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문자가 왔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왔는데 무슨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지 묻는 문자였다. 최근에 아들은 편의점이나 카페, 아이스크림가게에 가면 엄마는 뭐 먹고 싶냐고 묻는 문자를 종종 보낸다. 편의점에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들어갔는데 엄마아빠를 위해 뭘 사갈까 고민하다가 전화를 해준다는 것이 고마워서 필요한 것이 없어도 나도 하나 골라본다. 아들은 용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몇천 원 쓸까 말까 할 정도로 용돈 씀씀이가 알뜰하다. 중학생이 된 후에는 아들 명의의 체크카드가 있어서 용돈을 통장에 넣어준다. 아들이 쓰는 가장 큰 금액의 돈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른 비용이다. 나는 예약만 해 주고 아들이 하교하면서 미용실에 가는 날이 많아서 내가 카드나 현금을 주는 것을 깜빡하는 날이 많다. 그러면 아들은 쿨하게 자기 용돈카드로 긁는다. 내가 다시 보내준다고 하면 아들은 에이 뭘. 하면서 기분 좋은 거절을 한다. 아들은 용돈이 아니라 카드로 뭔가를 결제하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면 자주 편의점이나 친구들과 여기저기 다닐 법도 한데 만나면 놀이터나 아파트 벤치에서 수다 떨다가 돈 한 푼 쓰지 않고 집으로 온다.
최근에 아들의 체크카드를 용돈카드로 쓸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달 단위로 두 번이나 체크카드를 분실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런 날을 대비해서 카드에 견출지로 연락처를 적어놔서 두 번 다 몇 분 만에 찾기는 했지만 계속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결국 내 신용카드결제앱을 아들의 휴대폰에 깔아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첫 결제를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하게 된 것이다. 아들이 친한 친구와 수다 떨면서 친구의 집 근처까지 갔다가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31가지 맛 중에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가게다. 아들이 매우 좋아하는 곳이다. 역시나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간 아들이 엄마에게 문자로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물어봤다. 평소에는 슈팅스타만 먹는데 최근에 이상하게 초코아이스크림에 빠져서 아몬드 봉봉을 주문했다. 그리고 몇 분 후에 결제문자가 날아왔다. 그리고 바로 이어 날아온 귀여운 문자, 엄카 달달하네요.
무슨 의미였을까? 엄카로 결제해서 산 아이스크림이 달달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촌스럽게 플라스틱 카드로 긁던 것을 휴대폰으로 바로 결제하는 것이 힙하고 달달하다는 의미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자기 통장에는 용돈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엄카로 아이스크림을 사니 돈 굳어서 달달하다는 걸까? 아들의 문자를 받고 이런저런 추측을 하면서 내 기분도 덩달아 달달해졌다. 혼자 아이스크림 사 먹으면 될 것을 매번 엄마아빠 것도 사 오는 달달한 아들이 있어서 기분 좋았다. 집에 와서 보니 아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오고 나서야 아이스크림 뚜껑을 열어서 숟가락으로 크게 떠서 먹기 시작했다. 먼저 먹으면 먹다 남은 것 같은 모양이 되는 것이 미안해서 기다려준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나는 기어이 유치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아들, 왜 혼자 아이스크림 안 사고 엄마아빠한테 전화해서 우리 것도 사 왔어?"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왜 그래야 할 것 같았는데?"
"그냥. 혼자 사면 좀 그렇잖아요."
"혼자 사서 먹으면 되잖아?"
"그냥 내 거만 사기 그래요. 컵은 포장도 안되기도 하고. 사려고 하면 엄마 아빠 생각이 나요."
"왜 엄마아빠 생각이 날까?"
나는 끈질긴 유치함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답을 아들 대신 해주었다.
"아들, 뭔가를 사거나 먹을 때 생각나는 게 좋아하는 거야. 네가 엄마아빠를 좋아해서 생각나고, 그래서 우리 것도 사 오는 거야."
"에이 뭐."
아들은 중2답게 무심하게 말하면서 아이스크림만 박박 긁어먹었다.
누군가 생각나고 챙겨주는 사소한 것들이 애정이고 관심이라는 것을 아직 아들은 모르는 것 같았다. 아들의 마음은 달달하고 따뜻한 것들로 채워져 있는데 아직 아들은 그것들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 엄마가 집으로 오면서 카페에서 사 왔던 에이드 한잔의 기억, 아빠가 출장 갔다가 유명빵집에서 사 온 맛있는 빵맛을 아들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아빠가 자기를 행복하게 했던 작은 기억을 사 오는 것이다. 그 순간 몸이 기억해서 했던 일들에 엄마아빠에 대한 마음까지 담아왔다는 것을 아들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몽글몽글해진 마음을 엄카의 달달한 문자에 실어 나에게로 보냈다. 나는 엄카를 가진 아들보다 더 달달한 마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