 변화시킨다.
이렇듯 거리를 두면 나를 바꿀 필요도 또 상대에게 실망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사랑하는 대상보다 그 순간 느끼는 나의 감정 그 자체가 중요할 뿐인지도 모른다.
이 또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아 그 이상 상대에게 빠져들 수 없다.
설국은 서사의 흐름보다는 상황에 대한 묘사로써 주인공을 이해하게 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에는 삶의 모든 것은 변하고 결국에는 사라진다는 허무감이 소설 내내 짙게 깔려 있다.
다만 무(無)를 부정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가장 고요하고 충만한 것으로 바라본다.
허무를 극복하려 굳이 애쓰지도 않는다. 관조자의 고립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지켜내는 고고한 비움으로 보이기도 한다
시마무라는 허무를 피하지 않았고 눈 내리는 설국 속에 홀로 서 있음으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고립을 대신 택했다.
나 또한 나의 고립에 대해 그 당위성을 찾곤 한다.
자신마저 타자화하여 관찰하는 모습은 일면 강박으로까지 느껴진다.
주인공 시마무라에게 깊이 공감하면서도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만다는 그 허무함을 이길 무언가는아직 찾지 못했다.
역설적이게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미학은 그 허무함을 극복하는 순간 그 아름다움은 빛을 잃고 만다.
결국 나만이 입장할 수 있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설국(雪國).. 허무함을 이기는 대신 이 차가움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 안에 머무는 것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