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기로 했다

20년, 해남까지 걷다가 든 생각

by 조삿갓
“길은 그저 어딘가로 향한다는 것만을 자랑으로 여길 뿐이다”
피에르 쌍소


각자의 길을 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박수받을 만한 자랑거리다. 도착하고, 도착하지 못한 것으로 비교될 수 없다. 길을 빨리 가는 사람이 있고, 느리게 가는 사람도 있다. 같은 길을 걷더라도 보는 풍경, 만나는 사람이 다르다.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걸었던 국토종주였는데, 제자리 걸음이 되었다. 꼭 목표를 두고, 목적지를 두고 가야할 필요는 없다. 내게 주어진 길이 있다면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해 누릴 것이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혼자여서 외롭고, 우울해서 마음이 이상해질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환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꿈을 꾸듯이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이 힘들 때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생겼다. 길 위에서 느꼈던 감정, 풍경, 사람. 기억 속에 잘 간직하겠다. 그리고 삶의 목적, 목표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그걸로 스트레스 받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기 때문이다. 그냥 싫어하는 것 안하고, 좋아하는 것 하면서 사는거지, 대단한 이유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살아보려 한다. 눈앞에 놓여진 것에 집중하면서 나아가다보면 원하는 모습의 나와 마주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두근거림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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