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새로운 낭만, Entrepreneurship

지식노동과 감정노동이 소프트웨어라는 금형 안에 담기기 시작했다.

by kimdonglin

건설업은 수많은 사람들로 굴러가는 산업이다. 영화와 드라마 같은 영상 산업도 다르지 않다. 제조업 역시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흔히 이런 산업의 결과물에 감탄하지만, 사실 그 매력의 핵심은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사람’에 있다. 각자의 역할을 가진 이들이 부딪히고, 조율하고, 끝내 하나의 완성물을 함께 만들어냈다는 사실. 많은 사람이 어떤 산업에 낭만을 느끼는 이유는 결국 거기에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계비용 제로의 세계


그런데 지금 세상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듯 보인다. AI와 로보틱스를 중심으로 산업은 점점 더 1인 기업에 가까운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시스템화, 표준화, 그리고 한계비용의 최소화. 한 번 잘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와 자동화 공정은 사람의 반복적인 투입 없이도 결과를 복제한다. 영상은 생성형 AI로 완성되고, 음악은 알고리즘으로 생산되며, 조명과 그래픽 역시 자동화된 에셋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과거에는 수많은 손을 거쳐야 했던 일들이 이제는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처리된다.


경제학에서 한계비용이란, 제품이나 서비스를 '딱 하나 더' 생산할 때 추가로 드는 비용이다. 자동차 한 대를 더 만들려면 철강, 부품, 노동력이 추가로 필요하다. 전통적 제조업에서는 이 비용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기 어렵다.

그러나 AI와 디지털 산업의 세계에서는 다르다. 처음 만드는 데 막대한 R&D 비용이 들지만, 일단 완성되면 한 명에게 서비스하나 백만 명에게 서비스하나 추가 비용이 거의 0에 수렴한다.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평균 비용은 획기적으로 낮아지고, 이는 독점적 이익의 기반이 되거나, 혹은 서비스를 파격적인 가격에—때로는 무료로—제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지식, 경험, 감성까지도 이 한계비용 제로의 논리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바로 이것이 '무형자산의 제조업화'가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경제 구조 자체의 전환인 이유다.


이 변화의 본질은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무형자산의 제조업화다. 과거의 서비스업, 지식산업, 교육, 의료, 예술은 제조업이 아니었다. 정해진 틀로 찍어내기 어려웠고, 사람의 경험과 감각, 숙련과 시간에 의존했다. 법률 자문도, 회계도, 상담도, 진단도, 강의도 결국 한 사람의 시간을 투입해야만 제공될 수 있었다. 복제는 쉽지 않았고, 그래서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AI 시대에는 과거 장인의 손끝에 있던 것이 이제는 데이터와 모델 안에 저장된다.



지식노동과 감정노동이 소프트웨어라는 금형 안에 담기기 시작했다.


금형을 한 번 만들면 같은 물건을 수천 개, 수만 개 찍어낼 수 있다. 첫 번째 금형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하지만 두 번째 제품부터는 재료비 정도만 추가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한계비용이 급격히 떨어지는 구조다.


오랫동안 이 구조는 물리적 제품에만 적용됐다. 의사의 진단, 교사의 수업, 변호사의 조언, 작가의 문장 — 이런 것들은 금형에 담을 수 없었다. 사람이 직접 시간을 투입해야 했고,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환자를 볼 수 없었고, 한 교사가 수백 명에게 각각 다른 수업을 할 수 없었다. 복제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AI가 이 벽을 허물었다. 소프트웨어와 AI 모델이 무형자산의 '금형'이 되기 시작했다. 의사의 패턴 인식이 학습 데이터에 담겼고, 교사의 수업 설계가 알고리즘에 담겼고, 변호사의 법리 추론이 LLM에 담겼다. 한 번 만들어진 모델은 1명에게 서비스하나 100만 명에게 서비스하나 추가 비용이 거의 비슷하다.


물론 '거의'라고 쓴 데는 이유가 있다. 완전히 0은 아니다. AI 추론에는 연산 비용이 들고, 에너지가 소모되고,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전통 SaaS 기업의 총마진이 8090%인 데 비해 AI 기업의 총마진은 5060% 수준이다. 구글은 AI 검색 쿼리가 일반 검색보다 10배 비싸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AI를 돌리는 비용은 2년 만에 280배 하락했다.


S&P 500 기업 시가총액에서 무형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5년 17%에서 2025년 92%로 뒤집어졌다. 가치의 본질 자체가 '만질 수 있는 것'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이제 금형에 담기기 시작한 것이다.

생성형 AI 시장 규모는 2022년 400억 달러에서 2032년 1.3조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은 금형을 만드는 산업의 규모다.


