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사회에 대한 비평문

작가들이 선물해 주는 시선과 지혜

by 하은수

소설은 참으로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자주 읽거나 즐겨 읽지는 않지만 소설이 가지고 있는 힘과 독자들에게 주는 즐거움을 경험해 봤다. 소설을 현대적 시각화한 것이 우리가 보는 드라마이고 사람들이 드라마를 즐겨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드라마를 별로 즐겨 보는 편이 아니다). 누구에게는 현실을 도피할 수 있게 해주는 안식처이자 이상적인 현실을 이루어주는 대리만족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소설을 읽는 독자의 관점인 것 같다. 그러면 소설가는 무슨 생각으로 소설을 쓰는 것일까? 국어시간에 자주 듣는 질문이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작가가 왜 이러한 소설을 적었는지 작가 본인을 제외하고는 알 수가 없다. 사회에 대한 비평문이라는 제목도 나의 개인적인 평가일 뿐 작가 개개인마다 다른 이유와 목적으로 소설을 쓰는 것 같다. 하지만 암울한 현대사회에서 잠깐의 안식처가 되어 주는 것은 사실이라고 작가들의 목적과 독립적인 현상인 것 같다. 사회에 대한 비평문인 것도 이러한 특징 때문에 생긴 일종의 이론인 것 같다. 드라마도 똑같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반면에 이상적인 현실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그리고 감독의 시각적 해석을 통해 이루어주는 듯하다. 예를 들어 ‘미생’이나 ‘응답하라’ 시리즈나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가 이성적인 현실을 비춰줌으로 공감을 줌과 동시에 그 현실 속에서도 작은 이상을 실현시켜 줌과 추억을 되새기게 해 줌으로 시청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자극적인 내용과 연출이 주는 중독성보다 공감이 주는 위로가 크다. 사람은 본질적인 충족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비록 현대 소설을 즐겨 찾아보는 편은 아니지만 유명한 현대 또는 고전 소설을 몇 권 읽은 시절이 있다. 아마 퇴학당하기 싫어서 악을 쓰고 읽었을 것이다. 영화로 나와서일까? 개인적으로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 연대기’를 좋아했었다. 개인적으로 시각적인 설명과 표현을 선호하는 성향이다. 하지만 책으로서 진심으로 즐겼다. 해리포터가 사랑받은 이유가 영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책으로 나왔을 당시 너무나 신선한 내용이었기에 많은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이 마법사를 위한 학교의 영감을 어떻게 얻어냈을까 궁금하다. 지금 다시 읽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세계관이다. 더 나아가 영국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작가 개인적인의 비평이 들어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순수혈통의 마법사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악당과 다양한 배경의 마법사들의 자유를 위해 맞서 싸우는 자신이 선택받은 지도 몰랐던 한 아이의 성장일기 같은 것이다. 해리의 성장을 함께하면서 선택받은 자로서의 갈등을 같이 경험하게 되고 나도 같이 성장하게 되는 경험을 작가가 독자들에게 선물하고 있다.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도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나니아 연대기’는 기독교 철학과 신념이 심겨 있는 소설이지만 네 명의 남매들과 함께 옷장 속의 세상을 탐구하고 구하는 여행을 선사해 줌으로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니아라는 세상을 구하는 것을 넘어 자기 자신들의 용서와 구원을 경험함으로 네 명의 남매들은 성장하고 더 나아가 나니아 속에 인물들과 남매들의 친구들과 사촌도 성장하고 구원을 받는 매우 철학적인 소설이다. 나니아를 창조한 존재를 사자로 형상화하는 것 또한 매우 상징적인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사자는 동물의 왕 또는 밀림의 왕으로 자주 등장한다 (라이온킹도 매우 흡사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만물의 근원이자 창조주 하나님을 왕으로 대하고 있다. 매우 직관적인 연계이다. 반면에 ‘반지의 제왕’은 ‘해리포터’와 ‘나니아 연대기’의 사이에 껴있는 더 깊은 철학이 새겨져 있는 소설인 듯하다. 악을 반지라는 작지만 귀하고 무거운 의미를 가지고 있는 물건으로 표현하고 그 악을 없애는 존재 또한 작고 하찮지만 강하고 끈기 넘치는 젊은 청년 호빗을 통해 톨킨은 성경을 묘사하고 있다. 프로도와 호빗들은 세상 물정에 관심이 전형 없던 철부지 없던 청년들로 묘사되어 있다 (그냥 호빗이라는 종족은 샤이어 밖에 세상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악의 근원과도 같은 반지가 주어짐으로 시작해 더 넓은 세상과 현실에 대해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혼자서 악의 무게를 감당하지 않는다. 샘이라는 용감하고 의리 깊은 정원사를 톨킨은 프로도에게 주어 혼자서 모든 악을 감당하지 않도록 한다. 메리와 피핀 또한 자신들만에 서사를 써감으로 성장한다. 나중에는 서로 잠깐 떨어지게 되지만 잠깐의 이별은 우정을 깨지 못한다는 것을 톨킨이 보여준다. 그리고 다른 반지원정대 일원들 모두 각자 자리에서 중간계의 운명을 건 사투를 이어간다. 이렇듯 세편의 장편 소설을 통해 중간계의 구원과 그 중간계에 있는 인류의 구원과 우정과 사랑이라는 삶의 가치를 동시에 해석함으로 톨킨은 자신의 철학과 믿음을 담아냈다. 톨킨이 말하고 싶었던 현실은 죄는 행동 이상에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죄악을 자극하고 증폭을 시키는 물건이 힘의 반지인 것이다. 톨킨이 또 말하고 싶은 것은 호빗이라는 존재를 통해 영웅은 꼭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강한 몸과 빼어난 지식이나 계략을 가진 존재로 제한하지 않는다. 누구나 의지가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며 꼭 혼자서 삶의 무게를 감당할 필요가 없음을 일깨워 주면서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더 나아가 톨킨 자신만에 그 당시 사회를 비평하는 내용이 있다. 대표적으로 사루만과 엔트족들의 갈등을 통해 그 당시 영국의 산업 혁명을 비평하는 내용이 있다. 이렇듯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세상에 말하고픈 소원을 숨겨놓은 일종의 비평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비유를 통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성경과 비슷한 것 같다. 장편이든 단편소설이든 단순히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당신에게 큰 깨달음과 지혜를 가르쳐준 소설이 있는가? 아니면 그저 현실에서 잠깐 자유롭고 싶어 또는 위로받고 싶어 소설을 읽는가? 우리 모두 각자 다른 이유로 소설을 읽을 뿐 그 어느 방식과 목적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읽음으로 삶의 즐거움을 찾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더 나아가 깨달음을 얻는 것 또한 감사한 축복이다. 마치 공자가 논어에서 얘기하듯 “배우고 수시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를 몸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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