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야유회를 간단다. 정말!! 코로나19 기간에 야유회나 회식이 일절 없어서 그건 정말 편했다. 만 2년을 야유회나 회식 없이 지내다 보니 야유회가 정말 가고 싶지 않다. 눈치껏 사유를 만들어 빠지는 눈치작전을 펼쳐야겠다. 이러면 야유회 준비하는 직원들 입장에서 얼마나 얄밉고 꼴 보기 싫을까. 이걸 다 알지만 그래도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뭘까.
나의 첫 야유회의 추억은 정말 강렬했다.
금요일에 신규발령 사령장을 받았다. 사령 받는 장소로 나를 데리러 온 직원을 따라 쭈뼛쭈뼛 월요일부터 출근하게 될 사무실로 인사를 하러 갔다. 정말 군기 바짝 들어서 인사드리고 있는데 서무 주사님(기획, 직원 복무관리 등을 담당하는 직원)이 내일 야유회가 니 여행자 보험 가입하게 주민번호 적어놓고 가라고 하셨다. 안 가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주민등록번호 적어놓고 나왔다. 그다음 날 편한 복장에 가방 하나 둘러메고 야유회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타고 좀 기다리니 상록회(사무실 직원들끼리 가입하는 친목 모임인데 모든 직원들이 가입하며 회비를 모아 야유회를 간다.) 총무가 하반기 야유회를 출발하게 되어~~~ 어쩌고저쩌고 인사 말씀하더니 "읍장님의 인사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하며 마이크가 읍장님께 옮겨졌다.
" 아~ 올해 신규 발령을 받은 직원이 우리와 야유회를 함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하였습니다!! 박수~~!!!"
이 난생처음 뵙는 읍장님과 직원들 앞에서 얼마나 낯설고 어색하겠는가. 아 왜 이런 걸 시켜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마이크가 손에 쥐어졌고 "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처음 인사드리게 된~~~" 이걸 시작으로 그 버스에 탄 모든 직원들께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도 드리고 노래도 하라고 해서 노래도 하고 상록회 총무직원을 졸졸 쫓아다니며 술도 한잔씩 따라드리고 주시면 받아 마시고 안주도 나눠드리며 야유회를 출발하였다. 정말 티브이에서 보던 그 어리숙한 신규가 바로 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버스에서 내리니 그날 야유회 장소였던 전라남도 여수시. 진짜 어떻게 왔나 기억도 안 나고 무슨 등산을 한다고 산 아래 주차장에 다들 내렸는데 어떻게 올라갔다 왔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는다. 이미 취해있었다. 엄청난 맛집이라며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맛을 느낄 수 없는 현상을 겪고 있었다. 식사 후 관광지 한 곳을 더 들렀다. 오르막 길을 한참 올라와 언덕 같은 곳에서 풍경을 보고 있으니 이제는 좀 숙취가 가시 나보다 하며 음료수 한잔 마시고 있었는데 거기서.... 오늘 처음 뵌 어떤 직원분이 요즘 개인사가 번잡하셨는지 갑자기 뛰어내린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직원들이 다들 달려들어 뜯어말리는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아 강렬했다. 10년 하고도 1년이 더 지났지만 야유회 하면 항상 이 날이 생각난다. 나 이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며 심히 걱정되던 날.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묻지 마 관광 저리 가라였다. 어찌나 흥이 많으신지. 아까 뛰어내린다고 했던 분도 흥에 겨운 모습, 다른 직원들도 한풀이하듯 흔들어 대는 모습들 등등 잊히지 않는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때 직원들이 나름 열연을 한 거더라. 당시 읍장님이 워~낙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셔서 직원들도 고충이 많았었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직원들은 원해서 하겠지만 원치 않는 직원들은 정말 죽을 맛이다. 그렇지만 어찌하랴. 어떤 상황에서도 부서장 기대치 충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 직원들의 모습이 바로 월급쟁이의 모습이 아닌가.
