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어금니

그간 고마웠어. 그리고 미안해

by 생각전사

[썩은 어금니-20265년 전 어느 공공기관장으로 있을 때 여비서가 ‘착한 치과’를 하나 소개해 주었다. 그 치과 원장은 증상과 치료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면서 과잉 진료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그 후 단골이 됐다. 한 번은 막내아들이 턱이 아파 판교의 한 치과에서 턱 교정을 권유받은 적이 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는 치료였다. 그래서 막내를 단골 치과에 데려가 다시 진료를 받아 보았다. 원장은 X레이를 살펴보더니 성장하면서 자연히 나아질 테니 굳이 교정을 할 필요가 없단다. 그의 진솔한 태도에 더욱 믿음이 갔다.

그동안 임플란트 두 개를 심었고 지금도 두 개를 더 심는 치료를 진행 중이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오른쪽 아래 썩은 어금니가 늘 마음에 걸렸다. 냄새도 나고 불편해 빨리 빼고 싶었다. 어느 날 그 이야기를 했더니 원장이 말했다.

“빼는 건 빼는 거지만, 자기 이빨만 한 게 없습니다. 썩은 부분을 좀 갈아드릴 테니 더 버텨 보세요.”

그래서 그냥 두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곳에서 냄새가 심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꼼꼼히 양치질을 하면 좀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다시 마찬가지였다. 최근에는 욱신거리기까지 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어제 치과에 가서 결국 썩은 이를 뽑았다. 마취를 하긴 했지만 썩은 놈이 제법 주인에게 작별의 흔적을 남겼다. 고통 속에서 뽑혀 철판 위에 놓인 그 썩은 이를 바라보았다. 3분의 1이 검게 썩어 있었다. 세 갈래 뿌리는 마치 끊어진 나무뿌리처럼 보였다.

“이게 방금 뽑은 제 이빨인가요?”

내가 묻자 원장이 말했다. “왜요? 가져가시려고요?” 뜻밖의 질문이었다.

“아니요.” 나는 순간 그 썩은 이빨에 거부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60년 넘게 내 입속에서 동고동락하며 나를 위해 봉사했던 나의 어금니. 한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지만 어느 날 없어져야 할 존재로 전락했고, 나와 분리되는 순간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질적인 존재가 되고 말았다. 솔직히 그 순간 내게는 썩은 이를 향한 애정은커녕 동정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인간사에서 영원불변의 존재란 찾아보기 어렵다. 소중했던 것이 잊히고, 혐오의 대상, 심지어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오늘 입 안 오른쪽 텅 빈 공간을 더듬다가 문득 썩은 이가 생각났다. 나 자신이 참으로 매정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치과 원장이 “가져가시려고요?”라고 물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가장 소중하고 가장 절실했지만 이제는 쓸모가 없어지고, 어느새 사라지고, 심지어 혐오와 미움의 대상이 된 모든 것들에게 전하지 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썩은 이여, 그간 고마웠어. 그리고 미안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