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의 종말과 CLI 시대
2월 24일, 소형 리서치업체 하나가 월가를 뒤흔들었다.
시트리니 리서치가 발표한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 보고서 한 편에 다우지수가 800포인트 넘게 급락했다. 보고서의 골자는 이렇다. AI가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대량 대체하면서 미국 실업률이 10.2%까지 치솟
고, S&P 500은 고점 대비 38% 폭락한다는 가상 시나리오 [2]. IBM은 하루 만에 13% 빠졌고, 소프트웨어주와 사이버보안주가 9% 이상 밀렸다.
시트리니 보고서 자체는 '사고 실험'에 가까웠고, 시타델 시큐리티즈는 곧바로 반박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수요는 오히려 전년 대비 11% 늘고 있다고. 그런데 나는 이 소동에서 다른 게 눈에 걸렸다. 시트리니가 건드린 진짜 공포는 실업률이 아니었다. AI가 개발 비용을 0에 수렴시키면서, 플랫폼을 만드는 것 자체가 commodity가 되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플랫폼의 핵심 가치는 두 가지였다. 네트워크 효과와 진입 장벽. 사람이 모이니까 사람이 더 모이고, 그 사이에
벽이 있으니까 밖에서 못 들어온다. 그런데 AI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무너뜨리고 있다. 바이브코딩으로 주말에
혼자 만든 앱이 바이럴을 타고, 한 달 뒤에 누군가 똑같은 걸 더 낫게 복제한다. 10분이면 플랫폼이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플랫폼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물어야 한다.
이 질문이 개발자만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배달 기사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인지는 글 말미에 다룰 예정이다.
그 도구들이 무엇인지 보자.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CLI다. 커맨드라인 인터페이스, 검은 화면에
글자를 치는 그것. 1970년대의 유물 같지만, 2026년에 다시 전면에 나서고 있다.
클로드 코드(Claude Code)가 대표적이다. Anthropic이 만든 터미널 기반 코딩 도구로, IDE라는 플랫폼을 통째로 건너뛴다. 2026년 1월 이후 주간 활성 사용자가 2배로 뛰었고, 런레이트 매출은 25억 달러를 넘었다.
GitHub 공개 커밋의 4%를 클로드 코드가 작성하고 있고, 연말까지 일일 커밋 점유율 20%를 넘길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오픈클로(OpenClaw)는 더 급진적이다. 오픈소스 AI 에이전트로, 내 컴퓨터에서 직접 돌린다. WhatsApp이든
Slack이든 Telegram이든, 이미 쓰고 있는 채널에 붙어서 일한다. 셸 명령을 실행하고, 브라우저를 조작하고, 파일을 관리한다. GitHub 스타 24만 7천 개 도구라 부르기엔 역할이 너무 많다. 개인 운영체제라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2026년 3월 5일, 구글이 워크스페이스 CLI(gws)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비공식 프로젝트이지만, Rust로 만들어졌고 40개 이상의 에이전트 스킬을 탑재했다. Gmail부터 독스까지, 구글 워크스페이스 전체를 터미널 한 줄로 조작한다. MCP(Model Context Protocol)를 지원해서, 클로드나 제미나이 같은 AI 에이전트가 직접 구글 워크스페이스를 조작할 수 있다. 구글조차 GUI가 아니라 CLI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세 사례의 공통점이 있다. 중간에 있던 앱이라는 레이어를 건너뛴다. IDE를 건너뛰고, 채팅 앱의 경계를 넘고, 웹 인터페이스를 생략한다. GUI가 해주던 일은 간단했다. 기능을 골라서 예쁘게 포장하는 것. 그런데 AI 에이전트가 기능을 직접 호출할 수 있게 되면, 그 포장지가 필요 없어진다.
여기까지는 개발자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터미널에서 글을 쓰고, CLI로 배포하고, API를 직접 호출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사람의 관점이다.
그런데 이 변화는 개발자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올해 NRF(미국소매박람회)에서 구글과 쇼피파이가 공동 개
발한 'Universal Commerce Protocol'이 발표됐다 [8]. Walmart, Target, Visa, Stripe, PayPal이 참여한다. AI 에이전트가 상점과 직접 연결되는 오픈 프로토콜이다. 소비자의 에이전트가 판매자의 에이전트와 직접 대화한다. 앱스토어도, 검색 엔진도, 쇼핑몰도 건너뛴다. 이 프로토콜이 음식 배달에 적용된다면, 배달 기사는 플랫폼 없이도 음식점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할 수 있다.
맥킨지는 이 흐름을 '에이전틱 커머스'라 부르면서, 2030년까지 미국 B2C 시장에서 9천억~1조 달러 규모의 기회가 열린다고 전망했다. 일부 리테일러에서는 이미 AI 추천 트래픽이 전체의 25%를 넘었다.
