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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성 Mar 14. 2024

영화 <로봇 드림> 리뷰

내가 당신을 만났다는 것은 

  




  삶이란 얼마나 길고 지난한 여정인가. 뉴욕 맨해튼의 이스트 빌리지에 사는 도그는 소파에 앉아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때가 되면 의무와 같은 식사를 하고, 화면에 비친 나의 모습과 공간의 적막이 두려워 TV 소음과 이미지에 의지한다. 도그에게 투사되는 고독과 그가 위안을 찾는 방식은 현대인에게 익숙한 것이다. 이런 무료한 그의 삶에 반려 로봇의 광고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도그는 반려 로봇을 주문하고, 직접 조립한 로봇과 단짝이 되어 일상을 함께한다. 그들은 함께 먹고, 혼자 하던 게임을 둘이 즐기거나 좋아하는 장소를 방문하며 둘만의 추억들을 쌓아간다. 그러나 완벽하게만 느껴지던 그들의 일상은 모종의 사건에 의해 위기를 겪는다. 도그와 로봇은 서로가 없는 시간 속에서 부재를 실감하고, 사건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한다. 


  <로봇 드림>은 의성어만 제시되는 2D 애니메이션 무성 영화로, 1980년대 뉴욕의 고증과 20세기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의 오마주를 찾는 재미가 곳곳에 자리한다. 언어와 문자를 거치지 않고 몸짓만으로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 놀랍고 특별한 요소를 이용하는 무성 영화의 원초적이고 아름다운 매력을 애니메이션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일차적 매력을 갖추고 있다. 영화 속에 대사는 제시되지 않지만, 배경 음악 적절한 사용과 감정을 표현하는 리듬은 영화 전체를 지루할 틈 없이 끌고 나가며 관객의 감정을 촘촘하고 세밀한 흐름으로 그들의 삶에 연결시킨다. 


  동물 캐릭터를 내세우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양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대부분의 영화가 그들을 의인화시킴으로써 인간의 관점에서 제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주인공인 도그는 마치 이케아 가구를 조립하는 것처럼 자신의 손으로 무생물의 파편을 조립하고, 친구를 직접 만드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러한 모습은 <프랑켄슈타인>이나 <HER>, <캐스트 어웨이>, 또는 벤자민 프랭클린 효과가 이용된 무수한 로봇 관련 사회 실험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영화들은 동물 다큐멘터리 장르가 아니며 영화가 자체로 인간에 귀속된 창작 매체라는 점에서 의인화가 이루어지는 사실은 특별한 것도,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무생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애착을 형성하는 인간의 로맨틱하고 쓸쓸한 성질이 두 발로 서서 움직이는 동물들을 통해 조명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분명 흥미롭다. 


  다시 영화 내용으로 돌아가자. 부정하기가 무섭도록 이 영화는 사랑을 주제로 다룬다. 갑자기 찾아온 인연이 고착화되었던 나의 삶을 바꾸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부품을 통해 조립되어 ‘일상’이라는 것을 처음 경험하는 로봇은 흔히 지나치는 풍경과 생활의 사소한 부분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그의 관점은 반려인 도그에게도 영향을 주고, 도그는 로봇과 함께하며 그동안 무의미하게 흘려보냈던 것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위대함이 아닌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기존의 일상을 형성하던 규칙들이 뒤바뀌고, 평범해 보이던 것들이 강물 위의 윤슬처럼 빛나는 경험을 하는 것. 그들은 사랑으로 인해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나와 반려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특별해지는 기분을 경험한다. 사랑의 기저에 숨어있는 두려움은 이런 특별함에서 비롯된다. 모든 시간에는 끝이 존재하고, 사랑의 위대한 마법 또한 유효 기간이 존재함을 우리는 암묵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녹슨 로봇을 움직이기 위해 도그가 분투하는 모습은 더욱 애처롭다. 도그는 로봇을 되찾고, 그들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어렵고 시련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관객과 도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한 존재의 짙은 슬픔과 이별이라는 거대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대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도그는 로봇을 되찾지 못했음에도 그의 일상을 계속해야만 한다. 그는 기억의 물밑에 조용히 잠재되어 있는 사랑의 시간들이 일상의 편린에 떠오를 때마다 상처를 입으면서 로봇이 없는 시간을 견딘다. 


  도그가 ‘반쪽’의 생활을 지속할 때, 움직일 수 없는 로봇도 도그가 없는 일상을 견뎌낸다. 로봇은 자유로워진 자신이 다양한 수단과 방식으로 도그를 찾아가는 꿈을 꾼다. 그러나 그의 꿈은 언제나 재회가 아닌 각기 다른 방식의 이별과 두려운 결말로 귀결된다. 그가 나를 잊었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나와의 경험을 공유할 거라는 불안, 로봇은 가만히 누워 세상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랑의 눈부신 기억들과 그에 동반되는 불안을 그렇게 배운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나 서로의 기억에 매몰되어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사랑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도그와 로봇은 하염없이 지속되는 일상에서 다른 만남을 찾기도 하고, 그들의 일부가 나와 맞지 않는 것을 깨달을 때 다시 서로의 기억을 꺼내며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들은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각자의 일상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각각의 이별을 맞이하며 점차 처음 그들이 만났을 때보다 더 성숙하고 단단해진다. 


  그래서 <로봇 드림>의 전개는 따듯하고, 동시에 서글프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귀여운 외형과 대조되는 그들의 삶이 현실의 만남과 이별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그와의 이별 이후 머리를 제외한 몸의 모든 부분이 바뀐 로봇처럼, 부재의 시간 동안 겪는 새로운 인연의 과정은 나 자신의 본질은 유지한 채 과거의 그가 알던 나의 모습과 또 다른 형태의 나를 형성한다. 즉 더 이상 그들에게 가까운 것은 서로가 아닌 현재의 그들을 만든 인연에 있게 되는 것이다. 도그와 로봇의 재회는 보편적인 해피 엔딩처럼 이루어지지 않지만,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서로를 잃은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간 것뿐이다. 도그는 로봇과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로봇을 더 조심히 대하고, 로봇은 도그와의 경험으로 현재의 반려를 소중히 한다. 이보다 현실적인 사랑 얘기가 어디에 있겠는가? <로봇 드림>은 관객에게 떠나온 인연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되찾게 만들면서, 결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우리는 이미 지난 경험을 통해 어떤 만남들은 받아들이는 것만큼 보내는 것 또한 사랑의 일부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을 만났다는 것은 당신과 함께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적응을 받아들이겠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우리의 이별 또한 기꺼이 감내한다는 것, 나의 기억 속 볕이 잘 드는 자리에 당신을 두고서 그리울 때마다 꺼내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화가 내게는 <라라랜드>보다 진실된 형태로 현실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무례할까?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도 이 영화 관람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당신이 <라라랜드>가 사랑을 조명하는 방식에 매료되었고, 그들이 애틋하게 느껴졌다면 이 영화도 분명 사랑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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