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식 Jun 09. 2024

감정의 세계 #6

평온함

특사로 선발된 나와 꼬맹이는 지체없이 길을 떠나야했다. 어디부터 가봐야할지 막막했기 때문에 일단 가까운 곳부터 가보기로 했다. 대장과 연결된 바로 그곳 '소장'이다.


소장! 그곳에는 '평온함'이 산다. 


소장은 우리가 사는 대장과 맞닿아있어 경계를 넘어다니는 미생물들을 통해 많은 소식들을 전해듣긴 했지만, 그것 이상으로 멋진 곳이었다. 소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가 마주한 거대한 융털의 숲은 입이 절로 벌어지게 만들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융털들은 소장에 부는 바람을 따라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고, 그 아래 흐르는 따스한 점액의 강에는 풍부한 영양분들이 녹아 있었다. 빼곡히 자라난 융털의 숲은 어떤 거친 바람과 음식물도 막아주는 든든한 우산 같았고, 풍부한 양분 덕에 가는 길의 고단함 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오리는 '평온함'의 마을에 도착했다.


"계세요?"

마을은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누구시죠?"

융털 사이에 몸을 숨기고 있던 '평온함' 하나가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우리는 '기쁨'인데요. 아래 쪽 대장에 살고 있고요. 혹시 그 쪽 나무들은 괜찮나요?"

"그 쪽 감정의 나무들도 이상이 생겼나보군요. 여기도 마찬가지에요."

"그 쪽 나무들도 이상한 막이 자라나고 있나요?"

"맞아요. 마치 나무들이 무언가에 의해 봉인된 것처럼 말이에요."

"혹시 저희가 '평온함의 나무'를 좀 봐도 될까요?"

"네, 그래요.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평온함의 나무'는 '기쁨의 나무'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았다. 완전히 검게 변해버린 나무는 딱딱한 껍질처럼 자라난 막이 완전히 나무를 감싸버린 상태였다. 


"지금 나무들이 마치 우리를 거부하고 있는 거 같아요. 왜 그런지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요. 하나 의심가는 이들이 있긴해요."

"그게 누군데요?"

"저 위에 사는 '분노'들 말이에요. 그들은 툭하면 위를 들쑤시고 다니면서, 분노를 일으키곤 하죠. 그럴때마다 위액이 넘쳐서 저희 마을까지 내려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저희 마을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곤 했죠. 그럴때마다 '평온함의 나무'가 우리 마을을 지켰어요. 하지만 이번엔 뭔가 기발한 방법을 찾아낸게 틀림없어요! 먼저 '평온함의 나무'를 이 지경으로 만든 다음에 위액을 넘치게해서 완전히 우리 마을을 파괴해 바리려고요"


'평온함'은 평상시 앙숙인 '분노'를 강하게 의심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하기 시작한거죠. 저희 쪽보다 더 상황이 안 좋은데요."

"아마 일주일 전부터 이렇게 된거 같아요."

"네, 일단 저희가 위로 올라가 볼게요. 가서 정말 '분노'가 꾸민 짓인지 확인해볼게요."

"아 그래요? 위로 올라가시겠다면 말리지는 않지만, 정말 조심하셔야 돼요. 거긴 언제 위액이 활화산처럼 폭발할지 모르는 곳이란 말이에요. 위액이 폭발하면 살아남기 힘들거에요. 그러니깐 정말 조심해서 올라가셔야해요."


나는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나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특사 동료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걱정마세요. 저희는 모든 '기쁨'의 운명을 걸고 온 특사에요. 아무리 위험해도 감수해야죠!"


남의 속도 모르고 잘만 지껄인다. 풋내기 주제에... 왜 나까지 사지로 내몰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이 풋내기를 쫓아서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정의 세계 #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