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의 반성과 교훈

누가 죄인인가?

by 생각전사

무신의 난, 위화도 회군, 왕자의 난, 이괄의 난, 임오군란, 명성황후 시해, 대한제국 군대해산, 5.16, 12.12, 5.18, 그리고 12.3. 정치와 군, 군과 정치는 동전의 양면처럼 얽혀 반복되어 왔다. 때로는 정치가 군을 끌어들였고, 때로는 군이 정치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마다 국가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조선시대 문(文)이 무(武)를 제어했던 질서에서 오늘날 문민통제의 원칙에 이르기까지, 정치구조 속에서 군인은 언제나 정치권력 아래에 놓인다. 정치권력이 명령하고 군은 이를 수명하여 행동한다. 다만 사용하는 수단이 다르다. 정치권력은 법 집행과 여론 형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법과 여론은 사람을 정치적·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명예를 박탈하며, 때로는 공적 생명을 끝내기도 한다. 그 과정에는 절차와 시간이 따른다. 반면 군은 총으로 행동한다. 총은 즉각 몸을 제압하고, 상황에 따라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어떤 순간에는 법과 여론조차 총칼의 통제 아래 놓인다. 긴급 군사조치나 군사 반란, 군사혁명의 경우가 그렇다. 무장력이 거리로 나오는 순간, 정치권력의 정점은 흔들린다.


정치권력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무장력이 혹시 자신을 위협하는 힘으로 변하지 않을까 늘 경계한다. 그래서 군을 통제하고, 장악하고, 자신의 신뢰선 안에 두려 한다. 그러나 통제가 신뢰를 넘어 의심과 편 가르기로 흐르면, 군과 군인은 곧게 서기 어렵다. 머리와 허리를 조아리고, 때로는 오른쪽으로, 때로는 왼쪽으로 기울게 된다.


지금의 상황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군대와 군인은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언제나 집권 권력의 영향 속에서 존재해 왔다. 12.3 계엄 이전에도, 계엄 당일에도, 그리고 이를 단죄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북쪽을 향해 총을 들고 있는 대다수의 군인들까지 의심과 비난의 그늘 안에 놓이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반성해야 하는가. 명령을 내린 자인가, 이를 집행한 지휘관인가, 그 군대에 복무 중인 모든 군인인가. 아니면 문민통제의 이름으로 군을 경계하고 관리해 온 정치권력 전체인가.


지금 군은 12.3 계엄의 후폭풍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고위 장교들이 법 집행과 여론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적·사회적 파장을 겪고 있다. 법적 책임은 행위와 권한에 따라 분명히 가려져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정치적 대립의 연장선으로 인식되는 순간, 군 전체의 사기와 신뢰는 급속히 약화된다. 훗날 정치권력이 교체되어 평가의 기준이 달라진다 해도, 지금 무너진 명예와 상처는 되돌리기 어렵다.


12.3 계엄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군인들이 인식하고 있다. 정치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무장력을 동원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책임을 어디까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물을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지금까지 군을 올곧게 세우지 못한 정치 구조 역시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일방적 단죄만으로는 교훈이 완성되지 않는다.


정치권력의 투쟁 한가운데에 군을 세워 놓는 순간, 군은 본연의 자리에서 멀어진다. 군은 정치의 승패를 가르는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존립을 지키는 최후의 힘이어야 한다. 그 힘이 위축되면 그 피해는 결국 국가 전체로 돌아온다.


반성과 교훈은 단순한 응징이나 방어의 언어로는 자리 잡지 못한다. 정치권력은 절제와 책임을, 군은 헌법과 직업적 윤리를 더욱 단단히 붙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극은 또 다른 비극을 낳고, 우리는 같은 질문을 다시 반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