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케첩의 고향을 찾아서(1)

케찹은 소스인가요?

by 송지

24년 12월 파롸과이 아순시온에서 '한식의 장 담그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장 담그기 문화'가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을 조성하고 문화다양성 증진에 기여한다고 평가했다. 간장, 된장, 고추장이 한식의 핵심 조미료로서 한식의 근간이라는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또한, 한식의 장은 지역과 기후에 따라 다양한 변형이 존재하는 지속 가능한 음식문화 유산임과 동시에 단순한 식품이나 조리법이 아닌세대 간에 이어지는 구전 전승 방식으로 공동체 문화로 유구한 우리 역사 속에 자리잡아왔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식에서의 장은 식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끌어올려 최상의 상태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양념이자 제철의 식재를 한 해 동안 저장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천연 방부제의 역할을 해왔다. 그렇다면 서양음식에도 이에 필적하는 것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서양음식의 본류인 프랑스 음식에는
'마더 소스(mother sauce)'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모든 소스의 어머니라 불리는
서양음식의 기본이 되는 5가지 소스이다.
s1000-5cd96e1702577d58ed0757912260483e.jpg

마더소스는 우유 기반의 크리미한 화이트 소스인 1) 베샤멜 소스, 육수 기반의 가벼운 화이트 소스인 2) 벨루떼 소스, 고기 육수와 토마토 기반의 진한 브라운 소스인 3) 에스파뇰 소스, 달걀 노른자와 버터로 만든 소스인 4) 홀랜다이즈 소스, 마지막으로 토마토와 허브를 이용한 풍미 깊은 소스인 5) 토마토 소스의 5가지 소스로 구성된다. 이 소스들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을 기본으로 수백 가지 다양한 소스로의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먼저 라자냐나 크로크무슈에 필수적인 베샤멜 소스에 치즈를 넣으면 모르네이 소스가 된다. 브라운 소스인 에스파뇰 소스에 와인을 더하면 햄버그스테이크나 오므라이스에 곁들이는 데미글라스가 되고 토마토소스에 마늘과 허브를 첨가하면 마르게리타 피자의 베이스 소스가 되는 마리나라 소스가 된다.


마더소스의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로 이 개념을 체계화한 사람은
'현대 프랑스 요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스코피에(1846~1935)이다.


그러나 그 이전인 19세기 초반 '요리사들의 왕'이라 불린 마리 앙투안 카렘이 4가지의 기본 소스를 정리했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17세기 라 바렌이 개발한 루(roux)이다. 즉, 17세기의 라 바렌이 초석을 다지고. 19세기 초 카렘이 체계화를 시작했고 19세기에 이르러 에스코피에가 완성한 것이다.


서양음식에서 소스의 역할도 한식의 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소스가 등장하게 된 주된 요인은
여름철에 상하기 쉬운 육류와 어류의 장기 보존과
음식의 풍미를 돋우기 위한 것이었다.


중세음식의 맛은 쓴맛, 새콤달콤한 맛, 신맛이 주종을 이루었으며, 아직 짠맛과 단맛의 경계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마더소스 이전의 소스들은 신맛이 강했다. 또한 이들은 매우 가볍고 지방분이 적었다. 당시에는 소스를 제조하는 일이 하나의 직업이었다. 13세기말 파리에는 7명의 소스 제조인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의 소스는 중세의 소스의 신맛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고기와 야채의 육수, 우유, 아몬드유 등을 기본 베이스로 하고 향신료를 많이 넣어 강렬하고 자극적인 신맛을 구현했다.


