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중학교 입학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은 그동안 시간이 많이 남았을 거라는 생각에 미뤄뒀던 일을 해치우기로 했다. 바로 아들의 중학교 입학가방을 사는 일이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 쓰던 가방이 있는데 꼭 사야 하냐고 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방을 새로 사야 한다고 강조하며 말했다. 아들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산 가방을 졸업할 때까지 사용했다. 3학년때부터 계속 가방을 바꿔주겠다고 했지만 아들은 쓰던 가방을 고집했다. 새 학년이 될 때마다 가방을 둘러싼 신경전이 있었지만 언제나 아들의 뜻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나도 절대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최소한 중학교에 입학할 때는 새 가방을 사야 한다고, 지금 가방은 누가 봐도 초등학교 입학가방이라고, 나도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들은 자기가 생각해도 심하다고 느꼈는지 이번에는 바로 고집을 꺾었다.
아들의 가방을 사러 가기에 앞서 나는 철저하게 사전준비를 해두었다. 요즘 중학생들이 선호하는 가방 브랜드를 미리 조사해 둔 것이다. 치밀하고 꼼꼼하게 조사한 결과 세 개의 브랜드가 요즘 유행하는 브랜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조사는 유행에 민감한 지인 한 명으로부터 얻은 정보이므로 매우 신빙성이 있었다. 지인의 정보에 따르면 N브랜드와 D브랜드, 그리고 K브랜드가 중학생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라고 했다. 나는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쇼핑을 위한 최적의 동선을 파악해 두었다.
내가 이렇게 사전작업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 1월에 아들과 남편의 생일 선물을 사러 갔을 때였다. 원래 내 계획은 최소 두세 시간 동안 천천히 매장들을 둘러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마치 자로 줄 긋기 하듯이 매장과 매장을 향해 직진해 갔다. 그러다가 내가 여성 의류 매장을 둘러보거나 카페에 가려고 하면 어디 가냐고 매장은 저쪽이라고 불만스럽게 말했다. 아들의 등쌀에 쇼핑시간은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덕분에 시간은 단축됐지만 즐거운 쇼핑이었다고는 못하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짧고 굵은 쇼핑을 계획한 것이다.
먼저 집 근처 가장 가까운 아울렛으로 갔다. 아들과의 쇼핑에서 거리가 있는 백화점이나 아울렛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가방 하나 사는데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있냐는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 나의 쇼핑스타일이라면 최소 두세 곳의 백화점과 아웃렛을 둘러봐야 하겠지만 과감히 포기한다. 아들을 이리저리 다른 건물로 끌고 다니는 것은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모험이다. 아울렛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건물안내도에서 세 개의 매장위치를 알아낸다. 그리고 지금 있는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매장으로 향한다. 매장에 있는 옷이나 다른 액세서리에는 눈길도 주면 안 된다. 바로 가방으로 가서 진열된 가방의 모양과 색깔, 마지막으로 무게를 살펴본다. 아들은 이미 살 가방을 정했다고 말한다. 그 말은 살짝 무시하고 다시 가장 가까운 다음 매장으로 향한다.
이렇게 세 개의 미리 정해둔 매장을 둘러본 후에 마지막 매장에서 가까운 휴식공간으로 아들을 데리고 간다.
"아 왜? 그냥 사면되는데."
라며 아들은 마지막 매장에서 가방을 사겠다고 한다. 그래도 일단 아들을 진정시키면서 의자에 앉게 한다.
"아들~ 어떤 가방이 가장 마음에 들어?"
"그냥 방금 본 걸로 사도 될 것 같은데......"
"정말 그 가방이 가장 마음에 들어?"
"네. 이제 빨리 가방 사서 가죠?"
"알았어. 그럼 처음 매장에 다시 한번만 가보자."
"아~ 왜요? 그냥 여기서 사요."
라며 저항했지만 그냥 무시하고 처음 매장에 다시 갔다. 내가 이렇게 한 이유가 있다. 아들은 처음 매장에서도 검은색 가방 하나를 집어 들고 이걸로 하겠다고 했다. 두 번째 매장에서도 가장 마음에 든다고 검은색 가방 하나를 골랐다. 세 번째 매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의 마음에 드는 가방이 매장마다 있는 것인지 귀찮아서 아무거나 사려고 하는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는 역순으로 세 번째 매장과 두 번째 매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첫 번째 매장으로 갔다. 그러면서 다시 마음에 드는 가방이 있냐고 물었다. 아들은 이제야 자신이 원하는 가방을 콕 집어서 이야기했다. 아들이 선택한 가방은 두 번째 매장에서 본 K브랜드의 가방이었다. 색상도 지금까지 마음에 든다고 골랐던 검은색이 아니라 차콜컬러였다. 아들에게 여러 번 물어봤고, 매장직원이 아들에게 클 것 같다고 다른 상품도 권했지만 아들은 그 가방만 고집했다. 나는 아들이 선택한 가방을 계산하고 나왔다.
아들이 고른 가방은 세 브랜드의 가방 중에서 가장 비싼 가방이었다. 이번 쇼핑에서 나는 아들에게 가격표를 보여주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돈에 대해서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었다. 장난감도 돈이 없어서 못 사주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안 사주는 거라고, 장난감은 기념일에 선물로만 사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도 아들은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조금이라도 비싸면 사지 않으려고 했다. 친구들이나 우리에게 줄 선물을 살 때는 가격을 따지지 않으면서도 자기 선물을 살 때는 너무 비싼가? 라며 자꾸 망설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격표를 아들에게 보여주지 않고 나만 살짝 봤다. 아들이 가격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에 꼭 드는 것으로 사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들은 평소답지 않게 가장 비싼 가방을 골랐다.
저녁을 먹고 아들은 방에서 낮에 산 가방을 들고 나왔다. 가방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아들은 흐뭇해했다. 아들이 산 가방은 내가 봐도 참 예뻤다. 사실 세 개의 매장을 돌아보는 동안 내 눈에는 가방들이 다 비슷하게 보였다. 그래서 내가 골랐다면 선뜻 마음을 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들이 산 가방은 색상부터가 다른 가방과 달랐다. 카키색이 살짝 섞인 진한 회색컬러가 볼수록 내 마음에도 쏙 들었다. 아들도 마음에 들었는지 몇 번이고 가방을 메고 거울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내 마음도 뿌듯했다. 평소 물욕이라고는 없는 것 같던 아들의 새로운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자기 자신을 위해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는 즐거움을 아들이 조금 맛본 것 같아서 흐뭇했다. 아들과의 쇼핑은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일은 아니다. 아들과의 쇼핑에서 필요한 것은 스피드다. 그러기 위해 철저한 사전조사와 내 눈이 즐거운 쇼핑쯤은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