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지인과 코스트코로 장을 보러 갔다. 코스트코 회원카드가 없는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코스트코 나들이였다. 이번에는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만난 두 분과 함께 갔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지만 멀지 않으니 걱정 없이 다녀올 거리였다. 코스트코는 정말 이상한 곳이다. 우리 세 가족 뭐 그리 많이 먹는다고 대용량으로 살 필요 없다는 생각에 코스트코 카드를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매장에 들어가면 눈이 돌아간다. 가격이 너무 저렴하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사는 유기농 바나나가 다른 곳에서는 4개에 3500원, 코스트코는 8개에 4000 정도면 살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코스트코는 모든 제품의 가격이 저렴하다. 코스트코의 치명적인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양이 과하게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용량을 사서 나누기도 하는 것 같았다.
매장은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채소나 과일, 고기에서부터 빵과 옷은 물론 가전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양은 많고 가격은 싸니까 보고 있으면 자꾸 카트에 담게 된다. 그래서 코스트코 안 가도 된다고 했던 나도 갈 때마다 금액이 꽤 나온다. 그래도 이번에는 꽤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 바나나와 밤호박, 냉동 오징어와 샐러드드레싱, 그리고 음료수 한 상자를 샀더니 칠만 원 정도의 금액이 나왔다. 내가 뿌듯해지는 시간이었다. 같이 갔던 분들은 모두 커다란 아이스박스 가방 두 개를 꽉꽉 채우고도 모자랄 정도의 물건을 구매하고서야 우리는 카트를 끌고 주차장으로 갈 수 있었다. 차에 커다란 가방을 싣는데 혼자 들기 버거울 정도였다. 내가 가방을 같이 들어주려고 드는데 너무 무거워서 힘들어하니까 한 분이 말했다.
"아 이 언니 귀하게 자라셨네. 왜 이렇게 힘을 못 써요."
나는 이상하게 기분이 상했다. 귀하게 자랐다면 좋아야 하는데 그 말은 왠지 좋은 의도로 들리지 않았다.
매장에서의 일이 다시 생각이 났다. 냉동오징어를 살 마음이 없었는데 가격이 정말 싸서 살까 말까 고민을 했다. 냉동오징어가 양이 많기도 했지만 자르지 않은 오징어였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채쓴 상태로 냉동된 오징어를 사용한다고 했을 때도 그분이 나한테 똑같은 말을 했다. 이런 사소한 일에도 내가 귀하게 자란 것이 그분의 눈에는 보이는 모양이다. 결국 귀하게 자랐다는 말에는 게으르고 일을 해 보지 않아서 힘이 없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에 두 번이나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상했다.
사실 나는 가끔 그런 비슷한 말을 듣는다. 고기를 먹으러 갔을 때 내가 고기를 가위로 자르는 모습을 보고 곱게 자랐나 봐요라고 할 때가 있었다. 결국은 야무지지 못하고 어설프다는 의미를 그렇게 돌려 말하는 것이다. 나는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말이 칭찬이 아니라 비난 내지는 돌려 까기라는 것을 말하는 사람도 알 텐데. 혹시 듣는 사람이 정말 자신이 귀하게 자란, 귀티가 흐르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너 귀하게 안 자란 거 아는데 똑바로 해라 이런 의미일까?
사실 손끝이 야무지 못하고 힘도 세지 못하지만 나는 귀하게 자라지는 못했다. 그리고 믿기 힘들겠지만 어릴 때는 부지런하고 야무지다는 말을 곧잘 듣기도 했다. 그런 내가 어쩌다가 오징어 따위 때문에 그런 말을 듣고 있는지 나로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농사일에 고등학교 때부터 공장이나 마트 같은 곳에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시절에는 그래도 일 잘한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얘기 들어보면 나보다 더 귀하게 자란 그분들에게 듣는 귀하게 자랐다는 말, 나는 얼마나 어수룩한 사람일까 돌아보게 한다. 주부라면 당연히 커다란 장바구니 하나쯤은 번쩍번쩍 들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비린 오징어를 손질하는 것이 싫어서 조금 더 비싸지만 손질된 오징어를 사는 사치 따위는 부리지 말아야 할까? 주부가 되고부터 자주 듣는 귀하게 자랐다는 칭찬이 들을 때마다 싫다. 아니 나는 정말 귀하게 자란 어린 시절을 갖고 싶다. 그럼 귀하게 자랐다는 말을 들어도 마음이 상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