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은 이미 했어요
오지 말아야 할 게 오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대에 오는
편지가 왔다. 그 어떤 것도 잊기 위해 학업에 열중하던 어느 날 이른 오후, 잊고 있던 한 통이 우편함을 향해 왔다. 올 게 없는데 누가 보낸 거지 하고 봉투의 발신인을 본 순간 걸음을 쉽사리 떼기 어려웠다. 어느 사찰이었다. 성북구에 위치한 작고 고즈넉한 절,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궂은 날씨마저 사찰의 운치를 더해주는 절. 지난 9월에 다녀왔건만 원망스레 이제야 찾아왔다. 지난 9월, 비가 추적 추적 내리던 날 장마철에 자랑스레 샀던 장화를 신고 성북구의 한 사찰을 다녀왔다. 그 때는 외롭지 않았고 손에 다른 이의 손이 쥐어져있었지. 손을 전부 쥐기 부끄럽고 땀이 나 서로의 새끼 손가락만 걸고 휘적 휘적 절을 다니다 지친 발걸음을 쉬고자 한 찻집에 들어섰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의 고민을 적으면 절의 자원 봉사자가 오랜 시간 고민해 답장을 편지로 보내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그와 나는 찻집의 테이블에 마주 앉아 각자의 고민을 적었다. 그 때 내 가장 큰 고민은 지금과 너무 달랐다. 이 앞에 마주한 사람과 어떻게 하면 서로 갈등 없이 이 관계를 잘 이어나갈 수 있을까, 이 불안감은 무엇일까 물었다. 그는 나와 1달 뒤 완전히 갈라섰고 그 답장은 그와 내가 완전히 갈라서고도 3달이 지나서 왔다.
어쩌면 기억이란 게
어쩌면 기억이란 게 참 그렇다. 추억으로 기억 저 편에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들이 문득 문득 기억 저편에서 손짓하며 나에게 걸어오기도 한다. 반겨 줄 수 없는 나의 형편에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한다. 느리게 오는 편지처럼 오지 않았으면 하는 때에 오는 소식들. 잊고 지내다 일종의 트리거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거리의 수많은 무형의 손들이 참으로 원망스럽지 않나. 점점 사람을 만날 때 의미를 담고 은유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이 두려워지지 않을까. 앞으로 내가 갖게 될 비유들이 무음으로 변해가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