다른 직업군, 다른 직장도 야유회를 다니는지 항상 궁금하다. 우리는 상반기, 하반기에 한 번씩 야유회를 간다. 직원 단합 차원에서 야유회를 기획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세대갈등의 대표적인 예가 이 야유회가 아닐까 싶다. 장소 선정부터 일정까지 나름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일단 회의를 하면 참석한 차석들은 대부분 젊은 직원들이다. 젊은 직원들은 무조건 당일이다. 안 가면 더 좋고. 그래서 당일로 갈 수 있는 장소를 서로 농담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장소 후보군을 선정한다. 빨리 다녀와서 쉬자 이런 마음으로 당일치기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코스이다. 그렇게 계획안을 만들어서 부서장에게 올라가려 하면 주무팀장님 라인에서 걸린다. 누가 이런 식으로 계획을 짜느냐, 이게 무슨 야유회냐부터 시작해서 장소, 일정 등 중년층들의 여러 의견이 쏟아진다. 이러면 다시 회의가 소집되어 팀장님 한두 분 배석하고 서로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1박은 해야지 의견 나오고 직원들 다수결로 투표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대충 부서 연령대 비율 파악하면 당일인지 1박인지, 근교인지 섬인지 결정 난다. 다수결로 해야 그래도 그나마 이 갈등이 빨리 봉합된다. 다수결로 결정해도 결국 뒤집는 경우도 있다만 그래도 직원들의 민심이 두려워서 대부분 따라주신다. 이 과정에서 젊은 세대는 야유회 간답시고 나의 주말이 빼앗기는 상황이니 어딜 가도 달갑지 않다. 중년 세대에서는 주말에 할 일도 없는데 직원들끼리 모여서 단합도 하고 평소에 못~다한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한잔씩 하고 이것도 다 지나고 나면 추억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걸 모른다며 안타까워하신다.
나도 더 나이 먹으면 저러려나. 이 야유회가 그렇게 가고 싶으려나. 그래도 10년이 지나니 야유회 문화가 바뀌고 있긴 하다. 내가 신규 시절에는 우리에겐 '싫어요'가 없었다. '싫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요즘 것들은'으로 시작하는 한소리를 각오해야 했다. 야유회 날 개인 일정이 있어 참석이 어려운 사정 따윈 없었다. 아! 친형제자매 결혼식 정도는 빠지는 사유가 된다. 그 외에는 무조건 참석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확실히 젊은 직원들이 야유회를 빠진다. 당당하게. 사유도 다양하고 솔직하다. 야유회 가려는 장소가 너무 멀어서, 야유회 장소가 마음에 안 들어서, 야유회 날 본가에 가야 해서, 야유회 날 당직이어서 등등.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직원들이 많아져서 나는 기분이 좋다. 나는 말하고 싶어도 입안에서만 맴돌았던 그 말들을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해주는 직원들이 많아져서 속으로 통쾌하다. 드디어 우리 조직도 좀 변화하겠구나 싶다. 이런 직원들이 점점 많아질수록 기존 야유회 문화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윗분들도 이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 변화의 물결은 이미 우리 조직으로 적시기 시작하였다. 몇 년 전부터 야유회를 좀 다양한 방식으로 즐기는 부서들이 생겨났다. 야유회를 2시간 정도 소요되는 공연 관람 후 맛집 식사로 즐기는 방식, 야구장에서 경기 관람+치맥으로 즐기는 방식, 야유회 장소까지 같이 간 후 삼삼오오 흩어진다. 알아서 원하는 대로 반나절 즐기는 방식. 야유회 시즌이 지나고 나면 소문이 돈다. 어떤 부서는 이랬대. 어떤 읍면 야유회는 이랬대. 어디 부서 누구는 양주를 준비해와서 다들 욕하더라 등등. 야유회 정보가 이런 식으로 서로 공유된다. 아직 다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변화하는 야유회가 나오고 있다. 이 변화하는 야유회의 주역은 역시 젊은 직원분들이다. 이 분들의 아이디어와 윗분들의 너그러운 마음이 만나 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야유회도 100% 만족은 없다. 너네나 재밌지 이게 무슨 재미냐고 툴툴거리는 분들이 왜 없으랴. 그래도 변화는 시작되었다. 이 야유회야 좀 변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