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작가 나혜옥 Sep 30. 2024

당신의 사랑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CCTV를 설치한 날

누구를 위한 CCTV일까

오늘 엄마집에 CCTV를 설치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CCTV를 설치하려고 했지만, 엄마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혀 설치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본다는 게 싫다는 거였다. 비록 자식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며칠 전 엄마는 화장실에서 넘어졌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렇게 1시간가량 화장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엄마도 이번에는 내 뜻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아셨는지 화난 얼굴로 작은아들이 CCTV 설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설치된 CCTV는 열 일을 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하기 전 CCTV를 보고 엄마가 전화를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한 뒤에야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주무시기 전 취침 약을 드셨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엄마가 주간 보호 가는 날은 전화해서 깨워드릴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엄마의 안전을 아무 때나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효자인 CCTV는 엄마에게는 고자질쟁이로 여겨져서, 20일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엄마는 CCTV를 설치한 후로 더 짜증을 내셨고, 사사건건 못 마땅해하셨다. 옷 갈아입을 때는 옆으로 돌려놓으라고 했다. 엄마는 옆으로 돌려놓은 것도 모자라 촛대로 한 번 더 가려서 철벽 방어를 했다

처음에 CCTV를 설치하고는 걱정이 돼서 보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습관적으로 보게 됐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를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며칠 후 엄마가 화장실로 가더니 고개를 갸우뚱 거리시며 CCTV를 한참 쳐다보시더니 곧 화면이 꺼졌다.

나는 부리나케 아침 식사를 준비해서 엄마 집으로 뛰어갔다.

"엄마, CCTV에서 삐~~소리 나더니 꺼지던데? 엄마가 만졌어?"

나는 모른척하고 물어봤다.

"야, 샤워해야 하는데 저놈이 눈을 똑바로 뜨고, 모가지를 돌리면서 쳐다보니까 빼버렸지.

그랬더니 호호, 너한테 연락 왔어"

엄마는 CCTV의 플러그를 뽑아버렸다.

나도 질세라 플러그를 다시 꽂고 위치를 옮겨 "화장실 바닥을 찍고 있고 엄마가 넘어져야만 보인다고, 다시는 뽑아 놓지 말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틀이 지난 후 저녁, 엄마와 전화 통화하려고 CCTV를 켜보니 또 화면이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순간 욱하고 화가 치밀었다. 나의 급한 성격을 잘 아는 남편이 행여라도 내가 엄마에게 뛰쳐 가 소리라도 지를까봐, 저녁 기도를 하자고 서둘러 말했다. 당장 엄마한테 뛰어가고 싶은 마음을 참고, 심호흡을 하며 저녁 기도를 마쳤다

저녁 기도 30분 동안 욱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남편은 엄마 집으로 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화내지 말고 잘 말씀드려"라고 소리친다.

나는 엄마 집으로 가면서 화가 식지 않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누군 돈 들여 하고 싶어서 했나!

엄마가 화장실에서 넘어져서 1시간씩 일어나지 못했다고 하니까 엄마위해서 설치한 거지!

허! 참! 내가 할 일 없이 엄마나 감시하는 줄 아나 봐. 아이구, 엄마 뭐 볼게 있다구...'

그래도 여전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엄마 집에 도착했다. 엄마 집과 우리 집은 5분 거리다. 화난 마음을 진정하고 CCTV를 쳐다 보니, 글쎄, 엄마가 대일밴드를 붙여 놓은 게 아닌가?! 순간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났다.

엄마가 주간 보호 다닐 때도 브래지어 하기 싫다고 유두에 대일밴드를 십자가 모양으로 두 개씩 붙이고 다녔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보가 터졌다.

"엄마~ 매달 돈 내고 하는 건데 이렇게 가려 놓으려면 할 필요 없지? 엄마가 원하는 대로 다 빼버리자?!"

"그래, 나 저거 신경 쓰여서 없었으면 좋겠다, 빼버려. 그런데 CCTV 가렸다고 너한테 전화 왔냐?“

"......"

나는 늘 엄마한테 진다. 성질 급한 나는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엄마의 은근과 끈기 앞에 나는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팔딱팔딱 뛰다 제풀에 지쳐 이내 숨이 죽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가 원하는 대로 CCTV를 빼서 창고에 처박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하나만 살 걸, 괜히 세 개씩이나 사서 돈 없애고, 인터넷 신청해서 위약금 물고, 성질 급한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누굴 원망하겠나. 

집으로 돌아오는 어둑한 길을 걸으며 요양원에서 근무할 때 보았던 어르신들의 행동이 문득 떠올랐다.

치매가 심한 어르신들도 기저귀를 갈려고 옷을 내리면 무의식적으로 이불을 끌어당겨 아랫도리를 덮는다. 치매가 심한 어르신들도 수치심이 있는데, 치매 5등급 우리 엄마는 360도 회전하며 쳐다보는 CCTV가 얼마나 싫었을까.

엄마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엄마의 수치심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다치지만 않으면 내 할 몫을 다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는지, 나의 최선이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사랑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