모든 산업이 공장이 된다


금형에 담기는 것이 무엇인지는 산업마다 다르지만 패턴은 같다.


1. 의료

금형에 담기는 것은 의사의 패턴 인식이다. 단일 질환의 영상 판독처럼 입력과 출력이 명확한 과제에서 AI는 강하다. 유방암 영상 진단에서 AI의 민감도는 90%로 방사선과 전문의(78%)를 넘어섰고, Microsoft의 MAI-DxO는 NEJM 복잡 증례 벤치마크에서 85%의 정확도를 기록했다 — 같은 테스트에서 인간 의사는 약 20%였다. 의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 10년이 걸리지만, AI 모델은 한 번 학습되면 수천 곳의 병원에 동시에 배포된다. 비용 구조 자체가 다르다. 물론 아직 증상이 복합적이고, 환자의 맥락을 읽어야 하는 판단에서는 아직 금형이 작동하지 않지만 발전 속도를 미루어 보아 시간 문제일 것 같다.


2. 교육

금형에 담기는 것은 교사의 수업 설계와 피드백이다. AI 튜터는 수백만 명의 학생에게 각기 다른 난이도의 문제를 실시간으로 생성한다. 교사 한 명을 고용하면 학생 30명을 가르칠 수 있지만, AI 튜터 하나를 만들면 100만 명에게 동시에 배포할 수 있다. 2025년 RCT(무작위 대조 실험) 결과, AI 튜터를 사용한 학생이 대면 능동학습 대비 유의미하게 더 많은 내용을 더 짧은 시간에 학습했다. 지능형 튜터 시스템 사용 시 학습 성과가 20% 향상됐다는 연구도 있다. 지식 전달이 '지능형 제조 공정'이 된 셈이다.


3. 서비스업

금형에 담기는 것은 접객 매뉴얼과 조리법이다. 조리 로봇이 같은 맛을 반복하고, 무인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고, 배달 로봇이 음식을 나른다. 레시피 하나를 알고리즘에 담으면 전국 수백 개 매장에서 동일한 맛이 나온다. 사람마다 달랐던 접객 품질이 균일해진다.


4. 지식산업

금형에 담기는 것은 전문가의 추론 과정이다. LLM이 판례를 검색하고, 계약서 초안을 작성하고, 세무 자문을 제공한다. 시간당 수십만 원짜리 자문이 API 호출 한 번 — 몇 센트 — 으로 대체되는 구조다.


5. 예술과 디자인

금형에 담기는 것은 창작의 첫 번째 초안이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 수십 명의 스태프와 수억 원이 필요했지만, 생성형 AI는 콘텐츠 제작비를 30~50% 절감시키면서 생산량을 500% 이상 늘린다. 한 사람이 시나리오부터 후반 작업까지 해내는 1인 영화가 등장하고 있다. 독창성과 서사적 깊이를 갖춘 사람 몇 명이서 온전히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1인 기업으로의 수렴, 그리고 Entrepreneurship


금형이 완성되면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필연이다.


과거 규모의 경제는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생산량을 늘리려면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뽑고, 관리자를 세워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스템을 한 번 만들면 복제하면 된다. 서버를 늘리고, 모델을 배포하면 된다. 규모의 경제의 중심이 ‘사람의 수’에서 ‘시스템의 복제’로 옮겨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우리가 일에서 느끼던 낭만은 어디로 갈까. 함께 땀 흘리고, 함께 만들고, 함께 완성했다는 감각은 사라지는가.

사라지는 것은 낭만이 아니라 낭만의 자리일지 모른다. 과거의 낭만이 함께 몸을 쓰고 버티는 데 있었다면, 앞으로의 낭만은 무엇을 만들고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함께 결정하는 데 있을 것이다. 손의 협업보다 감각의 협업, 노동의 연대보다 의미의 연대가 더 중요해진다.


이 변화 속에서 낭만은 점점 더 앙트프러너십에 가까워진다. 아직 없는 문제를 발견하고, 흩어진 기술과 사람을 엮어 하나의 세계를 실현하는 일이다. 효율이 극대화될수록 오히려 중요한 것은 생산 속도가 아니라 방향, 의미, 취향, 윤리다.


AI 시대는 사람을 지우는 시대가 아니라 사람다움의 위치를 바꾸는 시대일지 모른다. 반복과 생산의 영역에서 인간은 물러나겠지만, 방향과 의미의 영역에서 역할은 더 선명해질 것이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로 어떤 세계를 함께 만들고자 하느냐다. 효율의 시대에도 낭만은 남는다. 다만 그 낭만은 이제 손이 아니라 방향에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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