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목요 에세이]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었다

by 노루트

아주 가끔 불행을 파고드는

쉽지만 못된 날을

좋아한 적 있어요

나의 작은 몸속에는

믿는 구석 없고

떠나야할지 머무를지 몰라

난 울었어요

- 허회경, ‘결국 울었어요‘


오늘 오랜만에 하루키 책을 읽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어느 작가가 그랬던가. 머리를 가볍게 하려할 때는 하루키 책을 한 권 들고 나간다고. 아마 수려한 비유와 촘촘한 묘사 덕분이리라. 텍스트를 독해하고 행간을 읽는 데 무료함과 지루함을 느끼던 요즘이었다. 하루키의 문장 덕분에 행간을 읽는 피로를 덜고 책을 무아지경으로 읽었다.


예전부터 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작에 양가적 감정을 느꼈다. 그가 쓰는 문체 특유의 디스토피아적 황량함을 사랑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그의 묘사가 지극히 반여성적이고 차별적이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난 그의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이 책을 읽기 전 가장 최근에 읽은 건 스푸트니크의 연인. 한 독서 모임에서 기회가 돼서 읽었다. 사랑의 공포성에 대해 많이 알게 된 책. 누구 하나 온전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뒤틀린 사랑을 하며 결국 고독감을 맞이하게 되는 책. 나는 당시 독후감에 책장을 쉽게 넘길 수는 있어도 마지막 책장을 쉬이 닫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하루키의 책을 서두에 언급한 이유는 최근의 내 상태 때문이다. 어딘가 뒤틀려 가며 고독해지고 황량해졌다. 나를 올바르고 올곧게 직시하지 못하고 그저 하루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기며 이끌리듯 살아가고 있다. 허무주의적인 삶. 어디로 휩쓸릴지 모르는 조각배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허회경의 가사말처럼, 내 작은 몸 속에 믿는 구석이 없는.


지난주에 인턴 퇴사를 했다. 그 후로 새로운 진로를 꿈꾸기 시작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기존의 진로를 버리고 대안을 찾아나섰다는 것에 가깝겠다. 2년 넘게 가졌던 꿈이 실은 내게 적확한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를 응원했던 주변인에게도 충격이었나보다. 나를 믿고 지지했던 이들의 지지가 철회되고 이제 어떤 꿈을 가질지 의문을 갖는 눈으로 바뀐 순간, 삶의 지지 기반이 무너진 듯했다.


그리고 그 주, 고향에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나도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떠났다는 생각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의기소침해진 거울 속 모습을 외면하고 싶었다. 이불을 덮었다. 머리 끝까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