반론은 분명하다. CLI는 대중이 쓸 수 없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핵심은 CLI 자체가 아니다. 자연어가 CLI가 되
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주 금요일 저녁 강남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 예약해줘"라고 말하면, AI 에이전트가 그
뒤에서 API를 호출하고, 결제를 처리하고, 캘린더에 등록한다. 자연어 명령의 모호성이라는 새 문제가 생기지만,
확인 한 번 거치는 것은 앱의 여러 화면을 탭하는 것보다 빠르다. 사용자는 자기가 CLI를 쓰고 있는 줄도 모른다.
플랫폼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연결'이라는 핵심 기능은 에이전트가 대체한다. 플랫폼에 남는 것은 인증과 결
제 — 신원을 확인하고 돈을 옮기는 인프라 역할뿐이다. 그렇다면 에이전트를 감싸는 래퍼가 다음 플랫폼이 되
는 건 아닌가.
이 흐름의 가장 작은 단위에서 한 장면을 상상해본다. 배달 기사 A씨가 배민 앱을 켜지 않는다. A씨에게는 자기만의 도구가 있다. AI 에이전트가 주문을 받고, 경로를 최적화하고, 정산을 처리한다. 단골 고객 200명과 직접 연결돼 있다. 상위 수수료 최대 7.8%를 내는 대신, 자기가 만든 시스템으로 일한다. 배민의 MAU 2170만 명 중에서 200명만 있으면 된다. 10분이면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지만, 200명의 신뢰를 쌓는 데는 10분으로 안 된다.
현실의 장벽은 두껍다.
가장 무거운 건 신뢰다. 소비자가 '모르는 개인'의 배달 서비스를 믿을 메커니즘이 없다. 플랫폼이 제공하던 가장
보이지 않는 가치가 이 신뢰 레이어다. 별점, 환불 보증, 고객센터 — 전부 플랫폼이 대행하고 있었다. 그 다음은
발견 가능성이다. A씨의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나. 플랫폼이 쥐고 있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검색
과 추천'이라는 발견 경로다. 규모의 경제와 법적 책임도 남는다. 배민이 수천 명의 기사와 수만 개의 음식
점을 연결하는 효율, 소비자 보호와 분쟁 해결을 대행하는 법적 인프라 — 2026년 배달 플랫폼 규제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개인이 이것을 스스로 준수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리고 솔직히, 플랫폼은 이미 여러 번 죽는다고 했지만 매번 더 강해졌다. 웹 2.0 때도 '탈중앙화'가 외쳐졌고,
Web3도 같은 서사였다. 결국 FAANG이 더 커졌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다른 게 하나 있다. 도구의 접근성이다. 오픈클로 같은 셀프호스팅 에이전트가 24만 스타를
받는 세상이다. MIDiA Research에 따르면 2032년까지 전 세계 크리에이터가 11억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규모는 2026년 기준 2036억 달러다. 이 크리에이터들이 점점 '플랫폼 위의 사용자'가 아니라 '자기
채널을 가진 운영자'로 전환하고 있다. 도구가 갖춰지면 행동이 바뀐다.
한 발 물러서 보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CLI가 아니다. 자기 일을 끝내는 것이다.
플랫폼 종말론에는 함정이 있다. 편의성과 큐레이션, 그리고 기능을 하나로 묶어주는 포장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 내 대신 선택지를 줄여주고, 품질을 보증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주는 것 — 이게 플랫폼이 제
공하던 가치이고, 이 필요는 플랫폼이 사라져도 남는다.
그래서 진짜 질문은 이거다. 누가 소비자의 에이전트가 될 것인가.
클로드 코드가 Anthropic이라는 회사 위에 있듯, 자연어로 CLI를 감싸는 래퍼가 보편화되면, 그 래퍼를 제공하는 회사가 다음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플랫폼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레이어로 내려앉는 중이다.
Stripe가 결제를, AWS가 인프라를, Cloudflare가 네트워크를 맡고 있듯이. 앱이라는 껍데기는 벗겨지지만, 그
아래의 인프라는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플랫폼이 죽는 게 아니라 변형된다.
플랫폼이 해체된 세상이 더 자유로운 세상인지, 아니면 더 복잡한 세상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10분이면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세상에서, 플랫폼의 가치는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
있다. 그리고 그 관계의 가장 작은 단위는 결국 개인이다.
배달 기사 A씨가 배민 앱을 끄는 날이 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끌 수 있는 도구는 이미 있다. 문제는 도구 밖의 세
상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먼저 시도해봐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