프랑스 음식에서 소스의 위상과 중요성은 다음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섬나라 영국이 겨우 세 가지 소스와 360가지의 종교를 가진 반면에,
프랑스는 세 가지 종교와 360가지의 소스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 외교가, 탈레랑)

소스는 훌륭한 요리를 만드는 일종의 관현악적 기법인 동시에 반주이며,
좋은 셰프들이 자신의 재능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기본 재료이다.
(에드몽 사이앙)
1-4_%EB%B0%94%EB%A0%8C.png?type=w800

18세기에 이르러 서양의 소스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내용물이 매우 다양하고 풍부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오트 퀴진이 진보한 시기다. 오트 퀴진의 기원은 17세기 최고의 미식 전문가였던 '라 바렌'에서 찾을 수 있다. 라 바렌이 저술한 <진정한 프랑스 요리책>은 영어로 번역된 최초의 프랑스 요리책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중세의 요리 스타일과는 확연히 차별화되는, 덜 과장되고 덜 장식적인 수수한 요리를 소개했다. 양적인 포만감을 자제시키고, 요리 재료 자체에 집중하는, 새로운 사조는 매우 인기를 끌었다. 이 시기의 트렌드는 한마디로 말해 '음식의 자연스러운 맛을 최대한으로 살리자'였다. 그러나 이것은 중세요리보다 그렇다는 것이지 여전히 오트 퀴진은 상류층 만을 대상으로 한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리였다.


이 시기부터 소스에 비스크, 우유, 밀가루와 버터가 사용되었고(베샤멜 소스), 잘게 부순 빵 조각 대신에 루(roux)가 소스의 기본 베이스로 정해졌다. 그는 부케 가르니(파슬리, 타임, 월계수 잎, 셀러리 등)란 용어나, 스톡(육수), 소스 졸이기(reduction), 달걀 흰자 거품의활용과 같은 테크닉을 최초로 사용한 장본이이었다. 또한 이때에 이르러 귀족 외에도 일부 계층은 혼합곡을 사용한 갈색 빵 혹은 흑빵 대신에 희고 부드러운 밀가루 빵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보르도, 부르고뉴, 샹파뉴 지방의 최상급 포도주의 품질이 향상되고 소비가 증가했다.

DSBsNKYArSVtc6PWy-3yYLoAsuvzzo2v6pDTwJDbwHN0DM_Jt_0MrcbptdRfBXfT_YgovfuLGZXhETX69MvQDw.jpg

17세기의 영웅이 라 바렌이었다면 19세기 초는 요리사들의 왕인 앙투안 카렘(1784~1833)의 시대였다. 그는 요리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족적을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띄이는 작업은 소스의 단순화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는 4개의 마더 소스를 기본 축으로 하여, 모든 종류의 소스를 일목요연하게 분류했다.


알망드 소스 : 레몬주스와 달걀 노른자가 들어간 소스

베샤멜 소스 : 가벼운 루와 우유로 만든 화이트 소스

에스파뇰 소스 : 토마토소스를 졸여 만든 스페인에서 유래한 소소

벨루테 소스 : 루와 스톡이 들어간 소스

%BF%E4%B8%AE%BB%E7_%BA%B9%C0%E5%C0%C7_%BF%A1%BD%BA%C4%DA%C7%C7%BF%A1.jpg?type=w420

그로부터 약 100년 후 프랑스 요리 씬에는 또 한명의 걸출한 영웅이 나타났다. 바로 오귀스트 에스코피에(1846~1935)다. 그는 여전한 프랑스 요리의 장식미를 걷어내 '요리 장식의 단순화', '메뉴의 간소화', '서비스의 가속화'를 실현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연합군의 주방을 조직하는 업무를 맡았던 경험이 있다. 그는 군대에서 배운 군대식 조직 제돌로 요리에 접목하여 키친 스태프 제도를 탄생시켰다. 주방을 권위와 책임, 기능의 위계질서에 따라 조직하고 분업체제로 구성했다.


이번 글에서는 한식과 서양의 기본 소스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식문화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인 우리가 간장, 된장, 고추장 만큼이나 자주 먹는, 어쩌면 이제는 한식인지 서양식인지도 분간이 안가는 소스들이 있다. 바로 케찹과 마요네즈다. 이 중 케찹은 사실 앞서 언급한 마더소스와 그 변형 소스, 그리고 마요네즈와는 다르게 즉석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 아니라 한식의 장처럼 두고 먹을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을 때와 같이 무언가 느끼한 서양음식을 먹을 때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케첩에 대해 다음 글에서 본격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출처: 미식인문학


이범준 교수


미식유산연구소 소장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봄의 전령사, 봄나물 제 오시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