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며칠 전부터 친구들이 방탈출카페 가자는데 가도 되냐고 물었다. 올해 중학생이 되는 아들의 활동범위는 집 근처가 전부였다. 아들의 친구들이 가자고 한 방탈출카페는 전철을 타고 가는 곳에 있었다. 작년에 집 근처에 전철역이 생기면서 아들의 친구들은 여러 번 방탈출카페에 다녀왔다고 한다. 아빠나 내가 차로 데려다준다고 해도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전철을 타고 가고 싶어 하는 눈치다. 우리랑 같이 전철을 타고 서울에 다녀온 적은 많아도 어른 없이 전철을 타고 서울 외출은 처음이라 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중학생이 되는 아들이 언제까지 우리 품에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허락을 해야만 했다.
아이들은 아침 10시에 만나서 전철역으로 같이 가기로 했다고 한다. 아들은 난생처음 자기들만의 서울 여행이라 들떴는지 9시 30분에 벌써 집을 나섰다. 친구들과 문자가 한차례 오간 후였다. 삼만 원씩 가져가기로 했다는 말에도 나는 2만 원을 더 가방에 넣어줬다. 혹시 돈이 부족하면 겁 많은 아들이 더 불안해할 것 같아서였다. 아들이 현관문을 나서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갈 때도 혼자 나가던 문인데 왜 그렇게 낯선 기분이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철은 잘 탔는지, 방탈출카페는 잘 찾아갔는지 걱정이 됐지만 문자도 전화도 참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텼다. 함께 간 친구들은 아들을 포함해서 4명이었다. 이제 중학생이니까 자기들끼리도 잘 해낼 것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도 할 줄 알겠지.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으로 애가 탔지만 나름 나도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몇 시간이면 집에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심을 먹고도 한참 동안 연락도 없고 아이는 집에 오지 않았다.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해져서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했다. 하지만 아들의 흥을 깨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참았다.
이제는 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시간이 되었다. 도착했다는 문자 한번 보내고 연락 없이 6시가 다 되어갈 무렵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어, 아들? 오고 있어?"
"아니요 엄마. 애들이 PC방 가자는데 가도 돼요?"
"PC방? 너무 늦었는데. 이제 와야 하지 않을까?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됐는데. 혹시 집 근처야?"
"아니요. 아직 서울이에요."
"잉? 아직도? 아들 이제 그만 집에 와야지. 금방 어두워질 텐데. 지금 바로 출발해도 1시간이 넘게 걸릴 거야."
"네."
전화를 끊고 어둑해지는 창밖을 보면서 아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저녁을 준비했다. 아직도 방탈출카페 근처에서 놀았다니 아이들의 대담한 나들이에 놀랐다. 창밖이 완전히 깜깜해진 저녁 7시 20분쯤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은 내 걱정과는 달리 무사히 집으로 왔다. 씻고 나온 아들이 용감무쌍 대담했던 서울 나들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방탈출카페에서는 탈출에 실패했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여러 번 가 봤다더니 다른 방이라 암호를 풀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방탈출 카페를 나와서 보드방에 가서 보드게임을 하고 놀았다고 한다. 아들은 보드게임이 재미있어서 더 놀고 싶었는데 친구들이 나가자고 해서 아쉬웠단다.
그리고 집으로 갈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만화카페였다. 만화카페에서 떡볶이로 허기를 채우고 놀다가 나온 친구들이 이번에는 PC방에 가자고 했단다. 아들은 사실 PC방에 가 본 경험이 없었다. 엄마 몰래 가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기에는 아들의 생활은 아주 단조롭고 투명하다. 아들은 PC방에 가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집으로 가자고 했는데 친구들이 자꾸 게임하러 가자고 하는 바람에 엄마한테 전화해서 허락받겠다고 했다고. 4명 중 2명은 PC방에 가는데 찬성이고 한 명은 반대하는 상황이었다. 아들의 의견이 중요한 타임이었는데 내가 그만 집으로 오라고 해서 아이들은 모두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세상에 하루에 방이라는 방은 다 돌아다닐 생각이었는지 아이들은 방탈출이라 아니라 방순례를 했다. 마지막 PC방까지 찍고 오지 못한 것을 친구들은 못내 아쉬워했다고 한다. 아들은 아침 10시에 나가서 저녁 7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쯤 되면 아이들의 목적은 방탈출이 아니라 집탈출이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이제는 조금씩 부모의 품을 벗어나는 아들의 첫 서울나들이 이후, 나는 또 고민에 빠졌다. 아이들에게 PC방은 어떤 공간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아이들은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일까? 그렇다면 아들도 허락해줘야 하는데 나도 너무 오랫동안 가보지 못해서 PC방의 분위기를 알 수가 없었다. 아직 아들은 PC방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놀다 보면 또 PC방에 가자는 말이 나올 텐데 그 공간은 아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방일까? 또다시 방이 아니라 집을 탈출해서 친구들과 자유로운 하루를 보내게 될 그날이 올 것이다. 나는 아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자유를 허락해야 하는 것인지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가 내 앞에 놓여 있다.
- 메인사진은 라카페갤러리 '박노해 사진전'에서 사진을 보고 있는 아들의 뒷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